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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그들은 왜 유실물을 찾지 못했나

등록 2023.10.25 17:30:58수정 2023.10.25 20:5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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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그들은 왜 유실물을 찾지 못했나


[서울=뉴시스]김래현 기자 = "유실물을 찾으러 가보긴 해야 할 건데 아직 용기가 안 나요. 우리 아들이 신고 나갔던 신발을 보면 아픈 기억이 또 떠오를까 봐 무서워서요."

고(故) 조경철(29)씨 어머니 박미화씨는 아들의 유품인 신발과 무선 이어폰을 찾지 못했다. 7남매 중 둘째인 조씨는 가족을 살뜰하게 챙기는 아들이었다.

박씨는 아들이 입고 있던 분홍색 후드티와 지갑, 휴대전화 등은 경찰이 사고 당시 전달해 줘서 받았다. 그러나 유실물 센터에 직접 가볼 엄두는 내지 못했다.

경철씨의 또 다른 유품을 마주하면 무너져 내릴까 두려워서다. 박씨는 "언젠가 아들의 물건을 찾으러 가지 않을까"라면서도 "당장은 못 갈 것 같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 이후 1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주인 품으로 돌아가지 못한 유실물이 많다.

유실물 1412점 가운데 유가족이나 생존자가 찾아간 물건은 451점으로 전체의 31.9%다. 유실물 961점은 여전히 누군가 자신을 찾아주길 기다리고 있다.

참사 직후 서울 용산구 원효로 다목적 실내체육관에 보관하던 유실물들은 지난해 11월13일부로 용산경찰서 서고로 옮겨졌다.

그 이후 11개월 동안 서고 밖으로 나온 유실물은 단 20점이다. 지난 2월 고인의 누나가 남성용 의류를 찾아간 게 마지막이었다. 유실물이 보관된 서고에 8개월가량 발걸음이 끊긴 셈이다.

경찰은 유실물이 유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방침까지 바꿨다. 습득 6개월이 지난 유실물은 폐기한다는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별한 지침이 내려오기 전까지는 남은 유실물을 계속 보관할 계획이다.

경찰은 참사 당시에도 신분증이나 카드 등으로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유실물에 관해서는 유가족에게 문자와 전화로 찾아가라는 안내를 했다. 그럼에도 희생자 가족이나 살아남은 이들 대부분이 물건을 찾아가지 않은 것이다.

남은 이들의 상흔이 아물 때까지는 유실물 서고는 좀처럼 비워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정은 핼러윈에 대비해 주요 지점에 행정안전부 국장급을 파견해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게 했다. 경찰도 핼러윈 기간 매일 1260명을 투입해 안전관리에 나선다.

비슷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는 것도 좋지만 1년째 치유되지 않은 아픔을 간직한 이들에게 진정성 있는 위로를 전할 방법도 고민해 봐야 한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 추모제 참석에 관한 의견을 수렴해 보겠다고 밝힌 바 있다. 특별법 처리로 대립하고 있는 여야 정치권이지만 유가족을 직접 만나 위로를 전하는 모습을 기대한다. 그렇게 치유의 시간이 조금씩 쌓여간다면 언젠가 유실물 창고가 비워지는 날이 올 것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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