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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이자람·이소연 '소녀가', 창극사전의 새로운 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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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8-03-02 13: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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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국립창극단 '신창극시리즈1-소녀가'. 2018.03.02. (사진 = 국립극장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이재훈 기자 = 60분 남짓 창극에게 과하다 싶을 수 있지만 이건 창극의 신세계요, 일대 실험이다.

'젊은 거장' 소리꾼 이자람이 국립극장 전속단체 국립창극단(예술감독 김성녀)과 손잡고 선보인 새로운 형식의 '소녀가'는 창극의 신개념 눈대목이다.

국립창극단 '신(新)창극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소녀가'는 기존에 잘 알려진 동화의 내용과 창극의 형식을 변주하며 신선함을 꾀했다.

이자람이 연출·극본·작창·작곡·음악감독까지 1인5역을 맡았다. 프랑스 구전동화 '빨간 망토'(Le Petit Chaperon rouge)를 현대적인 창극으로 각색해냈다.

이자람 버전의 '빨간망토'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샤를 페로가 엮은 책 버전(1697)이 아니다. 이후 100년이 지나, 사냥꾼이 등장해 할머니와 빨간 망토를 구하는 독일의 그림 형제의 순화된 버전도 아니다.

그녀가 우연히 읽은 장 자크 프디다의 '빨간 망토 혹은 양철캔을 쓴 소녀'(디디에 죄네스 2010)가 근간이 됐다. 이 책에서 소녀는 자신의 호기심을 막아서는 일종의 사회적 금기를 깨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간다.

'소녀가'의 소녀는 한발 더 나아간다. 호기심 많은 소녀는 은밀하고 신비로움이 가득해 짐짓 혼란스러워 보일 수 있는 숲속이 설레기만 하다.

자신의 온몸을 철커덩 감싸고 있던 갑갑한 철옷을 부수고 난 뒤 소녀는 호기심의 실타래를 적극적으로 풀어나간다. 철옷을 벗고 걸친 빨간 망토는 순진무구함과 보호의 상징이 아닌, 정열 열정 욕망 그리고 자신감으로 대변된다.

꽃밭에서 황홀함을 느끼는 소녀의 모습은 사랑에 빠져 벅찬 감정을 느끼는, 만개한 한 송이 꽃을 떠올리게 한다. 원작 속 늑대는 소녀를 은밀한 곳으로 유혹하는 남자로 형상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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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최진석 기자 = 배우 이소연이 2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린 신창극시리즈1 '소녀가' 공개 드레스 리허설에서 열연하고 있다. 창극 소녀가는 오는 28일부터 3월 4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상연된다. 2018.02.27. myjs@newsis.com
'소녀가'를 통해 '이자람의 페르소나'로 등극한 국립창극단 단원 이소연의 호연이 극의 완성도를 높인다. 소녀는 물론 할머니, 늑대 등으로 순식간에 변하는 그녀의 모습은 중국 전통 연극에 등장하는 변검(變臉) 수준이다.

해 질 무렵에 볼 수 있는 검정, 보라가 뒤섞인 붉은색에 가까운 에로틱을 선사하는 것도 그녀의 힘이다. 너무 어둡지 않게 은밀하며, 붉게 타오르되 화마(火魔) 같지 않다.

창을 비롯해 대중음악 이상으로 귀에 감기는 음악은 어떤가. 북과 타악(이준형), 신시사이저(고경천), 베이스(김정민)의 호위를 받으며 때로는 아늑하게 때로는 면도날처럼 때로는 폭풍 같이 진군하는 이소연의 목소리는 성스럽기까지 하다.

붉은 낮과 푸른 밤을 가로지르는 음악은, 새로운 작법으로 창극 음악이라고 하기에는 거짓말처럼 느껴지는데 너무 능청스러워 착착 달라붙는다.

이렇게 '소녀가'에서 내용과 형식 그리고 구성이 주고받는 절창은 K팝 군무처럼 일사분란하며 세련됐다. 한바탕 제대로 깔린 판에 뮤지컬 이상의 재미를 선사하며 솔직한 성적 담론을 펼쳐내는 동시에 자연스럽게 여성의 자리를 고민하게 만드는 이 작품은 창극 사전에 아름다운 새로운 예문이다. 오는 4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realpaper7@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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