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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이젠 이재명 '선택의 시간'

등록 2023.09.22 10:36:08수정 2023.09.22 13:5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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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이젠 이재명 '선택의 시간'



[서울=뉴시스] 이승재 기자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한 21일 저녁.

한 정당 당직자에게 "어쨌든 정치사에 한 획을 그은 하루는 맞지 않냐"고 물었다. 국무총리 해임 건의안과 현직 검사 탄핵 소추안이 국회 문턱을 넘은 것도 모두 처음이어서다. 그 관계자는 "긍정의 의미보다는 커다란 오점을 남긴 정도일 것 같다"고 답했고, 그 표현이 맞을 수도 있겠다고 수긍했다.

그날 오점을 남긴 이들은 자정에 가까운 시간까지 책임 공방을 벌였다. 헌정 사상 첫 야당 대표 체포동의안 가결이라는 결과를 맞은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는 계속해서 고성이 오갔다. 탈당하겠다는 의원도 있었고, 이 과정에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한 중진 의원은 문밖에서 대기 중이던 기자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며 "살벌하다"고 했다.

그간 속앓이를 한 친이재명(친명)계와 반란에 성공한 비이재명(비명)계 모두 흥분 상태였을 거다. 그 결과 불똥은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의원들은 박광온 원내대표에게 사퇴를 요구했고, 결국 원내지도부 총사퇴로 이어졌다. 그간 박 원내대표는 당내 비주류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한 비명계 재선 의원은 이를 두고 "화풀이"라고 규정했다.

같은 시간 이 대표의 강성 지지자들은 비명계 의원들의 명단을 돌렸다. 겉은 파랗지만(민주당), 속은 빨간(국민의힘) 이른바 '수박' 색출 작업에 나선 것이다. 이를 의식한 의원들은 자신의 SNS를 통해 '나는 부결을 찍었다'는 취지의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회의장에서는 설전이, 온라인상에서는 부결 인증 릴레이가 이어졌다. 유례없는 상황을 맞은지 몇 시간 만에 이러한 촌극이 빚어졌다.

목숨을 건 단식에도 구속 기로에 서게 된 이 대표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상황에 대한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모든 책임은 당 대표에게 있다는 원론적인 얘기는 빼더라도 당장 3개월 전에 했던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바꿨다. 분명 그는 지난 6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정치수사에 대한 불체포권리를 포기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를 믿었던 사람들은 체포동의안 표결을 하루 앞둔 시점에 올라온 이 대표의 글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검찰 독재의 폭주 기관차를 국회 앞에서 멈춰 세워달라"며 사실상 부결 지령을 내렸다.

이제는 수습의 시간이다.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의 승리가 목표라면 이 대표가 당을 살리기 위한 길을 고심하고 직접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단식을 멈추고 회복한 뒤 자신의 둘러싼 '사법리스크'는 그것대로 대응하면 된다. 이번 표결 결과로 당의 발목을 잡고 있던 '방탄'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만약 법원에서 영장 기각 결정을 받아내면 전화위복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한가로이 표류할 시간은 아니다. 원내대표를 찍어내는 것도, 배신자·해당 행위를 운운하는 것도 결국 계파 갈등으로 비칠 뿐이다. 편을 갈라 싸우는 이전과 같은 구도가 아니라 장면 전환이 필요한 때다. 한 비명계 초선 의원은 표결을 앞두고 한 통화에서 "결국 핵심은 이재명 체제로 내년 총선을 치를 수 있느냐, 없느냐"라고 했다. 장기 단식을 하면서 대여 투쟁에 나섰던 이 대표로선 억울한 측면이 있겠지만, 당 분란의 책임을 지고 스스로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 정치생명 연장이 아닌 선당후사가 필요한 시점이다. 만약 체포안 가결 사태에 칼끝을 당내 특정 계파에게 돌리겠다면 그것도 본인의 선택일 것이다. 현명한 결단만 남았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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