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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전설' 이형택…한국 테니스 부흥기 이끌까

등록 2013.05.18 06:00:00수정 2016.12.28 07: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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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이근홍 기자 = 지난 15일 국내 테니스팬들은 오랜만에 가슴이 설렜다. 전면에 내세울 수 있는 이렇다 할 스타선수 한 명 없이 남의 집 잔치만 구경해야했던 팬들에게 익숙한이름 석 자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한국 테니스의 '간판' 이형택(37)이 코트로 돌아왔다. 그는 지난 15일 부산 금정구 금정체육공원 스포원 테니스장에서 열린 남자프로테니스(ATP) 부산오픈 챌린저 테니스대회 복식 1회전에 임규태(32)와 함께 출전했다.

 2009년 은퇴를 선언한 뒤 4년 만에 공식 대회에서 라켓을 잡은 이형택은 이날 대회 3번 시드를 배정받은 오스발트(27·호주)-안드레아스 실레스트롬(32·스웨덴) 조와 맞붙어 0-2(2-6 2-6)로 패했다.

 분전은 했으나 승리를 따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상대는 각각 복식 세계랭킹 106위와 135위를 달리고 있는 수준급 현역 선수들이었다.

 이형택도 "이벤트성으로 경기에 출전하는 만큼 승부를 떠나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봐 달라"고 말했을 만큼 애초부터 결과에는 큰 의의를 두지 않은 경기였다.

 이형택은 당초 9월 서울에서 열리는 한국선수권대회을 통해 복귀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우연치 않게 와일드카드를 얻게 돼 부산대회에 참가하게 됐다.

 '명불허전. '테니스 전설'의 복귀는 예상보다 훨씬 큰 파장을 낳았다. 평일 저녁 시간대에 펼쳐진 경기였음에도 200여명이 넘는 관중들이 이형택을 보기 위해 센터코트를 찾았다. 테니스 스타의 명맥이 끊긴 근래에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팬들은 즐거웠다. 아무런 준비 없이 갑자기 나서게 된 이형택이었기에 경기 도중 크고 작은 실수가 많았지만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그를 응원했다. 간간히 이형택의 멋진 플레이가 나올 때에는 모두가 그의 이름을 연호하며 축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형택은 "준비 없이 이벤트성으로 출전한 대회였기 때문에 경기 결과에 큰 아쉬움이 남진 않는다"며 "(4년을 쉬던)내가 갑자기 나가서 승리를 챙길 수 있을만한 대회 규모도 상대도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경기 당일 예상보다 훨씬 많은 팬들이 직접 경기장에 찾아왔더라. 정말 기분이 좋았다"며 "약 4년 만에 코트에 섰지만 그렇게 오래 쉬었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뭔가 친숙하고 편안한 느낌이었다. 승부에 연연하지 않고 부담 없이 경기를 한 덕분에 오히려 팬들과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오랜 만에 라켓을 잡은 소감을 전했다.

 일각에서는 최근 침체기를 맞고 있는 테니스계의 흥행을 위해 노장인 그가 무리하게 코트로 돌아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이형택이 복귀를 선언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이제 30대 후반에 접어든 자기 자신의 한계를 알아보기 위해 '인생 마지막 도전'에 나선 것이다.    

 이형택은 "내 복귀를 두고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는데 사실 '한국 테니스계의 흥행을 내가 직접 나서서 이끌겠다'와 같은 생각은 해본 적도 없다"며 "그저 한 집안의 가장, 그리고 한 명의 테니스인으로서 지금 운동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면 내가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를 확인해보기 위해 라켓을 잡은 것 뿐이다. 40대에 접어들면 생각은 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을 것 같아서 30대 후반인 지금이 인생 마지막 기회이라는 생각으로 도전에 나섰다"고 밝혔다.

 이미 욕심도 승부에 대한 집착도 벗어낸 이형택이기에 앞으로 그의 테니스는 즐거울 수밖에 없다.

 이형택은 "아무리 열심히해도 현실적으로 내가 다시 세계랭킹 100위 안에 드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이제부터는 집착을 버리고 즐거운 테니스를 하고 싶다. 이번 대회를 치르며 오랜만에 팬들을 만나니 정말 기분이 좋았다. 일단 복귀 결정을 내린 만큼 팬 여러분께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오는 9월까지 차분히 몸을 만들며 잘 준비하겠다. 지금보다는 훨씬 나아진 경기력을 보여드리겠다"고 말했다.

 처음 의도가 어찌됐건 이형택의 등장은 잠잠했던 테니스계에 활기를 불어넣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 테니스의 흥행을 위한 좋은 기회가 마련된 셈이다.

 주원홍(57) 대한테니스협회장은 "이형택 같은 스타 선수가 다시 코드로 돌아와 정말 기쁘다. 성적을 떠나 그가 테니스를 즐기는 모습 그 자체만으로도 국내 테니스팬들은 큰 즐거움을 얻게 될 것이다"며 "9월 서울 대회를 이형택의 실질적인 복귀전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 이전에 컨디션을 끌어올리기 위해 기회가 되는대로 몇 차례 실전 경기에 나설 예정이다. 오는 7월에는 공식적으로 복귀 기자회견도 개최할 계획이다"고 전했다.

 이형택은 한국 테니스의 전설과도 같은 존재다.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과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그는 2000년과 2007년 US오픈 16강에 올라 한국 남자 테니스의 위상을 전 세계에 알렸다.

 2003년에는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ATP 투어 아디다스컵 인터내셔널 결승에 서 당시 랭킹 4위였던 후안 카를로스 페레로를 제압하며 한국 선수 최초로 투어 단식 우승을 거머쥐었다. 2007년 8월에는 개인 최고 랭킹인 36위에 오르기도 했다.

 2009년 현역에서 은퇴한 그는 '이형택 테니스아카데미재단'을 세워 후진 양성에 힘써왔다. 지난달 26일 막을 내린 2013주니어데이비스컵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최종 예선에서는 한국 남자주니어대표팀을 정상에 올려놓는 성과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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