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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정부 부처 칸막이 행정, MOU로 풀 일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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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9-07-19 17:52:00  |  수정 2019-07-19 18: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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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뉴시스】변해정 기자 = 최악의 미세먼지로 고통받던 지난 3월.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는 환경부와 해양수산부가 2020년까지 항만 지역의 미세먼지를 절반 이상 줄이겠다며 양해각서(MOU)을 맺었다.

MOU는 정식 협정(계약)을 맺기 전 작성하는 문서다.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 간 또는 중앙부처와 민간 간 투자나 기술 협력에 관해 서로 합의된 내용을 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어 안 지켜도 그만이다.
 
그런데도 환경부와 해수부가 굳이 MOU를 체결한 것은 내년 '항만지역 등 대기질 개선에 관한 특별법' 시행 전 미세먼지 저감 사업을 잘 해보자는 부처 간 공동노력 의지를 표명하는 차원으로 언뜻 보면 그럴 듯하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앞으로 부딪힐 일이 많을텐데 싸우지 말고 협의하자'는 측면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항만은 국내 수출·입 화물의 99%를 처리하는 국가경제의 요충지인 동시에 국내 미세먼지의 주요 배출원이다. 2015년 기준 국내 미세먼지 배출량의 10%(3만2300t)를 차지하는 선박과 대형 경유차량의 왕래가 잦다. 하지만 그간 항만 내 미세먼지 배출 현황을 통합적으로 파악·관리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지역적 관할과 부처별 업무 경계가 확실했던 탓으로 해수부가 측정한 데이터를 환경부에 공유해 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공유해 달라는 요구가 마치 '영역 침범'으로 여겨졌던 셈이다. 그러니 정책 조율하기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정부부처끼리 MOU까지 맺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유사한 중앙부처 간 MOU는 앞으로도 줄줄이 예정돼 있다. 행정안전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르면 다음주 공공 부문의 클라우드 보안인증 제도를 개선하고 국가의 디지털 전환 가속화를 추진하는 내용의 MOU 2건을 맺는다.

중앙부처 간 MOU를 체결한 사례는 드물지만 그동안 계속 있어 왔다. 특히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부처 간 칸막이를 없애라는 지시에 너도나도 MOU를 맺기도 했다. 

하지만 손 잡는 듯 하다가 재연되는 고질적 '밥그릇 싸움'으로 인해 정책 혼선을 빚었던 일이 비일비재했던 탓에 MOU를 맺고 장관들이 악수하는 모습을 보고 '저걸 왜 하나' 생각하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 

실제로 저탄소차 협력금제(환경부·기재부·산업부), 자동차 연비(국토부·산업부), 다문화가정 자녀 공교육 진입 지원(법무부·교육부) 등은 서로 다른 부처들이 MOU 체결로 추진한 정책들이지만, 결국 실패했다. 

신차를 살 때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따라 보조금과 부담금을 부과하는 저탄소차 협력금제만 보더라도 당초 2014년 7월 시행하기로 했다가 산업부와 자동차업계의 '이중규제' 문제 제기에 2차례에 걸쳐 연기됐다가 폐기 수순을 밟게 됐다. 정책 시행을 놓고 오락가락을 반복하다가 물거품이 된 것이다.

부처 간 갈등이 무조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진 부처가 똑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어찌보면 더 이상하다. 충돌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문제를 발견해 개선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더 유익할 수 있다.

그럼에도 MOU를 체결하는 것은 부처 간 갈등으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 해보자는 일말의 노력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부처 이기주의'가 만연한 상황에서는 아무리 MOU를 체결한다 해도 '칸막이 행정'이라는 고질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국민의 눈에 정부는 하나다. 칸막이 행정에서 오는 피해는 고스란히 정책 소비자인 국민과 기업에게 돌아간다. 그래서 부처 간 영역 다툼도 오롯이 정책 소비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hjpyun@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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