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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예외주의' 신화 깨지나…메르켈, 이래도 저래도 고민

등록 2017.11.22 10:3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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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AP/뉴시스】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0일(현지시간) 베를린 국회의사당에 들어서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이날 연립정부 구성 협상이 결렬되자 재총선 가능성을 시사했다. 2017.11.21

【베를린=AP/뉴시스】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20일(현지시간) 베를린 국회의사당에 들어서고 있다. 메르켈 총리는 이날 연립정부 구성 협상이 결렬되자 재총선 가능성을 시사했다. 2017.11.21

【서울=뉴시스】이지예 기자 =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새 연립정부 구성에 실패하면서 서구의 극우 포퓰리즘 물결 속에서도 건실함을 자랑한 독일 정치가 사상 최악의 위기에 빠졌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AFP통신은 21일(현지시간) 최근 메르켈 총리의 정치적 위기로 인해 독일이 안정적인 민주 정부의 표본이자 포퓰리즘 방화벽 역할을 하고 있다는 '독일 예외주의'가 위협받고 있다고 분석했다.

◇ 메르켈표 '안정적 독일' 더 이상 기대 어려워

 메르켈은 지난 12년간 유럽 경제 위기와 포퓰리즘 확산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독일을 이끌었다. 페테르 알트마이어 총리실 비서실장은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정부는 '메이드 인 저먼'이다. 우리의 트레이드 마크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신화에 금이가고 있다. 메르켈의 기독민주당(CDU)·기독사회당(CSU) 연합은 9월 총선에서 승리했지만 두 달 가까이 연정 구성을 못하고 있다. 자유민주당(FDP), 녹색당과 손을 잡으려 했지만 이마저도 20일 결렬됐다.

 프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대통령은 정치 지도자들이 한발씩 물러나 어떻게든 연정 협상을 재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2차 대전 종식후) 지난 70여 년 사이 독일 역사상 가장 이례적인 상황이 우리 앞에 놓였다"고 말했다.

 싱크탱크 독일마셜펀드의 토마스 클라이네-브록호프 연구원은 "1949년 이래 처음으로 정부 구성을 원하는 다수 그룹이 나오지 않고 있다"며 "유럽의 안정된 '거인'(메르켈)이 갑자기 불안정해졌다. 결과는 심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현 시점에선 파급 효과를 알 수 없다. 예측 가능한 일들만 따져도 영향이 상당하다"며 "독일이 마비된 국가가 돼 버렸다. 우리가 아는 건 독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연정 결렬로 독일이 권력 공백 속 내년 재선거를 치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메르켈은 소수정부 시나리오는 배제했다. 소수정부가 출범한 전례가 없는 데다 의회 과반 지지 없는 정부는 본질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어서다.

 메르켈에겐 기존에 '대연정'을 꾸린 SPD와의 협력이 유일하게 남은 선택지인데 SPD는 연정 참여를 극구 거부하고 있다. 그렇다면 총선을 다시 치르는 방법 밖엔 없는데 이 경우 선거는 2월 이후에야 실시될 전망이다.
【베를린=AP/뉴시스】극우 '독일을 위한 대안'당의 총리 공동후보인 알렉산더 가울란트와 알리체 바이델이 24일(현지시간) 베를린 당사에서 총선 출구조사에서 연방의회 진출에 성공한 것으로 나타나자 지지자들과 함께 환호하고 있다. 2017. 09.25

【베를린=AP/뉴시스】극우 '독일을 위한 대안'당의 총리 공동후보인 알렉산더 가울란트와 알리체 바이델이 24일(현지시간) 베를린 당사에서 총선 출구조사에서 연방의회 진출에 성공한 것으로 나타나자 지지자들과 함께 환호하고 있다. 2017. 09.25


◇ 독일도 극우 포퓰리즘 손아귀에…불안한 유럽

 현 상황은 독일 역시 서방을 휩쓸고 있는 포퓰리즘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메르켈의 집권 연합은 9월 총선에서 1949년 이래 최악의 득표율(33%)을 기록하는 굴욕을 겪었다.

 반면 메르켈을 앞장서 비판해 온 극우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이 득표율 3위(12.6%로) 연방 의회에 첫 입성했다. 2013년 창당한 AfD는 유럽 대륙을 강타한 난민 대량 유입, 급진 이슬람 테러리즘 사태를 틈 타 세력을 키웠다.

 재선거를 치러도 메르켈의 승리나 안정적 정부 출범은 보장되지 않는다. 메르켈의 리더십이 도마에 오른 만큼 CDU-CSU의 득표율이 더 추락해 아예 4연임이 불가해지거나, 오히려 AfD가 더 지지율을 키우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우여곡절 끝에 새 정부를 출범해도 예전과 같은 정치적 안정을 기대할 수는 없을 전망이다. 나치 독재를 겪은 뒤 극우 세력으로부터 면역이 됐다는 독일 정치 지형은 AfD의 연방 의회 진출을 계기로 이미 균열이 시작했다.

 카네기연구소의 주디 뎀프시 연구원은 "메르켈이 어떻게 되든 독일의 문제는 유럽의 문제가 될 것"이라며 "메르켈이 키를 잡는 한 독일은 예측가능하고 안정적이라는 기대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독일을 바라보는 유럽의 시선도 걱정이 한가득이다. 독일 정치 혼란은 브렉시트, 유로존 경제 개혁 등 유럽연합(EU)의 중대한 현안이 산적한 가운데 벌어졌다. 메르켈이 흔들리면 이들 의제를 강하게 밀어붙일 동력도 줄어든다.

 일각에서는 올초 당선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EU 내 역할을 적극 자처하면서 독일이 그토록 바랐던 독프 협력 구도가 겨우 형성됐지만, 이제는 메르켈 총리가 위기를 맞았다는 탄성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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