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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묻지마 범죄가 또 게임중독 탓?

등록 2023.09.01 11:06:59수정 2023.09.01 13:2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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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묻지마 범죄가 또 게임중독 탓?

[서울=뉴시스] 오동현 기자 = 예전에 비디오로 영화를 보면 시작 전 반드시 호환(虎患), 마마보다 더 무서운 것이 폭력과 음란한 영상물이라고 경고하던 장면이 있었다. 세계로 뻗어나가는 한국 영화의 위상이 높아져서일까. 이제는 영화가 아닌 게임에서 묻지마 범죄의 범행 동기와 모방 범죄를 찾고 있다.

"조씨가 최근 8개월간 대부분의 시간을 게임을 하거나 게임 관련 영상을 시청하는 등 '게임 중독' 상태였다. 마치 1인칭 슈팅 게임을 하듯 잔혹하게 범죄를 저질렀다."

신림역 흉기난동 살인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언론 브리핑에서 꺼낸 말이다. 경찰 수사 단계에선 언급되지도 않았던 '게임 중독'을 범행 원인 중 하나로 지목한 것이다. 물론 "게임중독이 직접적 범행 동기라는 것은 아니다"라고 전제를 달긴 했다.

하지만 이는 최근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른 '묻지마 범죄'의 근본적인 원인을 찾기 보단 또 다시 '게임 중독'과 연관 지어 책임을 떠넘기는 전형적인 '물타기'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과거부터 '게임 중독'이란 키워드는 마땅한 범행 동기를 찾기 어려운 '묻지마 범죄'를 수사할 때 검·경에 좋은 구실이 돼왔다.

실제로 기자가 2014년·2015년 사회부 사건팀 기자로 활동할 당시, 한 수사관은 강력 범죄 피의자를 심문할 때 "게임을 하느냐"고 물어본다고 고백했을 정도였다. 기자들 역시 수사관들에게 피의자의 범행 동기가 "게임 중독 때문 아니냐"고 먼저 물어볼 정도로 당시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심각했다. 그 이전엔 모 방송사에서 게임의 폭력성을 실험하겠다며 PC방 전원을 내린 일이 지금까지 회자될 정도니 말이다.

게임에 대한 부정적 편견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이번 사태에도 불구하고 정부 눈치만 보느라 아무 입장도 내지 못하는 한국게임산업협회도 마찬가지다. 국내 게임사들이 "대중문화의 하나로서 게임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확대하겠다"며 만든 협회의 존재 가치가 무의미해진 것 아닌지 의문스럽다.

오히려 정치권이나 학계에서 게임 업계를 대변하고 있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최근 자신의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를 통해 "대통령도 '게임은 질병이 아니다'라고 말했는데, 검찰이 어떤 근거로 살인 원인을 게임 중독이라 판단했는지 명확지 않다"며 "검찰은 의사가 아니다. 진단하지 말고 수사를 하라"고 질타했다. 이상헌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흉기난동이 게임중독 때문이라니 '게임의 폭력성을 실험하기 위해 PC방 전원을 내려보겠습니다' 급 망언"이라고 비판했다.

이번 검찰의 '게임 중독' 발언은 심리분석가의 의견이 반영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게임이 범행 동기가 됐거나 영향을 줬다는 조씨의 진술은 없었다고 한다. 조씨가 1인칭 슈팅 게임을 하고 싶다는 글을 올렸던 것과 범행 전 외부출입 자제하고 게임만 즐겨했다는 것을 근거로 한 검찰의 자체 판단이었다는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조씨는 지난 2010년에도 흉기 상해로 인한 '폭력행위처벌법 위반'으로 처벌받은 전과가 있다. 소년 사건 전력까지 합치면 10건이 넘는다. 이때도 '게임 중독'에 빠져 범죄를 저질렀던 걸까.

게임과 폭력성간 명확한 인과관계가 증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범죄 원인을 게임 탓으로 돌리기 전에 전과자를 제대로 교화하지 못한 사법 시스템부터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국내 게임 업계도 반성해야 한다. 상당 게임사들이 유료 아이템의 터무니 없는 획득 확률로 사행성을 부추기고, 일부 게임사에서는 가상자산(코인)을 발행해 환전이 가능한 도박 게임을 만들려는 시도까지 포착되고 있다. 사행성과 중독은 불가분의 관계다. 자가당착에서 벗어나기 위한 게임 업계의 자정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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