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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연극 리뷰]잔인한 현실 속 반짝이는 한순간…'햇빛샤워'

등록 2015.07.10 08:33:47수정 2016.12.28 15: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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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햇빛샤워' 포스터(사진=남산예술센터)

연극 '햇빛샤워' 포스터(사진=남산예술센터)

※맥락에 따라 약간의 스포일러 있음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광자'의 현실도, '동교'의 이상도 모두 싱크홀에 빠져 버린다. 지반침하를 뜻하는 싱크홀(극중에서는 '씽크홀'로 표기)은 결국 사회 안정망의 붕괴를 뜻하기도 한다.

 성향, 바라는 것은 다르지만 '가난하다'는 공통점이 있는 두 사람에게 현실은 만만치 않다.

 20대 후반의 백화점 매장 직원 광자는 욕망에 충실하다. 이름을 바꾸거나 매니저로 승진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함부로 굴린다. 원하는 걸 이루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한다.

 연탄집 양아들인 동교는 반면 나눔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협동조합을 꿈꾼다. 똑똑하지도 않고 셈도 느리지만 신념이 강하다.  

 '햇빛샤워'는 이들을 통해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광자는 자신이 이용할 수 있는 인간관계를 최대한 활용해 상류사회로 올라가려 한다. 반면 동교는 아무 관계 없이도 서로 돕고 살 수 있는 사회를 꿈꾼다.  

 동교는 그 관계의 순수함을 지키기 위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광자는 아무 관계가 없는 동교 때문에 마침내 이룬 자기의 꿈은 물론 자신마저 저버린다.

 둘 사이에서 브래지어는 상징적인 존재다. 엄마를 안아본 적이 없다며 브래지어를 달라는 동교에게 광자는 빨래한 것이 아닌, 자신이 차고 있던 브래지어를 기꺼이 내준다.  

 "가난은 네가 불편한 것이 아니야. 네 옆사람이 불편한 거지"(광자), "가난은 뜯어진 팔꿈치 그 부분이 아니라 그것을 신경쓰는 마음"(동교)이란 대사처럼 가난에 대한 견해가 달라도 가난한 자들은 온기를 주고 받으며 연대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한 것보다 더 차갑고 잔인하다. 역시 가난을 다뤄 호평 받았던 연극 '여기가 집이다'(2013 대한민국 연극대상 대상)를 끝내고 나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낭만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평이 신경 쓰였다는 장우재 연출은 극작까지 맡은 '햇빛샤워'에서 좀 더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한다. 그의 작품 최초로 인터뷰 형식의 장면도 삽입됐다. 광자의 주변 인물들은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각자 이야기한다.  

 동교의 나이가 열아홉살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프로그램 북에도 스무살이라고 그의 이름이 명기 됐는데 개막 직전에 19세로 바꿨다. 

 장 연출은 "19세와 20세는 한 살 차이지만 그 어감은 소년과 청년의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좀 더 동교의 해맑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그 만큼 동교의 순수함, 또는 순결함에 방점이 찍힌다.  

 작품이 어둡지만 마지막 희망마저 거세당한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다. 광자가 자신이 사는 반지하방에서 겨우 들어오는 햇빛을 쬐는, 즉 '햇빛샤워'를 하는 모습이 특히 반짝이는 순간이다. 의사가 비타민D가 부족해 골연화증에 걸렸다며 햇빛을 쬐기를 권했는데, 햇빛의 의미는 그 이상이다.  

 극 중 대사처럼 "햇빛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니까. '희대의 쌍년'이라 통하는 광자의 광의 한자는 미칠 광이 아닌 빛 광이다. '아름다운 꽃봉오리'라는 뜻의 새 이름 아영을 원했던 광자는 그 장면에서 눈이 부셨다. 막판에 그녀는 "내가 이광자"라고 절규한다.

 장우재는 가난을 낭만적으로 다루지 않으면서도, 잔인한 현실 속에서 반짝이는 한 순간을 발견한다. 성찰과 함께 위로의 여운이 찾아오는 이유다.   

 26일까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공동 제작 남산예술센터·극단 이와삼. 광자 김정민, 동교 이기현. 무대 박상봉, 조명 김창기. 러닝타임 110분. 17세 이상 관람가. 1만8000~3만원. 남산예술센터. 02-758-2150  

  잔인한 현실에서 반짝이는 한 순간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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