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살아있다는건 펄떡거린다는 것… 연극 '고등어'

【서울=뉴시스】연극 '고등어'(사진=국립극단)
극 자체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속 마들렌을 연상케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속에서 홍차를 적신 마들렌의 향기는 기억의 안내자다.
'고등어'에서는 15세 여중생인 지호와 경주의 삶이 기억을 환기시키는 통로다. 10대들에게는 어제의 나이며, 어른들에게는 몇십년 전 내 모습이다. 눈치를 봐야 하는 주변 친구들의 눈총이 따갑고, 애인과 함께 사는 엄마가 있는 집구석이 싫어 뛰쳐나가고 싶었던 심정은 지호와 경주만의 것이 아니다.
둘은 생생한 고등어를 보기 위해 통영항으로 무작정 향한다. 겨우 얻어 탄 고등어잡이 배에서 경주에게 좋았던 기억들을 이야기한다. 커피와 딸기를 얹은 케이크를 먹어도 좋을 것 같은 시간대인 오후 3시, 일요일 오후 빨래가 햇볕에 마르는 순간.
일상의 평범한 순간인데, 자신이 답답한 걸 하찮게 여기는 지호의 입에서 하나둘씩 조심스레 새어나올 때 가슴이 턱 주저앉는다.
'고등어'는 사회적인 문제를 부러 과장하지 않는다. 지호와 경주가 일상의 학교에서 겪는 생활이 노량진 수산시장의 수조 속에 갇힌 고등어와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서울=뉴시스】연극 '고등어'(사진=국립극단)
특히 양쪽 끝을 놀이기구 바이킹의 끝 곡선 모양으로 처리, 역동감을 부여한 것이 탁월한 선택이다. 언덕배기, 배의 난간 등 다양한 공간으로 변모한다. 무엇보다 에너지가 충만한 또는 분출해야만 하는 그을린 에너지가 가득한 10대를 연기하는 배우들이 달려야만 할 때 가속도를 붙게 하는 활주의 공간이다.
고등어를 그물에 한 가득 잡아올리는 순간도 명장면이다. 탁구동 등 다양한 크기의 플라스틱 공들이 천장에서 떨어지면서 펄떡거리는 고등어 떼를 표현한다. 이 장면은 여는 연극무대에서 볼수 없는 생동감이 압도한다.
그물에 막 건져 올라온 고등어가 그러하듯, 자기 앞의 생과 사투를 벌이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내달리고 몸부림치는 두 소녀의 모습까지 겹쳐지면서 마법 같은 순간을 만들어낸다. 고등어 잡이 배의 선장은 말한다. 고등어의 등과 배가 푸르고 하얀 이유를 설명하며 "고등어는 죽을 만큼 살다가 죽는다"고.
창극에서 극을 인도하는 도창 또는 소설 속 전지적 작가 시점 또는 셰익스피어 작품 속 요정 혹은 마녀로 일컬어도 모자람 없는 '존재' 역들을 맡은 류경인·경지은·한소미의 다양한 연기·움직임·소리도 극의 다양한 장면을 연출하는데 일등공신이다.

【서울=뉴시스】연극 '고등어'(사진=국립극단)
"네가 답답해하는 걸 하찮게 여기지마." 힘들어하는 순간에 서로가 결의에 차 들려주는 이 대사는 고등어처럼 펄떡거린다. 선장이 잘라준 고등어 회를 입에 넣고 반짝거리는 생명력을 뽐내는 경주, 지호가 정새별, 정지윤이다. 10대의 생생한 언어와 행동은 그녀들의 옷을 입고 극장에서 다시 살아난다.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배우인 배소현은 희곡작가로서 데뷔작인 '고등어'로 단숨에 홈런을 날렸다. 자신의 중학교 시절 실제 경험담이니 제옷일 수밖에 없다. 상상력과 놀이를 결합해온 연출가 이래은의 연출 솜씨는 '고등어'에서 화룡점정이다. 잃어버린 줄 알았던 청소년 시기의 반짝거림을 발견하게 만든다.
국립극단(예술감독 김윤철)이 선보이는 '2016 청소년극 릴-레이'의 첫 번째 작품이다. 이제 국립극단 청소년극은 확실히 브랜드를 구축하게 됐다. 드라마투르기 김석영, 무대 박상봉. 29일까지 서계동 국립극단 소극장 판. 3만원. 1644-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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