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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결혼?" "월급은?"···2030, 친척 피해 '명절 잠수'

등록 2017.10.04 08: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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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결혼?" "월급은?"···2030, 친척 피해 '명절 잠수'


2030 "친척 질문 세례에 출근보다 연휴가 더 피곤"
중장년층 "무슨 질문을 해도 질색하니 대화 어려워"
"2030, 부모님 세대 바꿀 수 없으니 피하겠다는 것"

 【서울=뉴시스】남빛나라 기자 = 직장인 전모(30·여)씨는 이번 추석 연휴에 가까스로 할머니 댁 방문을 피했다. 연휴 기간 방에만 있을 수 있는 그럴듯한 일정을 만들어내서다. 전씨는 일찌감치 지난 1일 라섹수술을 받았다. 며칠간 제대로 앞을 보지 못하고 방에만 있어야 하는 덕에(?) 자연스레 추석 연휴는 홀로 집에서 보내게 됐다.

 최장 연휴에 전씨가 방콕족(혼자 방에만 있는 사람)을 자처하게 된 것은 친척들 때문이다. 오랜만에 만난다는 반가움보다는 온갖 질문 세례에 피곤함이 앞선다.

 전씨는 "왜 아직도 결혼을 안 하느냐, 남자친구는 없냐, 살이 찐 것 같다 등 사생활과 관련된 질문이나 지적을 끊임없이 듣는다"며 "회사 생활을 하다보면 이렇게 긴 연휴에는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런데 이런 말을 들으면 쉬어도 쉬는 느낌이 아니고 오히려 더 피곤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번 연휴에는 미리 해외여행 일정을 못 잡아서 라섹을 하기로 했다"며 "원래 겨울 휴가 때 할 계획이었지만 친척 집에 가지 않을 구실을 만들기 위해 급히 예약했다"고 말했다.

 부산이 고향인 권모(29)씨도 사정은 비슷하다. 2~8일 쉬지만 2일부터 이틀간 파주 출판단지 내 게스트하우스에서 시간을 보냈다. 부산에는 4일부터 사흘만 머물 예정이다.

 부모님은 내심 더 있기를 바라는 눈치지만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한 권씨에게는 사흘도 짧은 기간이 아니다.

 권씨는 "친척들이 모이면 남자친구가 있느냐부터 시작해서 결혼 이야기로 이어진다. 남자친구가 있지만 없다고 할 것"이라며 "파주에 있는 동안 휴대전화를 꺼둘 계획이다. 집에서 가족과 있는 것보다 그렇게 지내는 편이 더 편안하다"고 털어놨다.

 추석 연휴 기간 친척들과의 만남을 최대한 피하려는 20~30대를 주변에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다. 연휴 기간 당직 근무를 오히려 반기는 경우도 많다.

 이모(29)씨는 "2일 당직 근무 지시를 받았는데 사실 (추석 당일인) 4일에 서고 싶다"며 "4일에 서면 큰집에 가지 않아도 된다. 큰집에 가봤자 월급이 왜 그렇게 적냐는 둥 기분 좋지 않은 말이나 듣는다"고 말하며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

 중장년층도 할 말은 있다.

 한모(59)씨는 "결혼도 묻지 말라, 시험도 묻지 말라, 취업도 묻지 말라고 한다. 대체 오랜만에 만난 아이들에게 무엇을 물으라는 것이냐"며 "요새 젊은 세대들은 어른이 질문을 하기만 하면 질색하니 말을 걸기도 어렵다"고 개탄했다.

 문화평론가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전공 교수는 "다른 나라에서 100년에 걸쳐 진행된 세대 간 변화가 우리나라는 30년에 걸쳐 진행돼 버렸다. 세대갈등이 연착륙하는 게 아니라 경착륙을 했다"며 "20~30대 입장에선 부모님 세대를 하루아침에 바꾸긴 어려우니 아예 피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세대 간 인식 차이는 통계상으로도 드러난다. 특히 결혼이 화제가 되면 20~30대와 윗세대 간 견해차를 좁히기 쉽지 않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6 사회조사 중 '결혼·이혼·재혼에 대한 견해' 항목을 보면 60세 이상 응답자의 73.2%가 결혼을 해야 한다고 답했다. 50~59세 응답자 59.8%도 이처럼 응답했다.

 반면 20~29세와 30~39세의 경우 결혼을 해야 한다고 답변한 비중이 각각 41.9%, 40.7%에 머물렀다.

 이 교수는 "이런 모습이 이미 하나의 문화가 됐다. 시장도 여기에 반응해서 명절을 혼자 보내는 20~30대를 위한 연휴 호텔 패키지를 내놓고 있다"며 "이들의 삶에서 가족이란 이질적인 존재가 됐고 자연스레 분리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삶의 가치가 바뀌어 가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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