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지방

[오래된 것을 찾아서]호계역 앞 60년 전통 '귀향다방'

등록 2014.02.09 17:28:32수정 2016.12.28 12:15:52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울산=뉴시스】고은희 기자 = 동해남부선 철도이설 계획에 따라 수년 후에는 사라지게 되는 울산 북구 호계역 전경이다. 2014.02.09.  gogo@newsis.com

【울산=뉴시스】고은희 기자 = 동해남부선 철도이설 계획에 따라 수년 후에는 사라지게 되는 울산 북구 호계역 전경이다. 2014.02.09.  [email protected]

【울산=뉴시스】고은희 기자 = 원두커피 전문점에 밀린 다방은 도시의 변방에서도 찾아보기 드물게 됐다. 하지만 울산 북구 호계역 앞 '귀향다방'은 60여 년 같은 자리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아직도 성업 중인 이곳은 마주하고 있는 백련다방과 함께 어르신들의 낙원으로 불리고 있다.

 '귀향다방'은 60년 동안 수없이 주인을 갈아 치웠다. 6년 전부터 상호 그대로 인수받아 운영하고 있는 최옥순(61) 대표는 커피 전문점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서기 전부터 커피자동판매기에 밀려 다방은 제구실을 하지 못 한 지 오래라고 했다. 그럼에도 이곳의 주인이 된 것은 옛것을 그리워하는 어르신들이 찾는 곳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어르신의 사랑방이에요. 오전10시께 마을버스를 타고 오셨다 오후 3시께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시지요. 어르신들은 하루 중 정점의 시간을 저희 다방에서 보내시고 계신 것이지요."

 호계역을 이용하는 승객들이 기차를 기다리기 위해 즐겨 찾았던 이곳 다방에는 승객의 그림자는 한 명도 없다. 대신 어르신들이 오래된 연탄난로 위에 올려진 결명자차를 마셔가며 몸을 녹이고 TV 뉴스를 시청한다. 주고받는 대화가 없이도 매일 만나는 어르신들은 기침소리 숨소리만으로 소통할 수 있다.

【울산=뉴시스】고은희 기자 = 울산 북구 호계역 앞 또하나의 명물인 40여 년 전통의 골덴양복점이다. 2014.02.09.  gogo@newsis.com

【울산=뉴시스】고은희 기자 = 울산 북구 호계역 앞 또하나의 명물인 40여 년 전통의 골덴양복점이다. 2014.02.09.  [email protected]

 이곳에는 "궂은 비 내리는 날/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와 같은 노래가 들리지 않는다. 풍류 대신 어르신들의 거센 숨소리가 음악을 대신한다. 단골 가운데 92세 최고령 어르신을 비롯해 70~80대 어르신 모두 과묵한 편이라 음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듯했다.

 최 사장은 "어르신들이 조용한 것을 좋아하시니 음악은 아예 틀지 않고 있다"며 "흥미로운 것은 다방에서 차를 마시고 계신 아버지를 모시러 온 아들이 이제는 노인이 돼 단골이 된 거다. 세월의 무상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말했다.

 몇 년 전만 해도 호계역 주변과 시장 일대에 다방이 제법 많았으나 하나둘 문을 닫고 현재 달랑 4곳뿐이다.

【울산=뉴시스】고은희 기자 = 울산 북구 호계역 앞 '귀향다방'은 60여 년 같은 자리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2014.02.09.  gogo@newsis.com

【울산=뉴시스】고은희 기자 = 울산 북구 호계역 앞 '귀향다방'은 60여 년 같은 자리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2014.02.09.  [email protected]

 김원주(74) 어르신은 "타도시에 갔다가 호계역에 내리면 '귀향다방'이 눈에 들어왔다. 고향으로 온 기분을 다방을 보면서 느낄 수 있었다"고 추억했다.

 쌍화차 마즙 유자차를 제외한 생강차 커피 율무차 녹차 등은 2000원의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고 있다. 주인이 바뀌었어도 실내 인테리어는 수십 년 전과 거의 변화가 없다. 골동품집에서나 볼 수 있는 어항, 연탄난로 등 70년대 80년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간 느낌이 들 정도다.

 어르신 모두 귀가하고 나면 다방을 찾는 손님은 거의 없다. 문을 닫는 시간은 오후 7시께 정도지만, 명절을 제외하고 1년 내내 문을 열지 않는 날이 없다.

【울산=뉴시스】고은희 기자 = 울산 북구 호계역 앞 '귀향다방'은 60여 년 같은 자리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옛날식 다방 실내에 있는 오래된 연탄 난로다. 2014.02.09.  gogo@newsis.com

【울산=뉴시스】고은희 기자 = 울산 북구 호계역 앞 '귀향다방'은 60여 년 같은 자리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옛날식 다방 실내에 있는 오래된 연탄 난로다. 2014.02.09.  [email protected]

 호계역 주변의 또 하나의 명물은 40여 년 전통의 양복점이다. '골덴양복점' 이전우(64) 대표는 1966년도 16세 때 서울 논현동 미라노 학원에 다니면서 양복을 배웠고 부산에서 실력을 다진 후 고향 호계로 돌아와 양복 디자이너를 천직으로 여기며 생활하고 있다.

 같은 자리에서 40여 년 동안 양복점을 운영하면서 지난해 간판을 새로 했다. 하얀 양복을 입은 이 대표의 모습과 모델의 모습을 함께 그려 넣은 양복점 간판은 오래된 변두리지역에서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호계역은 철도이설 계획에 따라 몇 년 후면 사라지게 된다. 곁에 시골 장터가 있어 유난히 정겨운 호계역이다. 90여 년 긴 세월 굽이굽이 수많은 인생을 실어 날라온 철길을 앞으로 수년 뒤에는 못 보게 된다.

【울산=뉴시스】고은희 기자 = 울산 북구 호계역 앞 '귀향다방'은 60여 년 같은 자리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옛날식 다방 실내 전경이다. 2014.02.09.  gogo@newsis.com

【울산=뉴시스】고은희 기자 = 울산 북구 호계역 앞 '귀향다방'은 60여 년 같은 자리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옛날식 다방 실내 전경이다. 2014.02.09.  [email protected]

 호계역은 이별의 장소가 아닌 만남의 장소 고향으로 돌아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오래된 다방, 양복점 등이 간판을 내리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또한 호계역이 이전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관심이 쏠린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

구독
구독
기사제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