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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필순,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위로와 치유를 얻을 일이다

등록 2018.08.17 12:5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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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필순,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위로와 치유를 얻을 일이다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가수 장필순(55)은 '공감각적 심상'이다. 청각을 자극해 시각적 상상력을 만들어낸다. 노랫말을 촉각으로 느끼게 만든다.

스스로는목소리가 "한 때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좀 더 예뻤으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지만, 허스키 음색에 숨겨둔 순수함과 투명함의 갈고리는 듣는이의 마음을 매번 할퀴어낸다.

5년 만에 내놓은 정규 8집 '수니 에이트(soony eight)-소길화(花)'의 타이틀곡 '그림'에서 그 힘은 배가 된다. '무지개 호수 외로운 뱃길/ 흰 은하수를 천천히 걸어/ 다다랐나요 꿈꾸던 그곳// 오랜 시간 동안 날 지켜준/ 그대의 노래는 바람처럼/ 우리가 그리던 저 그림 속으로.'

물과 우주와 바람을 노래한 포크 가수 조동진(1947~2017)의 모습이 절로 떠오른다. 조동진의 동생들인 조동익(58)이 멜로디를 쓰고, 조동희(45)가 노랫말을 붙인 이 곡의 정신은 장필순의 목소리를 빌려 육화된다.

"아직도 불현듯 생각나요. 여전히 그립기도 하지요. 정말 아무것도 안 했다면 더 힘들지 않았을까요. 앨범 발매라는 숙제가 있었으니까, 힘든 마음을 빨리 추스를 수 있었어요."
 
제주에서 전화 너머로 바람소리에 섞여 들려오는 장필순의 목소리에는 그녀가 '형님'이라고 부르는 조동진을 향한 그리움과 함께 8집 작업 과정에서 받은 치유와 위로가 묻어났다.

여성 포크계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손꼽히는 장필순은 서울예술대학 시절부터 다양한 음악활동을 통해 역량을 다졌다. 특히 1990년대 조동진이 이끈 음악공동체 '하나음악' 합류 이후 그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행복한 사람' '나뭇잎 사이로' '제비꽃' 등으로 유명한 조동진은 1980~90년대 언더그라운드 가수들의 대부로 통했다. 서정적이고 시적인 노랫말과 음악으로 한국의 밥 딜런 또는 레너드 코언으로 통했다.

조동진의 꿈의 작업 2017,우리 같이 있을 동안에

조동진의 꿈의 작업 2017,우리 같이 있을 동안에

장필순이 '소길화' 막바지 작업에 돌입한 지난해 여름, 조동진은 세상을 떠나기 전 생과 사의 경계에서 마지막 노래를 읊조리고 있었다. "당시 마음이 복잡했어요. 마음이 편치 않았죠."

'저녁바다'는 제주에 산 조동진이 세상을 떠나기 직전 노랫말을 쓴 마지막 곡이다. '눈 감아보면 흰 구름언덕/ 지금은 어느 또 누가 돌아보는지'로 이어지는 노랫말은 몽환적이면서 담담한 장필순의 목소리를 타고 아득함을 전한다.

"앨범을 작업하다 보니 처지지 않을 수 있었어요. 만들어진 곡들을 다시 모니터링하고, 새롭게 작업하고. 그러다 보니 힘든 마음들이 한결 편안해졌죠."

조동진에 대한 장필순의 애틋한 마음이 드러난 공연은 지난해 9월16일 한전아트센터에서 열린 '조동진의 꿈의 작업 2017-우리 같이 있을 동안에'다. 조동진의 곡인 '제비꽃'과 '겨울비'를 부를 때 정면 대신 무대 뒤편을 바라보며 뜨겁게 노래하는 장필순의 모습에 객석은 뭉클해졌다.

"원래 추모 공연이 아니었어요. 형님이 서기로 했던 무대죠. 결국은 무대에 못 오르셨지만요. 하나음악 후배들, (하나음악을 잇는 음악공동체) 푸른곰팡이에 관련된 직접적인 가족, 친구들만 선 무대였어요. 화려하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정말 깊은 공연이었어요."

장필순은 조동진을 "항상 새로운 것을 위해 노력했고,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공부를 계속 한 분"으로 기억했다. "새 앨범마다 촌스럽지 않고, 세련된 음악을 만들려고 애를 쓰셨어요. 그런 형님의 음악을 듣고, 가사를 읽으면서 배우는 20대 친구들도 있었죠."

조동진은 여전히 기억된다. 1주기 추모콘서트 '행복한 사람'이 9월15일 한남동 블루스퀘어 아이마켓홀에서 펼쳐진다. 장필순 외에 전인권밴드, 조동희, 김현철, 김광진, 박용준, 한영애, 강승원 등이 출연한다. "형님의 알려지지 않은 곡들도 찾아 부를 거예요. '조동진 음악'을 공유하고, 감동을 받는 시간이 될 겁니다."

장필순의 이번 앨범에는 그녀의 음악적 동료들이 만든 곡들도 함께 실렸다. 영화 '장미빛 인생'(감독 김홍준·1994)에 삽입된 곡으로 20년 전 조동익의 앨범 '무비'에 실린 '아침을 맞으러'를 비롯해 박용준의 '아름다운 이름', 배영길의 '외로워', 이적이 제주에 들렀다가 만든 '고사리 장마' 등이다. 모두 풍경이 보여지는 곡들이다.

장필순,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위로와 치유를 얻을 일이다

"원래 앨범을 주로 동익 형과 함께 만들어왔어요. 이번 앨범은 좀 달랐는데, 주변 친구들이 선물해준 곡들을 실은 거죠. 기쁘게 녹음했어요. 대부분의 곡 자체에서 풍경이 보여지더라고요. 저와 동익 형이 만든 곡은 저희 의도대로 할 수 있지만 이번에는 친구들이 써준 가사의 영향을 많이 받았죠. 즐거운 작업이었습니다. 비즈니스가 얽히지 않은 관계에서 받은 곡들이라 더 순수한 느낌이 들었죠. 주변 친구들의 곡을 받는 건, 아마 이번이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해요."

 제주에 사는 장필순의 이웃인 기타리스트 이상순이 선물한 곡으로 그의 부인 이효리가 데모 형식으로 먼저 들려준 곡 '집'도 포함됐다. 풀벌레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노래다. '풀빛 이슬 냄새/ 새벽 별들이 쉬어가는 곳/ 저기 날 부르는/ 조그만 대문 느린 그림자'라는 가사가 꿈꾸는 듯한 장필순의 목소리를 만나 어느 이상향을 그려나간다. 

장필순은 2005년 돌연 음악 동지인 조동익과 제주 애월읍 소길리에 터를 잡았다. 이번 앨범 제목 '소길화'도 이곳에서 따왔다. 텃밭에서 채소를 가꾸고 유기견 여덟 마리를 키우고 있다.

장필순 주위를 맴도는 유기견들이 짖는 소리가 전화로 들려왔다. 제6회 순천만세계동물영화제에도 힘을 보태는 장필순은 "제주에는 혈통이 있지만 버려진 반려견들이 많다"면서 "개와 고양이는 사람에게 친구와 같은 존재들인데 인식이 달라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덟 마리 중 새끼 때부터 키워온 한 마리를 제외하고는 모두 유기견이에요. 사람을 그렇게 따를 수 없어요. 아이들과 함께 있다 보면 시간이 금방 가요." 어느새 '저녁 바다'를 맞이한 제주에서 들려오는 장필순의 목소리는 '비우고 또 비우려 했었던 그 기나긴 슬픔의 시간'을 견뎌낸, 삶에 대한 긍정으로 충만했다.

한편 장필순은 18일 부산 오즈홀, 25~26일 벨로주 홍대, 10월13일 제주에서 콘서트를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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