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적했던 안희정, 검찰 자진출두 왜…진정성? 노림수?
【서울=뉴시스】임태훈 기자 = 자신의 비서를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가 9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부지방검찰청으로 자진출석,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2018.03.09 [email protected]
신속한 수사 협조가 국민에 속죄하는 의무라고 판단
추가 폭로 막고 파장 조기 종식시키려는 계산도 가능
진지한 반성, 엄벌 자처해 향후 정치 재개 도모 포석도
【서울=뉴시스】박준호 기자 = '미투(#MeToo·나도 당했다)' 폭로 이후 잠적했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나흘만인 9일 검찰에 자진 출두하는 '돌발 행동'을 한 배경이 궁금증을 낳고 있다.
검찰과 안 전 지사측 설명을 종합하면 서울서부지검은 이날 오후 3시40분께 안 전 지사가 선임한 변호인으로부터 1시간20분 뒤에 자진 출석하겠다는 의견을 전달받고 출석을 허락했다.
검찰이 피의자를 소환하기 전 변호인을 통해 출석날짜를 사전 조율하는 통상적인 절차와는 달리 정식으로 소환 통보를 하기도 전에 피의자가 자진해서 검찰에 나오는 건 매우 이례적이다.
이에 대한 해석은 분분한다.
우선 안 전 지사는 전날 충남도청에서 열기로 한 기자회견을 취소하며 주장한 대로 "모든 분들이 신속한 검찰수사를 촉구하는 상황에서,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검찰에 출석하여 수사에 성실하게 협조하는 것이 국민 앞에 속죄 드리는 우선적 의무"라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
자신에 대한 비난 여론이 가열되는 상황에서 하루라도 빨리 법의 심판을 받아 국민들에게 속죄하겠다는 것이다.
여권에서 차기 대권주자로 꼽힐 만큼 유력 정치인이자 충남지사로서 지역에서 명성을 쌓은 안 전 지사가 자신에게 기대를 건 국민과 도민들에게 큰 실망감을 준 데 대한 자책감에서 신속한 검찰 출석을 결심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안 전 지사가 이날 검찰청사에 도착해 가장 먼저 꺼낸 말이 "죄송합니다"라는 사과였고, 가장 많이 쓴 단어도 '죄송'이나 '잘못'이란 표현이었다.
지난 5일 수행비서였던 김지은(33)씨가 공개적으로 성폭력 피해 사실을 주장한 뒤 안 전 지사 측에서 가장 먼저 내놓은 해명은 '강압이 아닌 합의에 의한 관계'였다. 안 전 지사가 얼마 안 돼 비서진의 실수라며 해명을 철회했지만, 안 전 지사 측은 "더 이상 추가 피해자는 없다"고 주장하며 법적인 책임을 최소하하는 대신 도의적인 책임만 부각시켰다.
그러나 안 전 지사가 설립한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여직원이 추가로 성폭력 의혹을 제기했고, 안 전 지사측은 이에 대한 별도의 입장 표명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제2, 제3의 추가 피해자가 나올 경우 수사 장기화는 불가피할 것이고, 새로운 의혹에 일일이 반박을 하면 할 수록 '판'이 더 커질 수 있다. 결과적으로는 안 전 지사에게 불리한 국면이 전개된다. 이 때문에 자진 출두라는 돌발행동은 검찰 수사를 조기 종결토록 하려는 안 전 지사의 '무언의 압력' 일 수 있다.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자마자 고소인 조사도 하기 전에 성폭력 사건임에도 신속하게 압수수색에 나서는 등 강한 의지를 드러내보이고 있는 점도 안 전 지사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
특히 성폭행 범행 장소로 지목된 서울 마포의 한 오피스텔이 건설업계에서 일하는 안 전 지사 지인 명의로 알려지면서 청탁금지법이나 뇌물 논란이 일고 있는 점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성폭력 사건을 마무리하고 지인 관련 뇌물 의혹에 대한 '별건 수사'에 들어가기 전 안 전 지사가 급하게 자진 출두를 함으로써 성폭력 사건에 수사력을 집중하도록 유도해 검찰 칼날을 피하려 한 게 아니냐는 추측도 없지 않다.
안 전 지사의 성추문 사태가 조기 종식되길 바라는 입장은 여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방선거를 목전에 둔 중요한 시점에 성추문 파장을 막을 수는 없더라도, 이를 최소화하려면 가능한 한 빨리 검찰 수사가 마무리돼 파장이 사그라드는 것이 차선책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안 전 지사가 '자포자기' 심정으로 검찰에 출두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추가 성폭력 폭로나 사회적 비난 여론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고 보고 최대한 몸을 낮추는 저(低)자세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상책이라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진지한 반성을 보이는 태도는 향후 몇 년 뒤이든 정치 재기를 도모하는 데 조금이나마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실제로 안 전 지사는 참여정부 시절인 2003년 12월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의 선고공판 법정 최후진술에서 재판부에게 "죄를 엄하게 물어 달라. 달게 받겠다. 무겁게 엄벌해 달라. 과거에 악법은 어기는 것으로 저항했지만 이제는 그 법을 철저히 준수하면서 제자리에서 민주화 운동을 계속하고 싶다"며 변명 대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 화제가 됐다.
안 전 지사는 지난해 2월 당내 대선 후보 경선 당시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참여정부 시절 옥살이를 한 것과 관련, "당원과 국민에 대해서는 일정 정도 정치적 사면과 복권을 받은 것이 아니냐"고 반박하며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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