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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의 러 영토 공격론과 맥아더 ‘만주 폭격’ 데자뷰 [기자 수첩]

등록 2024.05.29 16:15:18수정 2024.05.29 19: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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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의 러 영토 공격론과 맥아더 ‘만주 폭격’ 데자뷰 [기자 수첩]


[서울=뉴시스] 구자룡 기자 =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가 제2의 도시 하르키우 외곽까지 압박해 오면서 "서방이 제공한 무기를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영토를 향해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쟁점이 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은 우크라이나에 무기는 공급하지만 러시아 영토 내 표적을 공격하는 데는 사용하지 말라는 조건을 붙였다. 하지만 러시아의 공격으로 우크라이나가 불리해지면서 입장이 선회하고 있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국경 일대에서 격전이 오가고 있어 반대쪽 국경의 군사적 목표물을 타격할 수 없게 되면 우크라이나는 스스로를 방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앞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도 “우크라이나가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푸틴은 “나토가 누구를 상대하는 지 명심해야 한다.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서방의 무기가 러시아 영토내로 들어오면 나토와 러시아간의 전쟁으로 확전될 것을 예고한 것이다.

러-우 전쟁의 러시아 영토내 확전 논란은 70여년 전 6·25 전쟁 당시 ‘만주 폭격’ 등을 둘러싸고 벌어졌던 ‘확전론’과 ‘제한론’을 떠올리게 한다.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은 중공군이 압록강 너머 만주를 대규모 병참기지로 삼아 물밑듯이 건너오고 있는 상황에서 만주 를 폭격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했으나 트루먼 행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맥아더가 압록강에 놓인 다리라도 신속히 끊어 병력과 무기 유입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역시 거절당했다. 미군의 큰 희생이 예상된다는 맥아더의 ‘으름장’을 듣고서 트루먼은 ‘부분 폭격’을 허용했다.

[서울=뉴시스] 지난해 5월 기자가 찾아간 북한 신의주와 접경한 중국 랴오닝성 단둥의 압록강 단교. 북한쪽 절반이 미군 폭격으로 부서져 교각만 남아있다. 2024.05.29.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지난해 5월 기자가 찾아간 북한 신의주와 접경한 중국 랴오닝성 단둥의 압록강 단교. 북한쪽 절반이 미군 폭격으로 부서져 교각만 남아있다. 2024.05.29.  *재판매 및 DB 금지

그래서 남은 것이 북한과 중국의 접경 도시인 랴오닝성 단둥의 ‘압록강 단교’다. 6·25 정전 70년을 맞아 지난해 5월 찾아간 이 다리는 오랜 세월 북중 국경인 압록강 중간선의 북한쪽 절반만 폭격으로 부서진 채 앙상한 교각만 남아 있었다.

6·25 전쟁 당시 중공군이 압록강을 넘어 참전한 뒤 20여일 지난 1950년 11월 8일부터 14일까지 미군 항공기 폭격으로 부서졌다.

다리가 절반만 끊긴 것은 트루먼 대통령과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이 만주 폭격 등 작전 범위를 둘러싸고 벌인 ‘확전론’과 ‘제한론’의 절충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트루먼은 압록강 너머 신의주 등 만주를 폭격해서는 안되고, 압록강의 다리도 북한쪽만 공습해야 한다고 했다. 절반만 끊어진 다리에는 ‘중공군에 대한 미군의 공습은 저기까지’라는 역사 코드가 담겨있다.

맥아더는 6·25 전쟁이 끝나고 수년 후 자신을 해임한 트루먼을 비난하면서 “휴전기간 받은 아군의 손상보다 훨씬 적은 손해로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 있었으나 (트루먼은) 아군의 행동을 고의적으로 묶었다”고 주장했다.

트루먼도 회고록에서 “나폴레옹이 모스크바 침공 중 ‘나는 싸움마다 모두 격파했으나 어느 한 곳도 얻지 못했다’고 한 말을 되새겨야 한다”며 “전쟁에서 승리는 그 자체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나무보다 숲을 봐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트루먼과의 갈등으로 맥아더는 이듬해 4월 전격 해임됐다. ‘제한론’과 휴전 협상 국면 그리고 2년여 간의 지리한 고지전 참호전 끝에 양측이 정전 협정을 맺은 한반도는 70여년째 분단 상태다.

6·25 당시 핵무기 사용이나 만주 폭격을 주장한 맥아더와 이를 거절한 트루먼의 선택 어느 것이 옳았는지 판단하는데는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다만 우크라이나 확전 논란을 보면서 강대국들간에 어느 시기 내려진 결정으로 인한 결과는 전쟁 당사국에는 오랜 기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서방 무기 러시아 영토내 사용’ 논란이 어떻게 귀결될지 지켜봐야 하지만 긴 역사적 안목을 보고 결정해야 할 것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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