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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보드]허재·조우현·방성윤 계보 이은 MVP 이주영

등록 2022.08.30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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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18 남자농구, 22년 만에 아시아 정상 탈환…통산 네 번째 우승

189㎝ 장신 가드 이주영, MVP·베스트5 선정

"허재·조우현·방성윤·이주영, 또래 압도하는 단단한 몸과 힘…슛·돌파 모두 갖춰"

[서울=뉴시스]U-18 농구대표팀 이주영 (사진 = FIBA아시아 SNS 캡처)

[서울=뉴시스]U-18 농구대표팀 이주영 (사진 = FIBA아시아 SNS 캡처)

[서울=뉴시스]박지혁 기자 = 한국 18세 이하(U-18) 남자농구가 22년 만에 아시아 정상을 탈환했다.

이세범(용산고) 감독이 이끄는 한국은 28일(한국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열린 제26회 국제농구연맹(FIBA) U-18 아시아 챔피언십 결승에서 일본을 77-73으로 물리치고, 2000년 이후 22년 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8강에서 개최국 이란, 준결승에서 최다 우승국(11회) 중국, 결승에서 숙적 일본을 차례로 꺾었다.

농구계의 이목을 집중하게 한 선수는 189㎝의 장신 가드 이주영(삼일상고)이다. 평균 23.2점(1위) 4.6어시스트(공동 5위) 1.8스틸(공동 15위)을 올리며 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일본과 결승에선 3점슛 3개를 포함해 28점을 쓸어 담았다. 대회 최우수선수(MVP)와 베스트5에 이름을 올렸다.

이주영은 2020년 KBL이 선정한 '유망 유소년 해외 선수 육성 프로젝트' 1기 합격생(2명)으로 떡잎부터 남다르다.

슛, 돌파를 가리지 않는 공격력과 운영능력을 겸비했고, 팀을 끌고 가는 리더십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팀을 이끄는 간판은 대회마다 존재했다. 이주영에 앞서 허재, 조우현, 방성윤이 이 대회에서 우승을 이끌며 황금세대의 탄생을 알렸다.

[서울=뉴시스]1998년 기아 시절의 허재 (사진 = KBL 제공)

[서울=뉴시스]1998년 기아 시절의 허재 (사진 = KBL 제공)

허재는 1984년 서울에서 열린 8회 대회에서 첫 우승을 이끈 주역이다. 승부처마다 해결사로 나서 한국 선수 중 유일하게 대회 베스트5에 올랐다.

1984년 4월20일자 조선일보에 따르면, 최정길 감독은 허재에 대해 "볼 센스나 기량 면에서 완벽하다"고 평가했다.

허재는 농구대잔치, 프로 출범 이후에도 꾸준히 가장 사랑받는 스타로 성장했고, 은퇴 이후에는 전주 KCC와 국가대표팀 사령탑을 지냈다.

두 번째 우승은 1995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13회 대회다. 조우현, 조상현, 황성인, 김성철, 이규섭, 임재현 등이 주축이었다.

대회 베스트5 조우현은 향후 미국프로농구(NBA) 무대에 진출한 센터 왕즈즈의 중국을 물리치는데 일등공신이었다.

슛과 돌파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득점 기계였다. 이듬해 세계 청소년 올스타게임에 출전한 이력도 있다.

당시 함께 우승을 일궜던 이규섭 전 서울 삼성 코치는 "프로 시절의 몸이 이미 고등학교 때 완성된 것 같았다. 무슨 이런 선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힘과 기술 모두 완성형 선수였다"고 했다.

[서울=뉴시스]2001년 LG 시절의 조우현 (사진 = KBL 제공)

[서울=뉴시스]2001년 LG 시절의 조우현 (사진 = KBL 제공)

조상현 창원 LG 감독도 "고교 시절에 함께 한 조우현은 그냥 한국에서 농구를 제일 잘하는 선수였던 기억"이라고 했다.

아마추어 시절의 기량과 명성을 기억하면 프로 커리어는 다소 아쉬움을 남긴다.

1999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로 대구 동양 유니폼을 입은 조우현은 프로 통산 458경기에 출전해 평균 11.6점 3어시스트 2리바운드를 기록했다. 2009~2010시즌 전주 KCC에서 은퇴했다.

2000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16회 대회에선 방성윤이 주인공이었다. 195㎝의 신장에 내외곽을 넘나들며 득점을 쓸어 담았다. 대회 MVP를 수상했다.

한국은 결선리그에서 중국에 103-107로 석패했지만 결승에서 다시 만나 120-92, 28점차 대승을 거뒀다.

방성윤은 연세대 재학 시절인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막내로 태극마크를 달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후 미국 무대에 도전했다.

그러나 부상 악재가 겹치며 현역 생활을 길게 하지 못했다. 미국을 노크하다가 2005~2006시즌 서울 SK 유니폼을 입고 데뷔해 2010~2011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서울=뉴시스]2006년 SK 시절의 방성윤 (사진 = KBL 제공)

[서울=뉴시스]2006년 SK 시절의 방성윤 (사진 = KBL 제공)

2007~2008시즌 평균 22.1점을 올리는 무서운 득점력을 뽐냈지만 40경기 이상을 소화한 시즌이 한 번도 없을 만큼 부상이 계속해서 발목을 잡았다. 자기 관리가 소홀했다는 평가가 많다.

통산 기록은 165경기에서 평균 17.5점 4.2리바운드 2.5어시스트를 올렸다. 경기당 3점슛은 2.6개. 폭발력은 역대급 선수로 기억된다.

이 전 코치는 "이주영은 여러 능력이 골고루 훌륭하지만 특히 가장 큰 무기는 또래들을 압도하는 힘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청소년기인 U-18 대회에서 우승할 때, 핵심이었던 허재, 조우현, 방성윤 모두 성인 못지않은 파워를 보유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주영은 순간적인 파워가 매우 좋다"고 했다.

조 감독은 "공격의 기본이 슛과 돌파"라며 "기량과 완성도에 차이가 있지만 넷은 어려서부터 두 능력을 모두 자기 것으로 갖춘 선수들이다. 이주영이 앞으로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꾸준히 노력해 대성했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했다.

이주영은 "대한민국의 농구를 보여준 것 같아서 기쁘다. 앞으로도 더 배우고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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