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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은 이모" 39년전 '고3 이모' 달래는 '고3 조카'

등록 2019.05.18 11:3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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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당시 송원여상 3학년 박현숙씨 시신 수습 봉사

시신 담을 관 구하러 화순 가던 중 계엄군 총칼에 희생

문정여고 3학년 조카 정예지 학생 대표로 기념식 참석

【광주=뉴시스】박진희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9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여 기념사를 하고 있다. 2019.05.18. pak7130@newsis.com

【광주=뉴시스】박진희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전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9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하여 기념사를 하고 있다. 2019.05.18.  [email protected]

【광주=뉴시스】송창헌 기자 = "이모∼. 사랑하는 이모! 이젠 아픈 상처 훌훌 털고 부디 건강하게 지내세요. 이모의 뜻을 본받아 열심히 살아갈께요."

1980년 5월23일. 열아홉살 꽃다운 나이에 박현숙씨는 꽃잎이 되어 날아갔다. 계엄군의 무자비한 총칼에 여고 졸업반 박씨는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그로 부터 39년. 5·18 민주화운동 39주년 기념일을 맞아 '고3 조카' 정예지양이 묘지를 찾았다. '또래 이모'의 묘지에 헌화하고 문학소녀였던 이모의 넋을 기렸다.

광주 문정여고 3학년에 재학중인 정양은 이날 학생 대표 자격으로 문재인 대통령 등과 나란히 기념식장에 입장했다.

정양은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저 세상으로 떠난 이모지만, 이모는 늘 제 삶의 지표와도 같았어요. 늘 보고 싶죠"라며 울먹였다.

정양의 이모는 3남5녀, 8남매의 넷째딸로 태어났다. 정양 어머니(박태순씨)의 바로 위 언니다.

80년 5월 당시, 박씨는 광주 송원여상 3학년으로 희생자가 넘쳐나면서 관이 부족하자 관을 구하러 화순으로 가던 시민군 미니버스에 올라탔다가 광주 동구 월남동 주남마을 근처에 매복해있던 계엄군의 집중 사격에 처참하게 희생됐다. 온몸에 총탄 자국도 모자라 대검에도 수 차례 찔렸다.

실종신고 후 수소문 끝에 발견된 사체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고 "설마했던" 가족들의 희망은 산산조각났고 남매들의 가슴은 갈갈이 찢어졌다.
【광주=뉴시스】 송창헌 기자 =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고3 신분으로 전남도청에서 시신 수습 봉사활동을 하하던 중 관을 구하러 화순으로 가던 중 계엄군의 총칼에 희생된 박현숙씨의 조카 정예지양. 정양은 18일 39주년 기념식에 학생대표로 참석했다. 2019.05.18goodchang@newsis.com

【광주=뉴시스】 송창헌 기자 =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고3 신분으로 전남도청에서 시신 수습 봉사활동을 하하던 중 관을 구하러 화순으로 가던 중 계엄군의 총칼에 희생된 박현숙씨의 조카 정예지양. 정양은 18일 39주년 기념식에 학생대표로 참석했다. [email protected]

은행원에 합격해 두 달 후면 첫 출근할 그였지만, 박씨는 전남도청 시체수습위원회에서 봉사자로 활동하며 희생자들의 영혼을 달랬다. 남동생 1명, 여동생 1명과 광주에서 자취하던 박씨는 비상계엄령이 확대된 후 "함께 집으로 돌아가자"는 아버지의 권유도 뿌리친 채 동생들만 고향 담양으로 돌려보낸 뒤 시신관리 봉사활동을 이어갔다.

가난 속에서도 늘 동생들 생각 만큼은 잊지 않았다. 버스에 오르기 전 남동생의 손에 꼬깃꼬깃 숨겨둔 용돈을 쥐어준 그는 그 길로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정양은 이날 묘지를 찾아 39년 전, 19살 나이에 시간이 멈춰버린 이모를 달래고 숭고한 뜻을 기렸다.

정양은 "그토록 원하던 첫 출근을 눈 앞에 두고, 계엄군의 총칼에도 굴하지 않고 시신을 닦는다는 게 쉽지 않고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건데, 이모가 정말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고3 이모'와 '고3 조카'는 닮은데가 많다. 문학을 좋아했던 이모를 닮아 정양도 한 달에 두세권의 책을 읽고, 철학과 인문학에 대한 관심도 높다. 단편소설 '명령'에 대해서는 "말 뒤에 숨어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정당화하는 건 아닌지 묻고 싶다.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는 건 비겁한 변명"이라고 서평을 쓰기도 했다.

손재주도 좋아 5·18 그림그리기 대회에서는 상도 탔다.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으로 참석한 5·18 기념식에서 '5·18 둥이' 유족을 꼭 껴안아준, 감동적인 장면을 상징적으로 그렸다.

정양은 "어릴 적부터 이모에 대한 얘기를 많이 들었고, 틈나는 대로 편지도 쓰고 일기에도 이모 얘기가 많다"며 "너무나 가슴 아프게 돌아가셨지만 부디 아픈 상처 잘 치유하시고 좋은 세상에서 건강하게 지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기념식에 참석하게 돼 가슴 벅차다"며 "나도 이모를 본받아 이 땅의 민주화와 나라와 지역 발전을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용기가 생겼다"고 밝혔다.

'북한군 투입' '유족 괴물' 등 5·18을 왜곡·폄훼하는 주장들에 대해서는 "그런 얘기를 들으면 속상하고 화가 치민다"며 "희생자들은 그렇게 단순하게 여겨질 분들이 아니다. 5·18 민주화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얼마나 귀중하고 소중한 희생이었는지 살펴본 뒤 발언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기념식에는 정양 이외에도 고(故) 차종성씨의 조카 차경택, 고 한가운씨의 조카 박진주, 고 김완봉씨의 조카 장인혁 등이 학생대표로 참석했다.
【광주=뉴시스】 송창헌 기자 =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고3 신분으로 전남도청에서 시신 수습 봉사활동을 하하던 중 관을 구하러 화순으로 가던 중 계엄군의 총칼에 희생된 박현숙씨의 조카 정예지양. 정양은 18일 39주년 기념식에 학생대표로 참석했다. 정양이 단편소설 '명령'을 읽고 쓴 서평. 2019.05.18 goodchang@newsis.com

【광주=뉴시스】 송창헌 기자 =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고3 신분으로 전남도청에서 시신 수습 봉사활동을 하하던 중 관을 구하러 화순으로 가던 중 계엄군의 총칼에 희생된 박현숙씨의 조카 정예지양. 정양은 18일 39주년 기념식에 학생대표로 참석했다. 정양이 단편소설 '명령'을 읽고 쓴 서평. 2019.05.18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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