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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상 건드리지 말라"…푸틴 동원령, 러 시민들과 암묵적 계약 파기

등록 2022.09.22 10:0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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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하는 대신 시민 일상 건드리지 않는다는 약속 위반으로

애써 조장한 무관심 사라지고 '승리하고 있다' 주장 못하게돼

[예카테린부르크=AP/뉴시스] 21일(현지시간)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예비군 일부 동원령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체포되고 있다. 2022.09.22.

[예카테린부르크=AP/뉴시스] 21일(현지시간) 러시아 예카테린부르크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예비군 일부 동원령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체포되고 있다. 2022.09.22.


[서울=뉴시스] 강영진 기자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부분 동원령을 발동한 것은 러시아 국민들과의 묵시적 사회계약을 깨트린 것이며 푸틴의 앞길에 지뢰밭이 놓이게 됐다고 지적하는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안드레이 콜레스니코프 선임연구원 기고문을 미 CNN이 21일(현지시간) 실었다.

러시아 시민들이 푸틴에게 도둑질하고 전쟁하는 권리를 부여하는 대신 우리 일상은 건드리지 말라는 묵시적 사회계약을 푸틴이 깨트렸다. 이로써 푸틴은 사실상 국내에서 전쟁을 선포한 셈이다. 반대 세력과 시민사회만이 아니라 러시아 전 남성들을 상대로 한 전쟁이다.

푸틴이 왜 이런 모험을 할까? 스스로 몇 달 동안 이어진 전쟁에 대중이 관심을 갖지 않도록 유도한 때문이다. 동원령은 큰 불만을 촉발한다. 총동원령이 아니라 부분 동원령을 발한 것도 이 때문이다. 결국 푸틴은 스스로 자신의 통치에 지뢰를 깔았다. 조만간 푸틴은 사보타지에 직면할 것이다.

푸틴은 오래도록 대중이 전쟁에 관심을 갖지 않도록 노력해왔다. 그 무관심 때문에 러시아인들이 총알받이가 될 참이다.

바로 직전까지 러시아인들은 전쟁에 여러 형태로 무관심을 표현했다. 진짜로 무관심하거나, 무관심한 척하거나, 관심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러시아인의 50% 가까이가 "특별군사작전"을 "적극" 지지했고 지지하지 않는 사람은 20%에 불과했다. 나머지 "그런대로" 지지하는 30%는 자신의 입장을 갖지 않고 TV나 푸틴의 주장을 그대로 따랐다. 안좋은 소식이나 관영매체가 아닌 소스에는 귀를 막은 것이다. 이들이 푸틴 주장에 반대하고 나설 가능성이 있다.

푸틴은 일반 국민들의 무관심을 활용했다. 푸틴은 침공 직후부터 병력과 자신에 대한 지지를 일부만 활용하는 한편으로 무관심을 조장하는 교묘한 조정을 해왔다. TV에 오락 프로그램이 등장하고 모스크바의 날 축제에 불꽃놀이를 했으며 사람들은 일상생활을 할 뿐 우크라이나에는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무관심한 사람들조차 우크라이나의 반격을 무시할 수 없게 됐지만 이들은 여전히 우크라이나의 반격을 제대로 인정하진 않고 있다. 당국자들이 후퇴한 것이 아니고 재편성하는 것이라고 말하자 그대로 믿었다. 그런데 러시아의 관영 매체 토크쇼에서 패배라는 주장이 가득해졌다. 다만 전쟁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 대신 공격을 강화하라는 증오 발언이 난무했다. 신중함을 벗어 던지고 우크라이나를 단죄하라고 목청을 높였다.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인프라스트럭처를 미사일 공격함으로써 그런 주장을 따랐다. 복수와 분노의 행동이었지만 약하다는 증거였다.

과격한 사람들은 푸틴에게 끝장을 봐야 한다며 총동원령을 요구했다. 그러나 승리를 앞당기기 위해 푸틴이 동원할 수 있는 병력 등 자원이 제한돼 있다.

소파에 앉아 TV로 전쟁을 구경하면서도 참호로 가지는 않으려는 중산층의 불만을 자극하는 건 푸틴에게 도움이 안된다. 나아가 총동원령은 경제에 필요한 인적 자원을 소모시킨다. 일할 사람이 남아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급진파들은 예전부터 푸틴을 비난해왔지만 이들의 목소리가 크게 부각된 적은 없었다. 이 세력은 친서방 자유주의자들보다 목소리가 약했다. 또 푸틴이 두 세력이 충돌하는 것을 방치하지도 않았다.

러시아에서는 여론이 활성화된 적이 없었지만 이번엔 달라질 것이다. 경제 문제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사회경제적 어려움은 부각되지 않았다. 그러나 올 연말이나 내년초부터 경제난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여론의 무관심 속에서 푸틴은 패배를 승리라고 주장하면서 전쟁을 끝낼 수도 있었다. 우크라이나 점령지 4곳의 합병 투표를 지지한다는 발표는 그런 움직임의 일환이었다.

이제 푸틴이 스스로 벌인 일을 중단할 생각이 없다는 게 분명해졌다. 그는 러시아가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믿는다. 최소한 점령지를 보다 확고하게 장악하고 러시아 영토라고 선언해 이 지역에 대한 공격은 러시아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한다고 발표할 생각이었을 것이다. 이를 통해 특별군사작전을 공식 전쟁으로 변화시켜 총동원령을 발할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두가 실수가 될 것이다. 푸틴이 전쟁을 늦게 끝내려 할수록 자신이 승리하고 포장할 수 있는 휴전에 이르기는 더 어려워진다.

아직은 여론이 전쟁 장기화를 받아들이는 분위기지만 언제든 끝없는 긴장으로 인한 피로가 폭발해 분위기가 바뀔 수 있다.

푸틴은 시간이 충분하며 러시아군이 서두르지 않고 있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패배를 승리로 분식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 무엇보다 "그런대로" 지지하는 30%에게 말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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