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 前한은 총재 "화폐개혁, '0 세 개'를 떼는 것일뿐"
"지금 안해도 큰 불편은 없지만 언제든 안하면 안 돼"
토론회 주최 여야 의원 리디노미네이션 필요성 공감
"국민 공감대 형성 선행돼야", "대승적 논의 필요"
【서울=뉴시스】조현아 정희철 기자 =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가 13일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 화폐액면단위 변경)' 논쟁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각종 논란이 일고 있는 것에 대해 "화폐단위 변경은 '0' 세 개를 떼어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며 불필요한 불안을 경계했다.
박 전 총재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획재정위원회 이원욱·박명재·최운열·심기준·김종석 의원과 국회입법조사처가 공동주최한 '리디노미네이션을 논하다' 정책토론회에서 축사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그는 과거 한은 총재 재임 시절인 2004년 전담팀을 꾸려 1000원에서 0 세 개를 떼어 1환으로 바꾸는 내용의 리디노미네이션을 추진했으나 정부의 반대로 성사시키지 못했다. 이번에 리디노미네이션 논쟁이 불붙자 다시 총대를 메고 나선 것이다.
박 전 총재는 리디노미네이션의 부정적 여론을 염두에 두고 "과거 우리나라가 두차례의 화폐개혁을 시행했는데 돈을 다 바꿔준게 아니라 가령 30%를 동결 조치하거나 실명으로 바꾸도록 해 부정적 이미지가 남아있는 것"이라며 "국민들이 화폐개혁의 '화폐' 소리를 꺼내기도 어려운 환경을 넘어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신구 화폐를 1년간 동시 통용해 습관화할 수 있도록 하고 돈을 교환해줄 때에도 무제한, 무기명으로 하면 논란이 없을 것"이라며 "무슨 '계엄령'을 선포하듯 하는게 아니라 법 제정을 비롯해 전부 국민에게 알리고 공개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리디노미네이션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거듭 강조했다. 그는 "(과거 리디노미네이션 추진 당시) 중국 인민은행 총재가 만나서 하는 얘기가 한국은 선진국인데 환율이 왜 그렇느냐고 했다"며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고 그래서 후진성을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미 달러당 원화 환율은 1180원(13일 개장 기준)으로 단위 수가 네 자리에 달한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중 1달러당 환율이 네 자릿수인 국가는 우리나라가 유일한 상황이다.
화폐개혁이 언젠가는 꼭 필요하지만 결국 국민이 판단할 문제라는게 그의 입장이다. 박 전 총재는 "(리디노미네이션)을 안해도 큰 불편은 없다"며 "그런데 언제든 안하면 안 되는 일이고 결국 지금이냐 5년, 10년 뒤냐 시기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플레이션 문제와 막대한 비용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결국 이 비용을 어떻게 보느냐가 문제"라며 "한 편으로는 이 비용이 투자가 될 수 있고 일자리가 생기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에 국민이 판단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여야 의원들도 화폐 액면단위 변경 필요성에 힘을 실으며 한목소리로 지속적인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서울=뉴시스】이종철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원내수석부대표가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19.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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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우리나라는 확대된 경제규모에 비해 화폐단위는 레바논, 콩고, 이라크 등 후진국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며 "OECD 34개국 중 1달러당 환율이 네 자릿수인 유일한 국가로 경제 위상에 맞지 않는 화폐 단위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사회적 비용과 국민 혼란 등 부작용이 존재한다는 우려도 있는게 사실이지만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충분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며 "국가적 차원에서 충분한 사전논의가 필수인 사항으로 장기적인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대승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명재 자유한국당 의원도 "리디노미네이션은 우리 경제가 언젠가는 가야할 길이고 반드시 해결해야 할 숙제"라며 "그러기 위해서는 정확한 분석과 국민 공감대 형성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당 김종석 의원도 "지금이 여러모로 적기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며 "급진적 추진이 아닌 국민이 공감하고 경제 성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리디노미네이션이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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