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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노동자, 30년전이나 지금이나···영화 '파업전야'

등록 2019.04.17 06: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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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노동자, 30년전이나 지금이나···영화 '파업전야'

【서울=뉴시스】남정현 기자 = '노동시간 단축, 임금 인상, 실업 방지.'

2019년 현재 노동자들의 요구 사항처럼 보인다. 하지만 저 구호는 우리나라의 첫 노동조합이라고 할 수 있는 '조선 노동 총연맹' 소속 노동자 2000여명이 1920년대에 내놓은 것들이다. 이들은 1923년 5월1일 노동절에 대한민국 사상 최초로 노동자들의 단결된 목소리를 냈다. 100년 가까이 흐른 현시점, 노동자들의 삶은 얼마나 나아졌을까.

노동조합, 노조. 노동자들이 회사의 불합리한 대우에 대처하고 적법한 이익을 누리기 위해 결성하는 단체다.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형성하는 이 노동조합을 일부 노동자들조차 '좌파', "빨갱이'라며 색안경을 끼고 본다. 기업은 말할 것도 없다.

29년 만에 재개봉하는 영화 '파업전야'는 노동자의 처우 개선, 노동조합의 필요성에 대한 고뇌를 담았다. 영화의 메시지는 단순하다. '노동자를 인간으로 보고 인간답게 대우해 달라'는 것이다.

30년 가까이 지난 영화지만 메시지는 유효하다. 현장직 노동자들에게는 특히 그렇다. 영화의 책임연출인 장동홍 감독은 노동자에 대한 착취가 외형만 달리했을뿐 여전히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당시 공장사람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핍박 받고 일을 했는데, 지금 과연 본질이 달라졌다고 말할 수가 있는가. 그런 측면에서 외형만 바뀌고 조건들만 달라졌을 뿐 본질은 똑같다고 본다"는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공돌이'들이 끓여 먹는 '너구리 라면'이 구의역 사고 피해 청년의 '컵라면'과 오버랩되는 이유다.
[리뷰]노동자, 30년전이나 지금이나···영화 '파업전야'

주인공 '한수'를 연기한 김동범은 "영화를 다시 봐도 재밌는 이유는, 동일한 갈등구조 때문이다. 현재 일부 젊은이들의 비정규직이라는 위치, 열악한 작업환경, 한수와 같은 가정을 가진 분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옛날 영화이고 기술적으로는 거칠지만, 인간의 내적 갈등이라는 스토리 자체는 여전히 빠져들게 된다. 그래서 젊은 관객들도 자신들의 친구의 삶일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에 충분한 얘깃거리가 될 것 같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파업전야'는 1988년 호황을 누리며 성장을 거듭하는 동성금속 생산 현장의 200여 노동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동성금속의 단조반에 '주완익'(임영구)이라는 신입이 들어오고, 반원들이 막걸리를 함께 마시며 환영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단조반원 '한수'는 어떻게든 혐오스러운 가난을 벗어버리고 싶어하는 노동자다. 참고 일하며 절약해서 결국 부자가 되는 것이 꼭 이루고야 말 그의 꿈이다.

노동자를 핍박하기 위한 해고와 위장 폐업이 이어지는 뒤숭숭한 공단 분위기에서 관리자들에게 노동자는 '고장 잘 나는 기계'에 불과했다. 노동자들은 회의와 희망의 양극단을 오가는 갈등 끝에 결국 노동조합을 결성하게 된다. '김 전무'(왕태언)는 노조건설 움직임에 치밀한 사전 대비를 하고, 한수는 평소에 알고 지내던 주임에게 회사 편에 선 노동자로 포섭된다. 하지만 승진이 될 줄 알았던 한수는 어느새 '구사대'에 속해 있는 스스로를 발견한다. 한수의 내적 갈등과 각성을 중심으로 영화는 진행된다.

제작진은 영화에 빈번히 등장하는 기계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한다 "실제로 기계는 노동운동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기계부품처럼 이용되는 노동자들이 아니라 기계를 멈추는 존재로서의 노동자, 기계를 장악하는 존재로서의 노동자는 수없이 반복되어온 노동운동의 테제다. 마지막 장면에서 각성한 한수가 기계를 꺼버리는 장면은 '기계'라는 하드웨어로 대변되는 한국 노동 운동사의 중요한 은유다."

영화라기보다는 리얼리즘 다큐멘터리에 더 가까운 작품이다. 제작진은 30년 전 촬영 과정에서 실제로 세창물산, 남일금속, 한독금속을 비롯한 경인 지역 노동자들을 만나 시나리오를 구성했다. 촬영도 1989년 12월 당시 회사측의 휴업에 대항해 정상 조업재개 투쟁 중인 인천 한독금속 사업장에서 이뤄졌다.

제작사인 장산곶매 이은 대표는 "유일하게 과장된 부분이 극중 한수의 여자친구인 '미자'(최경희)가 파업 투쟁에 적금을 해약하고 노조에 줘 버린 부분 정도"라며 리얼리즘을 자부했다.
[리뷰]노동자, 30년전이나 지금이나···영화 '파업전야'

공수창 작가는 "당시 우리 모토는 '우리가 감독을 하든, 시나리오를 쓰든, 장산곶매 멤버로 엑스트라를 하든, 정성진 감독처럼 현장에서 밥을 해주든' 우리가 이 장면을 찍을 때 어떠한 자세로 임해야 하고 출연하는 배우들은 어떤 심정인지를 공유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덧붙였다.

 리얼리즘을 살리는 또 다른 요소는 어색해 보일 수도 있는 배우들의 80년대 후반 연기톤과 16㎜필름 작업의 결과물인 초저화질이다. 당시 상업영화는 훨씬 더 좋은 화질을 구현할 수 있는 35㎜ 대개 이용했다. 하지만 '파업전야' 제작진은 35㎜필름의 자본 종속성을 비판하는 도구로써 16㎜필름을 이용해 영화를 만들었다.

 30대 이상의 관객은 어린 시절 아날로그 TV 화면을 떠올릴 것이고 10, 20대는 낯설지만 새로운 '영상미'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5월1일 노동절에 개봉한다. 107분, 12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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