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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차지연 "'서편제', 눈부시고 찬란한 제 청춘…아름다운 이별 중"

등록 2022.09.05 19:2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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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초연부터 다섯 시즌 출연

29살부터 41살까지 주인공 '송화'

'살다보면' 첫 넘버 때 가장 긴장

"오랫동안 연기하는 배우 되고파"

[서울=뉴시스]뮤지컬 '서편제' 공연 사진. 배우 차지연. (사진=PAGE1 제공) 2022.09.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뮤지컬 '서편제' 공연 사진. 배우 차지연. (사진=PAGE1 제공) 2022.09.0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강진아 기자 = "눈부시게 아름답고 찬란한 제 청춘이었어요. 처음 만났던 그 모습 그대로 '송화'를 잘 보내고 싶어요."

배우 차지연에게 뮤지컬 '서편제'는 청춘 그 자체다. 2010년 초연 당시 29살이었던 그는 12년간 다섯 시즌을 함께해오며 어느새 41살이 됐다. 이번이 마지막 시즌으로 막을 내리는 '서편제'와 그는 아름다운 이별 중이다.

5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20대 후반부터 40대 초반까지 함께했다. 이렇게 오래 한 작품도, 매 시즌 참여했던 작품도 없다"며 "이 작품에 쏟았던 진심을 관객들이 느껴줬기에 계속해서 송화로 찾아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스스로 송화와의 끝을 예감하던 차에, '서편제' 역시 대장정을 마무리한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너(작품)와 내가 같은 시기에 멋있게 헤어질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저도 송화를 사랑하지만, 보내줘야 할 때를 아는 것도 배우의 덕목 중 하나죠. 허전함이나 섭섭함보단 여기까지가 딱 아름다운 만남이죠."

그럼에도 아쉬움은 저도 모르게 새어 나오나 보다. 첫 공연을 마치곤 울음을 꾹 참고 활짝 웃었지만, 이후 커튼콜 때마다 눈물이 터져 나온다고 했다. "상상치 못한 큰 환호와 박수에 너무 벅차죠. 빼곡하게 채워진 자리를 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진심을 알아주는 내 편이 많이 생긴 기분이죠."
[서울=뉴시스]뮤지컬 '서편제' 공연 사진. 배우 차지연. (사진=PAGE1 제공) 2022.09.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뮤지컬 '서편제' 공연 사진. 배우 차지연. (사진=PAGE1 제공) 2022.09.0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차지연은 소리의 길을 따라 운명에 초연히 맞서 나가는 주인공 '송화'를 연기해왔다. 소리와 한에 집착하는 아버지 유봉으로 인해 시력을 잃게 되는 아픔도 겪는다.

시즌을 거치며 그의 '송화'도 점점 성장했다. 12년 전, 두산아트센터에서 약 25명의 관객 앞에 섰던 초연 첫 무대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소수의 관객이었지만,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소리꾼이 아닌 만큼 두렵기도 했지만,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때는 어린 나이였고 다 쏟아내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었죠. 굉장히 많이 울었어요. 지금도 눈물이 나지만, 양이 줄고 질감도 달라졌죠. 투박하고 날것의, 29살 저의 '송화'가 문득문득 궁금한데 남아있는 자료가 없어서 아쉬워요."

그는 "지금은 저도 아내가 됐고, 엄마가 됐고 경험이 많아졌기에 좀 더 단단해진 '송화'가 됐다"며 "저 스스로도 가장 묵직하고 담백한 '송화'가 되지 않았나 싶다. 초연 때보다도 더 맑고 티 없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서울=뉴시스]뮤지컬 '서편제' 공연 사진. 배우 차지연. (사진=PAGE1 제공) 2022.09.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뮤지컬 '서편제' 공연 사진. 배우 차지연. (사진=PAGE1 제공) 2022.09.0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송화'가 판소리 '심청가' 대목을 절절하게 부르는 마지막 장면은 작품의 백미다. "소리도 경험이 쌓였나 보다"고 웃으며 "다섯 시즌을 하니 요령이 생겨서 목이 상하진 않는다. 소리할 땐 신기하게 온·오프처럼 목소리가 달라진다. 저의 '심청가'는 테크닉보단 송화로서, 심봉사로서, 심청이로서 각 역할의 정서와 감정을 전하는 힘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가장 긴장하는 장면은 뮤지컬 초반, 송화의 첫 넘버인 '살다보면'이라고 했다. "처음도,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제일 어렵고 부담스럽죠. 하지만 그 긴장감이 반가워요. 무대 뒤에서 침을 꼴깍꼴깍 삼키고 긴장한다는 건 스스로 나태해지거나 과신하지 않고 있다는 거죠."

국악인 집안인 외가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북을 치고 소리를 듣는 덴 익숙했다. 판소리 고법 명인 고(故) 박오용이 차지연의 외할아버지다. "솔직히 작품과는 상관없다. 하지만 어린 나이부터 항상 북이 옆에 있었고 명인들의 소리를 들었기에 서편제의 분위기가 낯설지 않다. 사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엔 국악이 큰 아픔이었기에 어찌 보면 제 안에 한을 쌓아줬다"고 말했다.

2006년 뮤지컬 '라이온 킹'으로 데뷔해 16년차인 그는 올해 무대를 그만둬야 하나 고민할 정도로 회의감이 찾아오기도 했다.
[서울=뉴시스]뮤지컬 '서편제' 공연 사진. 배우 차지연. (사진=PAGE1 제공) 2022.09.05.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뮤지컬 '서편제' 공연 사진. 배우 차지연. (사진=PAGE1 제공) 2022.09.05.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배우의 삶과 생각이 무대에 모두 투영된다고 생각해요. 시간이 흐를수록 무서운 공간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끼죠. 그만큼 부끄럽지 않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저도 맨땅에 헤딩하며 많은 서러움과 수모를 겪었어요.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일들을 지켜보고 여러 상황과 사건에 지치기도 했죠. 긴 세월, 이를 바로잡거나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왜 서로 험담하며 이곳을 시궁창으로 만드는지 속상했죠. 건강한 무대를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그가 힘들어할 때, 늘 중심을 잡아주는 건 남편인 배우 윤은채다.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이고 제겐 너무 큰 존재"라며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라고 애정을 보였다.

"남편은 항상 흔들림 없이 그 자리에 있어요. 차분하고 따뜻하고 넓은 사랑으로 제가 잘 설 수 있도록 제 손을 잡아주죠. 배우로서도 (남편을) 너무 좋아하고 응원해요. 선한 사람이라 무대에서도 그 온기가 느껴지죠. 다시 태어나도 이 사람과 꼭 결혼할 거예요."

차지연도 '송화'처럼 묵묵히 자신만의 연기의 길을 걸어왔다. "누군가는 제게 '너는 왜 안 되는 작은 작품만 골라서 하냐', '스타가 못 되는 멍청한 길을 가냐'고 했죠. 속상했지만, 제가 되고 싶은 건 스타가 아니라 오랫동안 연기할 수 있는 배우예요. 바르고 멋있는 배우로 늙어가고 싶죠. 끊임없이 제 목소리를 듣고 주변의 비판을 들으며 성장하는 그 과정에 살아있음을 느껴요."

그는 관객들에게 '서편제'가 묵직한 작품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화려함은 없지만, 그 어떤 작품보다도 묵직하게 마음속에 남았으면 해요. 우리끼린 무언의 교류를 할 수 있죠. 인물 한 명 한 명의 삶이 다양한 색채로 펼쳐지는 그 풍성함을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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