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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 문화소통]외국인들에게 어려운 ‘은·는·이·가’

등록 2020.01.08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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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의 ‘문화소통’

[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배울 때 어려운 점들이 있다. 정관사 ‘the’와 부정관사 ‘a’는 그 용어도 어렵거니와 개념 잡기도 쉽지 않다. 주어가 3인칭 단수이고 시제가 현재이면 동사 뒤에 ‘s’나 ‘es’를 붙이는 것도 어렵다. 원어민들처럼 습관들이기까지 애를 많이 써야 한다. 또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우리말과는 다른 체계의 어순을 익히는 것도 몹시 어렵다.

그와 반대로, 우리나라를 좋아하는 한류 팬 등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울 때 어려운 점은 무엇일까?

영국에서 온 캐서린은 유튜브 채널 ‘CLAB 걸즈’의 ‘영국여자가 한국어를 처음 배울 때 충격 받은 것 TOP5’편에서 “한국어는 영어랑 문장 순서가 정반대라, 규칙을 배워도 문장 만드는 것이 너무너무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 점은 우리도 마찬가지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데, 우리말 주어토씨에 대한 어려움 토로는 예상 밖이다.

“한국어는 ‘은·는·이·가’, ‘을·를’ 있잖아요. 영어는 그런 게 없잖아요. 그래서 처음 배울 때가 아니고 지금도 헷갈릴 때가 있어요. 근데 ‘은·는·이·가’ 언제 ‘은·는’ 사용해야 되고, 언제 ‘이·가’ 사용해야 되는지 아직도 헷갈릴 때가 많아요. 그냥 이거 틀리면 100% 좋은 한국어 아니니까 진짜 한국어 잘한다고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왜냐면 한국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한국어 배우면서 이렇게 ‘이·가, 은·는’ 사용하는 건 그냥 생각 안하고 그냥 이거 머릿속에 있는 거예요. 근데 외국인이라면 이거 배워야 되는데,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배우지 않으면 진짜진짜 힘들어요.” 

한류의 열풍으로 인해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이 점증하고 있는데 그들의 상황 또한 캐서린과 별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은·는·이·가’를 사용하는 규칙을 알게 된다면, 그들은 좀 더 편안하고 빠르게 우리말을 습득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대부분 ‘은·는·이·가’를 무의식적으로 구사할 뿐이지, 그 규칙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캐서린은 한국어를 전공했고 지금은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데도 아직도 주어토씨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걸 보면, 우리말 교육기관에서 관련 규칙을 제대로 또는 효율적으로 가르치지 않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최초로 제시한 연구가는 ‘이해영어’(1981)의 저자인 ‘박기엽’ 선생이다. 1992년, 나는 직접 다음과 같이 들었다. “‘은·는·이·가’가 아니라 순서를 조정하여 ‘이·은·는·가’로 교육해야 한다. 왜냐하면 한국어 주격토씨는 주어 끝음절의 받침 유무에 따라 ‘이·은’과 ‘는·가’로 갈라지기 때문이다. 즉, 주어 끝부분이 ‘책’처럼 종성이 있는 경우엔, ‘책이’ 또는 ‘책은’이 되지만 ‘책는’ 또는 ‘책가’는 불가하다. 반대로, ‘형제’의 ‘제’처럼 끝말에 종성이 없는 경우엔 ‘형제는’ 또는 ‘형제가’는 되지만 ‘형제이’ 또는 ‘형제은’은 안된다.”

정리하자면, 주어로 쓰이는 ‘명사’의 끝말에 받침이 있을 경우 그 주어토씨는 ‘이·은’이고, 받침이 없을 때는 ‘는·가’가 붙는 것이 한국어의 규칙이다. ‘이·은’이 한 세트고, ‘는·가’가 다른 한 세트다. 따라서 세종학당을 위시한 한국어 교육기관들에서 우리말을 배우는 외국인들에게 주어토씨의 규칙과 함께, 주어토씨를 ‘이·은, 는·가’의 순서로 가르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일 것이다. ‘은·는·이·가’는 체계 없는 배열의 말이라 혼란을 가져오지만, ‘이·은·는·가’는 우리말 원리를 고려한 체계적 배열이라 학습에 이해와 능률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한편, “최근에 이르러서는” “네가 간다면은”에서의 ‘는’과 ‘은’은 주어토씨가 아니다. 그 앞의 ‘이르러서’와 ‘간다면’이 명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명사·명사구·명사절이나 대명사 뒤에 붙은 ‘는’과 ‘은’만이 주어토씨다. 그렇지 않은 ‘는’과 ‘은’은 강조의 뜻을 나타내는 보조사이다. 이 점을 잘 이해시킬 수 있다면, 우리말 배움은 한층 더 쉽고 편안해질 것이다.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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