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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5억짜리 제주 탐라문화광장…저녁엔 성매매 호객에 발길 ‘뚝’

등록 2018.07.18 09:3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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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지면 인적 드문 어둡고 음침한 슬럼가 형성

경찰 “성매매 감소 추세, 우려할 상황 아니야”

전문가·도의원 “밝은 분위기 조성이 가장 시급”


【제주=뉴시스】조수진 기자 = 16일 오후 제주시 일도1동 산지천 일대에선 불법 성매매 호객행위를 하는 중년 여성들이 건너편을 왔다갔다 하고 있다. 이들 말고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을 보기 어렵다. 2018.07.16. susie@newsis.com

【제주=뉴시스】조수진 기자 = 16일 오후 제주시 일도1동 산지천 일대에선 불법 성매매 호객행위를 하는 중년 여성들이 건너편을 왔다갔다 하고 있다. 이들 말고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을 보기 어렵다. 2018.07.16. [email protected]


【제주=뉴시스】조수진 배상철 기자 = “학생~ 좀 놀다가. 저기 예쁜 언니들 있어.”

지난 16일 오후 8시께. 해가 지고 가로등이 켜지자 제주시 일도1동 산지천 일대에 50~60대로 보이는 여성들이 저마다 부채를 부치며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기자와 동행 취재에 나선 30대 남성인 A기자가 지나가자 그중 한 여성이 슬쩍 다가와 말을 걸었다. A기자가 “거기가 어디냐”고 물으니 여성은 바로 길 건너 여관들이 모여있는 언덕을 가리키며 “저기”라고 답했다.

언뜻 열대야 더위를 식히러 나온 주민으로 보이는 이들은 남성을 상대로 불법 성매매 호객행위를 하는 여성이다. 허리에 작은 가방을 차고 몇몇은 마스크를 껴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산지천을 따라 조성된 화단이나 도로 경계석에 걸터앉아 있다가 남성이 지나가면 호객을 했다.

여성인 기자가 직접 같은 길을 70m 정도 걷는데 중년 여성 두 명이 번갈아 다가오더니 얼굴을 확인하고 “여자네. 여자”라며 발걸음을 돌렸다. 머리가 짧아 남성인 줄 착각한 모양이었다. 두 여성 말고도 비슷한 차림새의 여성 네다섯명이 눈에 띄었다.

◇길 건너 관광객 북적이는 동문시장과 180도 다른 풍경

산지천 일대는 이곳에서 불과 10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동문재래시장과 대비된 풍경을 자아낸다. 여름철 성수기를 맞아 시장은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관광객으로 북적대는 반면 이곳은 어둡고 인적이 드물다.

동문재래시장 3번 게이트 맞은편 광장 주변은 낮부터 술에 취한 노숙인들이 점거하고 있고 산지천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는 해만 지면 성매매 호객행위가 기승을 부리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항구와 가까운 탓에 50년이 넘도록 불법 성매매가 성행했다. 도심 공동화(空洞化) 현상은 이 문제를 더욱 심화시켰다. 그러던 중 지난 2011년 우근민 제주도정은 도심공원을 표방한 제주도 관광명소로 만들겠다며 4만5845㎡에 이르는 산지천 일대에 예산 565억원이 투입되는 대대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제주=뉴시스】조수진 기자 = 지난 16일 오후 제주시 일도1동 산지천 일대에서 한 중년 여성(가운데)이 남성인 기자를 상대로 불법 성매매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에 또 다른 여성이 화단에 걸터앉아 사람이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다. 2018.07.16. susie@newsis.com

【제주=뉴시스】조수진 기자 = 지난 16일 오후 제주시 일도1동 산지천 일대에서 한 중년 여성(가운데)이 남성인 기자를 상대로 불법 성매매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사진 오른쪽에 또 다른 여성이 화단에 걸터앉아 사람이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다. 2018.07.16.  [email protected]

◇도심공원 대신 어둡고 음침한 슬럼가 형성

이후 지난 2017년 3월 산지천 일대가 탐라문화광장으로 조성됐지만 행정이 자신 있게 내세웠던 도심공원 대신 음침하고 어두운 슬럼가가 들어섰다. 오랜 기간 광장 조성사업으로 인한 불편을 참아왔던 주민과 상인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식당을 운영하는 장영철(42) 탐라문화광장협의회장은 “나 역시 매일같이 (호객행위 여성에게)잡힐 때마다 불쾌한데 주민이든 관광객이든 누가 이 거리를 산책하고 싶겠냐. 이러다 이곳이 ‘성매매’의 이미지가 굳혀질까 걱정된다”라며“이곳을 관광명소로 만든다고 하더니 성매매 호객행위가 관광 콘텐츠이냐”고 비꼬았다.

행정이 개선에 나서지 않자 직접 성매매 호객 관련 사례들을 수집하고 있다는 주민 B(56)씨는 “다문화, 다문화 하더니 근래 들어선 외국인에게도 호객행위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라며 “1년이 넘게 경찰에 가서 얘기해도 ‘외국도 이렇고 육지부도 이렇다’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하는데 뭐가 달라지겠느냐”며 토로했다. 

고영림(58) 사단법인 제주국제문화교류협회장은 “제주도정이 산지천을 깨끗하게 정비하고 성매매도 근절하려면 광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해서 이곳에서 쫓겨난 주민만 수백 명”이라며 “그 큰 희생을 치렀으면 행정은 약속한 대로 성매매 호객 문제만큼은 말끔히 해결해야 하는데 이대로 방치하는 것은 ‘직무유기’”라고 질타했다.

◇경찰 “성매매 점차 감소 추세, 우려할 상황 아니야”

주민과 상인들의 불만이 날로 커지는 가운데 경찰 및 행정은 광장 조성 이후 성매매 단속 건수가 많이 줄어들어 크게 우려할 만한 상황이 아니고 인력과 예산이 부족해 집중적인 관리가 힘들다는 입장이다.

제주지방경찰청 관계자는 “(광장 조성하기)이전엔 훨씬 심했다. 지금은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영업하는 사람들이 남아있는 것”이라며 “(성매매 호객행위를)완전히 없애기는 어렵다. 서울이나 다른 어느 지역을 가도 그런 곳이 있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산지천 일대 관할서인 제주 동부경찰서 관계자는 “제주시 내 호객행위가 빈번히 발생하는 곳이 산지천 말고도 여러 곳이기 때문에 여기만 집중적으로 단속할 수 있는 인력이 안 된다”라며 “(성매매 호객행위를)뿌리 뽑아야 한다는 덴 공감하지만 환경이 개선돼서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제주=뉴시스】조수진 기자 = 16일 오후 제주시 일도1동 산지천 산책로 풍경. 지나는 사람은 없고 화려한 조명으로 꾸며진 다리만 휑하니 놓여있다. 멀리 밝게 빛나는 곳은 동문재래시장 입구이다. 2018.07.16. susie@newsis.com

【제주=뉴시스】조수진 기자 = 16일 오후 제주시 일도1동 산지천 산책로 풍경. 지나는 사람은 없고 화려한 조명으로 꾸며진 다리만 휑하니 놓여있다. 멀리 밝게 빛나는 곳은 동문재래시장 입구이다. 2018.07.16. [email protected]


제주시 관계자는 “탐라문화광장은 주취·노숙·성매매 등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있어 부서간 협조가 필요한 사안인데 부서마다 인력과 예산이 부족하다고 해 협조가 잘 안 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오는 7~8월 중으로 광장 활성화 TF팀이 모여 다시 논의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광장 활성화의 문제는 아무래도 공공이 나서는 것보다 민간이 주체로 나서 광장에서 행사 등을 자주 열고 하면 쉽게 해결이 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도의원 “밝은 분위기 조성하는 것이 우선”

전문가와 도의원은 우선 사람들을 모이게 하기 위해선 밝은 분위기를 형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고영림 협회장은 “뭔가 대단한 게 필요한 게 아니라 그저 어린아이부터 주민 누구나 찾고 싶은, 소소한 재미를 즐길 수 있는 공원이 되면 관광객은 자연스럽게 찾아가게 돼 있다”라며 “다만 지속가능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한 번 하고 끝내는 행사가 아닌 1년 365일 밝고 즐거운 분위기를 마련해주면 어둡고 습한 것은 물러갈 수밖에 없다”고 제언했다.

문종태 도의원(더불어민주당·제주 일도1·이도1·건입동)은 “단기적으로는 조명 및 방범용 CC(폐쇄회로)TV를 추가 설치해 광장을 밝게 오픈시킨다면 즉각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라며 “오는 8월 제주시 관계부서와 만나 이를 협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장기적으로 봤을 때 경찰이 모든 호객행위를 적발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 주민과 관광객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관광 콘텐츠를 광장에 채워 넣으면 불법 성매매가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성매매 근절이 단기간에 해결하기가 어려운 사안인 만큼 담당 공무원의 장기 근무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장영철 회장은 “사람이 바뀔 때마다 다시 또 처음부터 사안을 파악해야 하다보니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라며 “탐라문화광장처럼 도에서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대형사업은 업무의 연속성을 위해 계약직이나 별정직을 두는 등 담당 공무원이 장기 근무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다”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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