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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아, 답답하다 비참하다 슬프다···연극 '사물함'

등록 2018.04.20 10:3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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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아, 답답하다 비참하다 슬프다···연극 '사물함'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부조리한 시스템'에서 청소년은 일찍 철이 든다.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 연극 '사물함'은 살벌한 현실에 상처를 당하며 살아가는 청소년을 그린다.

'사물함'을 통해 극작가로 데뷔한 김지현과 이 작품으로 첫 번째 청소년극을 연출한 극단 '여기는 당연히, 극장'의 구자혜 가 보여주는 청소년의 자화상은 섬뜩하다.

편의점에서 최저시급도 받지 못한 고등학생 '다은'은 일하던 중 창고가 무너져 죽는다. 이후 그녀가 다녔던 고등학교에 다은의 망령이 부유한다. 다은의 유일한 친구 '연주', 다은에게 담배를 샀던 '재우', 다은이 아르바이트하던 편의점 사장의 딸 '혜민', 편의점이 세를 내고 있는 건물주 딸 '한결'의 삶은 조금씩 침잠한다.

이들이 이해관계를 놓고 빚어지는 풍경은 무기력하면서도 폭력적이다. 객석의 심실과 심방이 찢어발겨진다. '폐기'로 끼니를 때우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라이브로 소통하는 다은, 특별과외와 고액 상담심리로 자신들만의 마천루를 공고하게 쌓고 부채감 회피에 급급한 한결·혜민·재우, 친구의 죽음에도 그 마천루에 올라가기 위해 애쓰는 연주. 

70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에도 온갖 정치와 계급 문제가 빽빽한 밀도로 담긴 '사물함'을 지켜보고 있으면, '부조리의 감수성'이 태동하게 된다. 무대 위 파워게임에 객석은 멍이 든다.

스마트폰 게임 캐릭터가 죽자 한결이 자신에게 말을 시킨 혜민에게 '너 때문에 죽었다'고 일갈하는 순간, 다은의 죽음이 겹쳐지면서 객석은 심하게 흔들린다. 청소년기를 벗어난 배우 김윤희, 이리, 정연주, 정원조, 조경란은 감정의 곡예사가 돼 아슬아슬한 청소년기를 진짜 살아낸다.

[리뷰]아, 답답하다 비참하다 슬프다···연극 '사물함'

열리지 않는 다은의 '사물함'은 꿉꿉하다. 그곳에서 알 수 없는 냄새, 확인되지 않은 말들이 잠겨 있고 수군거림은 그래서 더 커진다. 청소년극이라고 하면 으레 떠올릴 초콜릿처럼 달달한 대사, 솜사탕처럼 뭉근한 희망은 없다. 마음을 긁어대는 지저분한 현실이 무대 위에서 그대로 작동하고 있다. 

기이한 청소년극 '사물함'이 끝나면 '이것은 청소년극이 아니다'라고 외치고 싶어진다. 그런데 의심할 수 없게 현실을 담아낸 명백한 청소년극이다. '이미지의 배반'은 실제와 재현의 관계 사이에서 요동치며 풍부한 맥락을 만들어낸다. 청소년극에서 세월호 참사, 송파 세모녀 죽음이 연상되는 이유다. 개막 전부터 좌석이 대부분 동이 났다. 20일부터 5월6일까지 국립극단 소극장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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