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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연극 리뷰]핏빛 디스토피아의 귀환 …'문제적 인간 연산'

등록 2015.07.01 09:37:48수정 2016.12.28 15: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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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선웅 인턴기자 = 3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 프레스콜에서 출연 배우들이 열연을 하고 있다. 2015.06.30.  lassoft2@newsis.com

【서울=뉴시스】김선웅 인턴기자 = 3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 프레스콜에서 출연 배우들이 열연을 하고 있다. 2015.06.30.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개막을 하루 앞두고 30일 오후 명동예술극장에서 언론에 공개된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은 전반부와 후반부의 명암 대비가 인상적이었다.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의 대표작으로 조선왕조에서 가장 흥미로운 왕으로 통하는 연산군의 인간적 고뇌를 그린 작품.

 먼저 세상을 뜬 어머니 폐비 윤씨에 대한 그리움,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신하들, 성왕의 그늘에 가려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하는 내적 갈등 등 고뇌가 느껴지는 전반부는 불같이 뜨거웠다.

 궁궐을 피로 물들인 뒤 점점 추락해가는 연산군을 바라보는 후반부의 시선은 서늘했고, 그래서 연산에 대한 연민이 느껴졌다.

 12년 만에 돌아온 '문제적 인간 연산'은 이처럼 모더니티로 옷을 갈아입었다.

【서울=뉴시스】김선웅 인턴기자 = 3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 프레스콜에서 출연 배우들이 열연을 하고 있다. 2015.06.30.  lassoft2@newsis.com

【서울=뉴시스】김선웅 인턴기자 = 3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 프레스콜에서 출연 배우들이 열연을 하고 있다. 2015.06.30.  [email protected]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뜨거움으로 기억되는 연산을 좀 더 부드러운 이미지의 백석광이 맡은 점도 모더니티에 한몫했다.   

 백석광의 연산은 종종 부서질 듯 연약해보인다. 대신들, 심지어 충신마저 죽이는 상황의 잔인함도 분노에 차 있기보다 어쩔 수 없는 관성에 이끌려가는 듯하다.

 차츰 고통과 좌절의 늪으로 빠져드는 연산군의 운명을 예고하는 듯 약 20˚ 앞으로 기울어진, 투명 아크릴판으로 만들어진 무대 위에 서 있는 연산은 항상 위태위태하다. 그 무대를 감싸는 빽빽한 대나무 숲은 갑갑한 연산의 심리를 대변하는 듯하다.

 비명 횡사한 생모 '폐비 윤씨' 를 그리워하는 '어미 잃은 아들' 연산, 그런 폐비 윤씨의 혼을 입은 녹수가 추락할수록 입에 자주 올리는 말은 '집'과 '폐허'.  

【서울=뉴시스】김선웅 인턴기자 = 3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상연된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에 출연한 배우둘이 연기를 펼치고 있다. 2015.06.30.  lassoft2@naver.com

【서울=뉴시스】김선웅 인턴기자 = 3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상연된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에 출연한 배우둘이 연기를 펼치고 있다. 2015.06.30.  [email protected]

 그럴 때마다 시인 황지우의 '뼈아픈 후회'가 계속 떠올랐다.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연산이 사랑했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됐고, 물리적인 집뿐만 아니라 내면의 집까지 파괴되는 심리묘사는 '현대성'을 획득한다. 그런 디스토피아는 역설적으로 1995년 초연한 이 작품이 지금까지도 살아남게 하는 생명력의 원천이다. 이윤택 연출은 모던함이 바탕인 차가움을 입고도 그 본질을 꿰뚫는 날선 감각을 유지한다.

 차가워졌지만 이윤택 식 연희가 어우러진 총체극의 형태는 여전하다. 왜 공자 말을 듣지 않느냐는 대신들의 힐난에 "내가 중국놈이냐"라고 반박하는 연산군은 "죽은 임금도, 공자도 책임지지 않는다. 내가 책임진다. 나는 공자의 제자가 아니다. 조선의 왕이다. 그래 굿을 하자. 여기서. 무당은 필요 없다. 여기 왕무당이 있다. 풍악을 울려라"고 외친다. 이 보다 더한 광대가 어디 있으랴.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실기과를 중퇴한 뒤 같은 대학 연극원으로 들어가 연기를 공부한 백석광의 몸짓은 처연한 광대의 그것이다.

【서울=뉴시스】김선웅 인턴기자 = 3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 프레스콜에서 출연 배우들이 열연을 하고 있다. 2015.06.30.  lassoft2@newsis.com

【서울=뉴시스】김선웅 인턴기자 = 30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열린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 프레스콜에서 출연 배우들이 열연을 하고 있다. 2015.06.30.  [email protected]

 이밖에 연산을 지키는 대신 3인방, 귀신과 대신들 사이를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처럼 오가는 국립극단 단원들의 노래와 춤 실력도 '문제적 인간 연산'을 종합 예술극으로 승화시키는데 한몫한다. 특히 대신 1 오영수, 대신 2 이문수 등 내공이 든든한 배우들이 극의 중심을 잡는다. 

 백석광과 7년 연인인 소리꾼 이자람이 폐비 윤씨와 녹수, 1인2역을 맡았는데 모성애와 연인 간의 사랑, 그리고 한 등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1일부터 26일까지 명동예술극장. 예술감독 김윤철, 의상디자인 송은주, 조명디자인 조인곤, 안무 김남진. 2만~5만원. 제작 국립극단. 1644-2003  

 모던함 입은 변함 없는 통찰력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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