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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재의 크로스로드]마키아벨리의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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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6-12-20 09: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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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법(法)은 사회의 자유를 보장 국민 모두가 존중할 때 정착 가능 헌법재판소 심리에 대한 압력 행사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 짓밟는 폭거

【서울=뉴시스】정문재 부국장 겸 미래전략부장 = 외적이 쳐들어왔다. 지도자는 용렬(庸劣)했다. 희생은 시민들의 몫이었다. 백성들은 분노했다. 지도자를 추방했다. 새로운 지도체제도 나을 게 없었다. 보통 사람들의 고통은 계속됐다. 좋은 법(法)이 없었기 때문이다.

 500여 년 전 피렌체의 얘기다. 프랑스의 샤를 8세는 1494년 10월 이탈리아를 침공했다. 나폴리 왕국을 점령하기 위해서였다. 나폴리 왕국의 페르디난도 1세가 사망하자 샤를 8세는 왕위 계승권을 주장했다. 

 프랑스 군대가 나폴리로 입성하려면 피렌체를 거쳐야 한다. 프랑스는 피렌체에 길을 터달라고 요구했다. 피렌체의 지도자 피에로 데 메디치는 샤를 8세와 단독 협상을 진행했다. 피에로는 굴욕적인 조건을 수용했다.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프랑스군은 가공할만한 전투력을 자랑했다. 피렌체를 비롯한 이탈리아 주요 도시는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이탈리아는 방위를 용병에 의존했다. 용병은 돈벌이를 위해 싸운다. 전투력 보전을 최고의 목표로 추구한다. 그래야 두고두고 돈을 벌 수 있다. 불리하다 싶으면 즉시 전선에서 벗어난다.

 프랑스는 상비군을 가동했다. 샤를8세의 지휘 아래 사생결단으로 달려들었다. 화력(火力)도 우세했다. 프랑스는 최신 대포 기술까지 갖췄다. 가벼운 청동포로 기동력과 파괴력을 겸비했다. 용병들은 프랑스 군대만 보면 꽁무니를 뺐다.

 피렌체는 파격적인 요구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무역항구 피사를 프랑스군이 마음대로 사용하도록 허용했다. 아울러 엄청난 양의 금화를 바치기로 약속했다. 피렌체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프랑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프랑스군은 피렌체에 진입하자마자 숙소로 사용하기 위해 수천 채의 집을 징발했다. 프랑스군은 약탈도 자행했다.

 피렌체 시민들은 메디치 가문에 분노의 화살을 돌렸다. 이득만 누릴 뿐 희생은 외면한다는 비판이 고조됐다. 피렌체는 용병 고용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공채(公債)를 발행했다. 메디치 가문을 비롯한 지배층은 공채 투자를 통해 쏠쏠한 이자 수입을 챙겼다.

 시민들은 광장으로 몰려들었다. 이들은 수도사 사보나롤라의 선창으로 '리베르타(자유)'를 외쳤다. 시민들은 민주정부를 세웠다. 메디치 가문의 전제정치는 막을 내렸다. 피렌체 정부는 피에로와 동생 조반니 추기경의 목에 거액의 현상금까지 걸었다.

 새로운 정치체제가 들어섰지만 어려움은 가중됐다. 지도자 사보나롤라가 친(親) 프랑스 노선을 추구하는 바람에 로마 교황령, 독일, 스페인을 적으로 돌렸다. 고립을 자초한 나머지 피렌체 상인들이 유럽 곳곳에 구축한 경제적 헤게모니도 무너지고 말았다.

 젊은 애국자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피렌체의 몰락 원인을 곰곰이 분석했다. 결론은 '좋은 법(法)'의 부재였다. 좋은 법은 사회 구성원들의 자유를 보장한다. 좋은 법은 단순히 정치(精緻)한 법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공동체 구성원 누구나 기꺼이 법을 지키는 환경까지 포괄한다. 그래야 진정한 자유가 가능해진다.

 갈등과 대립이 없는 사회는 존재치 않는다. 사람들은 제한된 사회적 재화를 놓고 반목을 거듭한다. 적극적인 참여와 토론을 통한 갈등 해소 노력은 '좋은 법'으로 귀결된다. 공공선(公共善)을 위한 법을 만들 수 있다.

 좋은 법은 자의적 지배를 허용치 않는다. 자의적 지배는 자유를 유린하기 때문이다. 어느 누구라도 자신의 의지를 멋대로 관철할 수 없다.

 좋은 법은 사회 구성원의 주인의식을 강화한다. 개인과 사회 전체의 이격(離隔)은 최대한 좁혀진다. 개인은 사회에 대한 자신의 지분을 의심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헌재)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사건 심리에 착수했다. 심리의 주체는 헌재다. 오로지 헌법을 잣대로 심리를 진행해야 한다. 당연히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 정치권은 물론 탄핵 지지자 또는 반대자들이 감 놔라, 배 놔라 할 문제가 아니다.

 일부에서는 구체적인 탄핵 심판 시점까지 제시한다. 아울러 이런 압력을 '집회의 자유'로 정당화한다. 자유의 이름 아래 자유를 말살하려는 행태다.

 "법의 집행자조차 두려워하는 시민, 법을 자기 마음대로 위반할 수 있는 시민이 단 한 명이라고 있다면 그 나라는 더 이상 자유로운 국가라고 부를 수 없다."

 마키아벨리는 조국 피렌체의 상황을 지켜보며 이렇게 안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마키아벨리의 우려가 가슴을 때린다. 법을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존중하고, 준수하려는 풍토에서는 자유의 침해는 일상화된다.

참고문헌 1) 모리치오 비롤리 지음. 김경희 김동규 옮김. 2006. 공화주의. 인간사랑 2)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강정인 김경희 옮김. 2012. 군주론. 까치 3) 시오노 나나미 지음. 오정환 옮김. 1996.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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