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수사 8개월 대장정…다시보는 결정적 장면들
수사 초반…영장 둘러싸고 검찰-법원 신경전
중반들어선 '중간 책임자' 임종헌 구속 수사
수사 후반…박병대·고영한 등 前대법관 소환
수사 정점…'사상 초유' 전 대법원장 구속돼
【서울=뉴시스】조성봉 기자 =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대기장소인 서울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11일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이날 양 전 대법원장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구속기소 하고,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을 불구속기소 하는 등 핵심 피의자들을 재판에 넘겼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도 3번째 추가기소됐다.
앞서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6월 재판 거래 의혹 등 고소·고발 사건을 특수부에 배당하고,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검찰은 수사를 거쳐 의혹의 정점이라 평가받는 양 전 대법원장을 구속하고, 재판에 넘기기까지 이르렀다.
◇수사 초반…영장 둘러싸고 검찰-법원 신경전
당시 검찰은 배당 하루 만에 법원행정처에 컴퓨터 하드디스크 원본 등 관련 자료를 제출해줄 것을 서면으로 요청했다. 그러나 법원은 일부 자료를 제출하면서도 검찰이 강하게 요청했던 하드디스크 원본 등은 제출하지 않았다. 공무상비밀에 해당되지 않고, 구체적 관련성이 인정되는 범위 내에서만 자료를 제출할 수 있다는 게 법원의 입장이었다.
이후 검찰은 강제수사에 착수했지만, 압수수색 영장은 좀처럼 법원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법원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자택과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은 발부했지만, 양 전 대법원장, 박병대 전 대법관(전 법원행정처장) 등에 대한 영장은 계속해서 기각했다.
이에 당시 법조계에서는 법원이 '제 식구 감싸기'식 영장 결정을 내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이렇게 영장이 기각된 사례가 있었는가"며 "다른 사건 기준과 차이가 너무 크다"고 작심 발언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법원에서는 "(영장을 청구한) 검찰이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공개 반박했다.
【서울=뉴시스】김선웅 기자 =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해 10월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구속 후 첫 번째로 소환되고 있다. 2018.10.28. [email protected]
이후 검찰은 전·현직 고위 법관들과 실무급 역할을 담당한 중견급 판사들을 다수 불러 조사하는 등 저인망식 수사로 방향을 선회했다. 압수수색으로 기초 자료를 확보하는 게 쉽지 않음에 따라 관련자 개개인의 진술 및 증거를 확보함으로써 윗선 수사에 나아가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이다.
이어진 수사 과정에서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재판 자료 등 기록을 유출하고,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이를 파기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에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A4용지 2장 분량의, 2780자가 넘는 장문의 사유를 밝히면서 이를 기각했다. '역대급'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이례적인 경우였다.
검찰은 보강 수사를 거쳐 추석 연휴가 끝난 지난해 9월말 차한성·박병대·고영한 등 전직 대법관들에 대해 전격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고, 이번에는 받아들여졌다. 특히 양 전 대법원장이 퇴임 이후 사용한 개인 소유 차량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을 실시했고, 서재에 보관 중이던 USB(이동식 저장장치) 2개를 확보하기도 했다.
검찰은 압수한 자료를 분석한 뒤 지난해 10월 임 전 차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했다. 사법 농단 의혹에 있어서 핵심적인 '중간 책임자' 역할에 대한 피의자 소환이었다. 검찰은 수차례에 걸친 소환 조사 끝에 임 전 차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고, 받아들여졌다. 검찰은 구속 수사를 거쳐 지난해 11월 임 전 차장을 기소했고, '윗선'을 향한 칼날 끝을 갈았다.
◇수사 후반…전직 대법관들 본격 수사 선상에
검찰은 지난해 11월 차한성 전 대법관을 소환 조사하면서 전직 대법관들에 대한 수사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검찰은 이후 민일영·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들을 줄줄이 불러 조사했고, 이 중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다.
특히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은 대법관으로서 처음으로 피의자 신분 공개 소환돼 주목받았다. 이들 모두 "사심 없이 일했다"며 혐의를 부인하는 입장을 밝혔고, 수차례 검찰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조사 결과를 검토한 뒤 지난해 12월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사법부 70년 역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법관을 상대로 한 첫 구속 수사 시도였다. 두 전직 대법관은 각각 '죄가 안 된다', '책임 및 역할의 정도가 가볍다'는 등의 주장을 펼치며 구속 심사에 임했다.
법원은 두 전직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은 모두 '공모관계 성립에 의문이 있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검찰은 "이 사건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철저한 상하 명령체계에 따른 범죄"라며 "큰 권한을 행사한 상급자에게 더 큰 형사책임을 묻는 것이 법이고 상식이다"고 즉각 반박했지만, 결국 사법 농단 수사는 해를 넘기게 됐다.
【의왕=뉴시스】박주성 기자 = 박병대(왼쪽) 전 대법관과 고영한 전 대법관이 지난해 12월7일 오전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2018.12.07. [email protected]
검찰은 새해를 맞이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소환 조사를 결정, 통보했다. 양 전 대법원장 또한 검찰 출석에 응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사법 농단 수사는 정점을 찍게 됐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은 '친정' 대법원에서만 대국민 입장을 밝히고, 검찰 포토라인은 그대로 지나쳐 논란이 일었다. 의혹이 불거진 지난해 6월 자택 인근에서 가졌던 '놀이터 기자회견'처럼 양 전 대법원장은 이번 '대법원 입장'에서도 재판 개입 등에 대해 "(없었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혐의를 사실상 모두 부인했다. 소위 '4無' 전략으로 검찰 조사에 맞선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40여개에 달하는 사법 농단 의혹과 관련해 ▲지시한 적 없다 ▲보고받은 적 없다 ▲기억이 없다 ▲죄가 성립될 수 없다는 주장을 펼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조사 끝에 사법농단 의혹이라는 반(反)헌법적 중범죄의 최고 책임자에게 더 무거운 형사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결정했고,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해 전격적으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와 함께 한 차례 영장 위기에서 벗어났던 박병대 전 대법관에 대해서도 영장을 재청구했다.
검찰과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달 23일 구속 심사에서 '법정 혈투'를 벌였고, 법원은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헌정 사상, 사법부 71년 역사상 최초로 전직 대법원장이 구속된 것이다. 다만 박병대 전 대법관은 이번에도 구속 위기에서 벗어났고, 홀로 귀갓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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