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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납했지만 뇌물은 아냐"…특활비 재판 아리송 결론

등록 2018.06.15 13:5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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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법하게 특활비 전달…국고손실 유죄

"직무 대가성 없어"…뇌물 혐의는 '무죄'

"朴 지시에 소극적 대응…자발성 없다"

【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남재준(왼쪽부터)·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이 1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 공판을 마치고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2018.06.15. park7691@newsis.com

【서울=뉴시스】박주성 기자 = 남재준(왼쪽부터)·이병기·이병호 전 국정원장이 1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선고 공판을 마치고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2018.06.15.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혜원 기자 =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 상납과 관련해 법원이 "돈을 준 건 맞지만 뇌물은 아니다"라는 취지의 결론을 냈다.

 특활비 상납 대가로 박근혜(66) 전 대통령으로부터 어떤 편의를 받겠다는 대가 관계가 없었기 때문에 뇌물죄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부장판사 성창호)는 15일 남재준(74)·이병기(71)·이병호(78) 전 국정원장 등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공여·국고등손실) 혐의 선고 공판에서 이같이 판결했다.

 재판부는 우선 전직 원장들이 임의로 박 전 대통령에게 특활비 일부를 전달한 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국정원장 특활비는 사용 내역을 증빙할 필요 없이 원장이 재량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이지만, 어디까지나 국정원 목적인 국가안전 보장 등을 위할 때만 사용이 정당하다고 봤다.

 설령 박 전 대통령의 국정 수행 보조를 위해 썼다고 할지라도 적법한 절차를 따르지 않아 위법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국기가관 예산은 국회 심사를 통해 최종 편성되고 기관 간 상호 이전할 수 없다"라며 "국정운영 목적으로 전달했다 하더라도, 법령에 정해진 기준과 절차에 따르지 않았다면 그 자체로 위법하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특활비 성격이 뇌물은 아니었다고 봤다. 박 전 대통령에게 대가를 바라고 지급한 게 아니라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뇌물죄를 판단할 때 대통령의 직무 내용과 국정원장들과의 관계, 사적 친분, 돈을 주고받은 당사자들의 의사, 돈을 건넨 경위나 시기, 돈의 성격과 액수, 이로 인해 교부자가 얻을 수 있는 이익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라고 전제했다.

 이를 토대로 판단할 때 원장들이 건넨 돈은 뇌물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재판부는 "상하급 관계에 있는 공무원 사이 금품수수가 뇌물로 인정되려면 적어도 하급자가 자발적으로 제공하는 게 통상적이다"라며 "하지만 이 사건의 경우 박 전 대통령이나 청와대의 요구로 특활비를 지급하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국정원장들이 뇌물 대가로 받을 이익이 없었다는 점도 고려했다.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해 9월2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75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17.09.28.suncho21@newsis.com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해 9월2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75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재판부는 "당시 국정원 댓글 사건이나 NLL 대화록 공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 등 국정원과 관련된 현안들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라며 "하지만 이는 국정원에 국한되기보다, 박 전 대통령의 국정 수행이나 여야 간 주도권 쟁취 등 정치적 이슈였던 만큼 정권 자체의 현안이었다"라고 판단했다.

 또 "대통령과 국정원장은 서로 긴밀하게 협조하는 관계이지만, 대통령에게 금품을 지급한다고 해서 편의를 더 기대할 수 있는 관계인지 의문이다"라며 "뇌물공여 동기가 막연하고 추상적이며, 현실적이지도 않다"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뇌물을 건넸다면 어느 정도 편의를 받았어야 하는데, 검찰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이를 입증할 자료가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오히려 원장 재임 기간 중 국정원에 불리하거나 청와대와 마찰은 빚은 사례들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결국 재판부는 특활비를 제공한 건 위법하지만, 어떤 대가를 바라고 준 것이 아니라 단순히 박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랐기 때문에 뇌물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특활비 지급 적절성을 확인하지 않고 지속해서 국고를 손실한 점은 비난 가능성이 크지만, 자발적으로 돈을 건넨 게 아니라 박 전 대통령 지시에 소극적으로 응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날 남 전 원장과 이병기 전 원장에게 각 징역 3년과 징역 3년6개월을 선고했다. 이병호 전 원장에겐 징역 3년6개월과 함께 자격정지 2년을 선고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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