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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리뷰]무대공연 통한 위령제…'델루즈 : 물의 기억'

등록 2015.04.17 10:32:06수정 2016.12.28 14:5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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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예술센터 '델루즈 : 물의 기억'(사진=서울문화재단)

남산예술센터 '델루즈 : 물의 기억'(사진=서울문화재단)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유품(遺品)처럼 보인다. 신발을 비롯해 누군가 사용한 듯한 물품들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다. 비명인지, 파도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소리가 울려퍼진다.

 16일 저녁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서울문화재단(대표 조선희)이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은 이날 선보인 무대 공연 '델루즈(Deluge) : 물의 기억'의 첫 장면이다.  

 공연의 막이 오르기 전, 배우들이 유리병을 들고 다닌다. 관객들은 그 안에 종이배, 종이학을 조심스레 넣는다. 그 종이배와 종이학에는 메시지가 적혀 있다. 희생자들 또는 유족에게 보내는 관객들의 마음이다. 몇몇 관객들은 가슴 한 켠에 노란 리본을 달고 있었다.

 장르를 규정할 수 없다. 무언극에 가깝다. 말할 수 없는 것, 말하면 말문이 막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남자배우 4명과 여자배우 4명, 총 8명은 포효하거나 쉽게 해석할 수 없는 몸짓을 한다. '부유'하는 듯하다. 인간의 몸을 통해 물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지난해 10월18일 문래예술공장에서 워크숍 공연으로 선보였다. 델루즈는 대홍수라는 뜻이다. 지난 2011년 2월 호주에서 발생한 대홍수의 실종자들에 대한 아픔을 위로하고자 제작됐다.

 객석이 높은 원형 무대는 그 자체로 바다 또는 호수를 연상케 한다. 공연 중간, 피라미드 형상의 초록빛 레이저가 무대를 뒤덮는다. 배우 8명이 그 레이저 속으로 한명씩 빨려들어가며 이내 없어진다. 세월호의 아픈 기억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물 한방울 없이 '물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델루즈 : 물의 기억'은 하지만 일부러 감정을 극한으로 밀어붙이지 않는다. 일종의 위령제다. 남산예술센터와 호주예술가들의 합작으로 호주 출신의 제레미 나이덱(32)이 연출했다. 지난 2013년 아시아링크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국립창극단에서 6개월간 판소리를 배우기도 한 그는 한국·호주 배우들 사이에서 한을 풀어놓는다.  

 진도 씻김굿이 기반이다. 세월호가 침몰한 곳이 진도 앞바다다. 죽은 이의 영혼이 이승에서 풀지 못한 원한을 풀고, 편안한 세계로 갈 수 있도록 기원하는 진도지역의 굿이다. 공연 막판, 진도 씻김굿 중 죽은 이를 극락으로 천도시키는 길닦이가 행해진다.

 1년 전 공연계는 공연하는 것만으로도 죄인이 됐다. 추모 분위기에 생업도 포기했다. 무대 예술은 일종의 제의다. 상업적인 색을 크게 입기 전까지 의식이었다. '델루즈 : 물의 기억'은 그 사실을 깨닫게 한다. 아울러 세월이 지나면 잊혀질 '세월호'를 기억하는 하나의 방법도 일러준다.  

 호주의 대표 시인 주디스 라이트(1915~2000)의 '홍수'(Flood)가 모티브다. "나는 우리가 잃은 많은 것을 꿈꾸었다. 나는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기억나지 않는다. 나의 벗이여, 삶과 죽음이 우리 뒤에 있다."

 19일·22~25일. 러닝타임 70분. 1만5000원. 남산예술센터. 02-758-2150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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