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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도발에 무색해진 文 한반도 운전자론'

등록 2017.09.04 12:2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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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청와대 집무실에서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으로부터 걸려온 대통령 당선 축하 전화를 받고 있다. 2017.05.11. (사진=청와대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청와대 집무실에서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으로부터 걸려온 대통령 당선 축하 전화를 받고 있다. 2017.05.11. (사진=청와대 제공) [email protected]


 실체 없이 내세운 대화론···정책 아닌 '담론·레토릭' 전락 우려
 
【서울=뉴시스】김태규 기자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버튼'을 누르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안보정세는 급격히 얼어붙었다. 레드라인(Red line·한계선)에 임박한 북한의 고강도 도발에 남북관계에 대한 주도권을 갖고 북핵 위기를 해결하겠다던 문재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도 무색해졌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북한은 지난 3일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일대에서 6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지난해 이뤄진 5차 핵실험(9월9일) 이후 1년 만이자 문재인 정부 들어서 첫 핵실험이었다.

 인공지진 규모 5.7로 히로시마 원폭의 5~6배에 해당하는 위력을 남긴 이번 6차 핵실험은 그 위력만큼이나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커다란 생채기를 남겼다. 후보시절 북한의 6차 핵실험 시 남북간 대화는 어렵다고 밝힌 그대로의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4월27일 방송기자클럽초청 토론회에서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강행하면 남북 간 상당 기간 대화는 불가능해지며, 우리가 5년 단임 정부임을 생각하면 다음 정부에서도 남북관계 개선이 사실상 어렵다"고 밝힌 바 있다.

 취임 직후 이뤄진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인정받았던 남북문제에 대한 주도권을 토대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한반도 운전자론' 자체가 근본적인 한계에 부딪혔다는 지적이다.

 전략적 목표(대화)와 전술적 대응(압박)을 구분짓고 대화와 압박의 병행을 토대로 북한 문제를 다루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접근법부터 잘못된 것이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북한이 도발을 멈추지 않는 상황에서 대화의 여지는 매번 사라졌고, 그때마다 관성적으로 강력한 제재와 압박이 이뤄지면서 다시금 대화의 가능성을 차단해버리는 악순환이 반복됐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상황은 문 대통령이 남북관계 주도권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에서 대북 관계의 외교적 균형추를 잃게 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실적 상황을 소홀히 취급한 추상적 수사(修辭)로 일관한 것이 오히려 화를 불렀다는 설명이다.  

 나아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이끌었던 '베를린 선언'을 천명하기 전에 북한과 물밑 접촉을 먼저 시도한 것과 달리 문 대통령은 북한과의 아무런 교감없이 '한반도 평화구상'을 던졌다는 점이 큰 차이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7월28일 언론 인터뷰에서 "김대중 정부 시절 베를린 선언처럼 북측에 사전에 내용을 알리고 취지를 설명해 북측의 호응을 이끌어 내야하는 데 전혀 그런 과정 없이 제안을 던졌다"고 지적한 바 있다.
【서울=뉴시스】안지혜 기자 = 지난해 1월 4차 핵실험이 수소탄 시험이라고 주장했던 북한이 1년 8개월여 만에 수소탄을 ICBM에 장착하기 위한 탄두를 개발해 실험에 성공했다 발표했다. hokma@newsis.com

【서울=뉴시스】안지혜 기자 = 지난해 1월 4차 핵실험이 수소탄 시험이라고 주장했던 북한이 1년 8개월여 만에 수소탄을 ICBM에 장착하기 위한 탄두를 개발해 실험에 성공했다 발표했다.  [email protected]


 외교가 안팎에서는 실체가 없는 상황에서 북한과 대화를 하겠다는 원칙론만을 내세운 한반도 운전자론은 하나의 담론(談論)에 지나지 않으며, 정치적 수사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북한 역시 표면적으로는 강력 대응을 주문하면서 유화적 제스처를 동시에 취하고 있는 정부의 모순된 상황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감추지 않고 있다.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달 27일 논평을 통해 "남조선 당국은 그 무슨 운전석이니 뭐니 하며 처지에 어울리지도 않는 헛소리를 하기보다는 차라리 자기 몸값에 맞는 의자에 앉아 입 다물고 있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처사"라며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을 꼬집었다.

 나아가 북한의 도발이 거듭되면서 굳건하다던 한·미 관계도 이상 기류가 감지되고 있는 모양새다. 압박 속에서도 대화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생각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공식적으로 불만을 제기하는 상황에 놓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기 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북한에 대한 유화 정책은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자신의 말을 한국이 이제서야 이해하게 됐다"며 문 대통령의 대북정책 기조를 지적했다.

 이를 두고 6월 워싱턴 정상회담 이후 문 대통령이 '운전자' 역할을 자처하면서 북한과의 대화를 강조한 것에 대한 불쾌한 감정이 표출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이에 청와대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이 게재된지 3시간만에 입장문을 내고 "한·미 양국은 제재와 압박을 통해 북한으로 하여금 대화의 장으로 나오도록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고 한·미간 이견 표출 논란을 진화했다.
 
 하지만 북핵 도발이 감행되고 미국 등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압박이 거세지면서 우리나라가 한반도 문제에서 주도권을 발휘할 여지는 점점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다. 현 정부 대북정책의 근본적인 방향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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