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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北 예술 교류나선 선무·전영일씨 "정서적 DNA 동질성 회복"

등록 2019.06.10 17:5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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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화가 선무 "남북 이질성 극복하는 불쏘시개 되길 희망"

조각가 전영일 "예술교류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안산=뉴시스】손대선 기자 = 지난 7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 경기창작센터에서 화가 선무씨(왼쪽)와 조각가 전영일씨가 선씨의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sds1105@newsis.com

【안산=뉴시스】손대선 기자 = 지난 7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 경기창작센터에서 화가 선무씨(왼쪽)와 조각가 전영일씨가 선씨의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email protected]

【안산=뉴시스】손대선 기자 = 손대선 기자 = 지난 2월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빈손' 회담을 마친 뒤 남북관계에는 불확실성이 꽉 들어차있다. 

 북미 간, 남북 간, 남남 간 관계는 이 불확실성 속에서 골이 깊어지고 있다. 

 시계 침을 지난해 봄으로 되돌려보자. 당시만 해도 북한의 핵실험과 대북제재 강화를 둘러싼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 가시 돋친 설전은 '제2 한국전쟁'을 현실화하는 예비단계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4월27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11년 만에 각각 남과 북의 최고지도자 자격으로 마주 앉으면서 전쟁의 먹구름이 걷히고 대신 평화의 무지개가 뜬 것 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 무지개를 너머를 바라보는 예술인들이 있다. 이들은 북한과의 정서적 DNA의 동질성 회복을 주장하며 새로운 접근을 펼쳐 주목받고 있다.  

 지난 7일 저녁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 경기창작센터에서 만난 화가 선무씨와 조각가 전영일씨. 만 50세를 눈앞에 둔 두 사람은 각기 상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북한에서 정치 선전(프로파간다) 미술가로 활동하던 선씨는 자유인의 삶을 살기 위해 2002년 맹수와 독충이 들끓는 라오스 밀림을 뚫고 남한 사회로 귀순했다. 프로파간다 화법이 몸에 익숙한 그는 홍익대 미대에서 수학하며 자본주의 화법을 익혀 자신이 몸담았던 세계의 부조리를 풍자하고 있다. 강렬한 색채와 대담한 구도, 그리고 명료한 메시지를 담은 그의 작품은 세계 미술시장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이제는 유명인이 됐지만 북한에 남은 가족들의 안위를 염려해 신원일체를 공개하지 않은 그의 가명은 경계도 국경도 없다는 '선무'(線無)이다. 

 선씨와 홍익대 동문인 전씨는 미술세계에 본격 진입한지 20여년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전통등에 기반을 둔 조형물로 현대 등조각이라는 미답의 장르를 개척해 나라 안팎에서 주목받았다. 전씨는 보수정권 시절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다.

 전씨는 2016년부터 베이징 쑹정 예술지구에서 조각 작업을 하면서 한·중교류사업을 하던 중 연길 지역에서 자연스레 북한 예술작품을 접했다. 이 과정서 남북문화예술의 이질점과 공통점을 살펴보던 그는 북한 예술작품의 세계화 가능성을 엿보았다. 북한예술작품에 관심이 많은 그는 경색된 남북관계 탓에 아직까지 한 번도 북한 땅을 밟지 못했다. 아쉬움을 씻어내기 위해 올해 3월에는 민족시각문화교류협회(민시협) 창립을 주도했다.

【서울=뉴시스】손대선 기자 = 지난 7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 경기창작센터 작업실에서 화가 선무씨가 공개한 콜라주 작품. sds1105@newsis.com

【서울=뉴시스】손대선 기자 = 지난 7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 경기창작센터 작업실에서 화가 선무씨가 공개한 콜라주 작품.  [email protected]

선씨 등 50여명의 시각예술인들이 참여하는 민시협은 전통적인 회화와 조각 같은 고전장르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북측 문화예술계와 교류하길 원한다. 전시 교류뿐만 아니라 미술 산업적인 측면도 주목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일례로 사회주의 몰락 이후 이제는 지구상에 유일하다시피 한 북한의 프로파간다 예술은 거짓과 선동이라는 부정적 요소를 배제한다면 희소성 자체만으로 미술계에 관심을 끌 수 있다. 전씨가 선씨에게 손을 내민 것은 선씨가 남쪽과 북쪽 예술 양쪽의 장점을 흡수해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보수정권 9년 동안 남북 간 예술교류는 단절됐다. 두 사람은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간 남북정상회담을 지켜보면서 새로운 교류에 대한 새 열망을 꿈꾸게 됐다고 전했다.

 전씨는 "다시는 오지 않을 진보세력의 집권이 찾아오면서 예술인들이 한반도 평화에 기여할 수 있는 이전과 다른 방법을 찾게 됐고, 민시협을 창립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벌어진 남북문화예술교류에 대해 공과를 얘기했다. 자신 이전 세대의 교류는 민주화시대 이후 분단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이해되지만 동시에 민족주의를 무조건 우선시하는 소수세력이 독점했다는 주장이다. 그는 이른바 '586세대'가 남긴 폐쇄성을 비판했다. 

 전씨는 "이전에는 북한에 관광가려고 교류하든지 아니면 교류기금을 노리거나, '현실참여'라는 스펙을 쌓기 위한 이들이 적지 않았다"며 "그런 예술가들이 있다 보니 적게나마 북한과 교류하려는 예술인들도 동요했다. 이런 잘못된 관행을 작가 스스로 개선할 필요가 있고, 그 때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가령 선무씨의 작품은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스스로를 '사람새끼'라고 말하는 것 처럼 새롭게 펼쳐진 남북관계 속에서 새로운 움직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씨는 "예술은 똑같음보다는 차이를 더 극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라면서도 "그동안은 남과 북이 막연히 다르다고만 했지 무엇이 다른지도 구체적으로 몰랐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손대선 기자 = 지난 7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 경기창작센터 작업실에서 화가 선무씨가 공개한 작품. sds1105@newsis.com

【서울=뉴시스】손대선 기자 = 지난 7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 경기창작센터 작업실에서 화가 선무씨가 공개한 작품.  [email protected]

이어 "이제 남북 문화예술 교류는 다름을 제대로 인식시키고,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도록 이끄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선씨 역시 남과 북 예술의 차이에 대해 절감하면서도 자신의 작품이 양쪽의 이질성을 극복하는 불쏘시개가 되길 희망했다.  

 그는 "2007년 후암동에서 '호기심에 대한 책임'이라는 주제 하에 사진가 노순택씨와 첫 번째 전시회를 했다"며 "나름 고심 끝에 작품을 내놓았는데 어떤 관객이 내 화풍만 보고 국가보안법으로 경찰에 신고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 경찰이 와서 신분증을 보여 달라고 해서 반사적으로 내주었는데 노순택씨는 '먼저 영장을 내놓아라'하며 당당히 저항했다"며 "나는 불안하면서도 동시에 남한사회의 자유가 어떤 것인지를 동시에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경기창작센터에 둥지를 틀었다. 해안초소가 내려다보이는 경기창작센터는 폐교를 예술인과 지역민을 위한 문화예술공간으로 리모델링한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가족과 떨어져서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남북화해 시대를 겨냥한 고민이 이 시간 동안 무르익고 있다. 

 두 사람은 이미 수년 전부터 북한 사회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며 이 변화에 부응하는 한국사회의 변화를 바랐다.

 전씨는 "북한은 이른바 프로파간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경직성을 서서히 완화시키고 있다"며 "김정은 위원장도 현실성이 떨어지는 우상화 등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북한 문화예술계에 일종의 유연성이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과 북한 인접 도시에 가면 한국 아이들과 북한 아이들이 어울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상대 나라에 대한 온갖 정보가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입을 통해 교환된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손대선 기자 = 지난 7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 경기창작센터 인근 바닷가에서 화가 선무씨와 조각가 전영일씨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sds1105@newsis.com

【서울=뉴시스】손대선 기자 = 지난 7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대부도 경기창작센터 인근 바닷가에서 화가 선무씨와 조각가 전영일씨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email protected]

 
 그러면서 "우리 쪽 시각에서 보면 아이들은 날마다 국가보안법을 어기는 셈"이라고 웃어보였다.
    
 전씨는 중국동포, 중국인, 북한출신 중국 미술대 교수 등을 통해 꾸준히 북측과 접촉하고 있다고 했다. 아직 공식화하기 어렵지만 조만간 북한 미술 분야 최고의 집단창작 단체인 만수대 창작사와 의미 있는 관계를 맺어 북한예술을 한국사회에 알리는 한편 세계화를 돕겠다고 포부도 전했다.

 그는 이 포부가 단순히 판로개척의 의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전씨는 "통일이라고 해서 우리민족끼리만 잘한다고 되는가. 잘 되려면 주변 친구들과 잘 관계해야 한다. 관계가 관계를 이어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만들기 위한 외연이 되어야 한다. 한반도에만 머물지 않고 중국, 미국, 유럽으로 시선을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남북한 군사적 대립을 풀기 위해선 단순히 '한 핏줄'이라는 DNA적 동질성뿐만 아니라 정서적 DNA의 동질성을 회복해야 한다"며 이를 위한 예술가의 역할을 다짐했다.

 한 사람은 북한을 떠났고, 한 사람은 북한을 가길 원한다. 두 사람의 행보는 얼핏 엇갈려 보이지만 민족화해라는 교집합만은 분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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