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원→1원?' 정치권 화폐개혁 군불…전문가 의견 분분
국회 기재위 여야 의원들 '리디노미네이션' 정책 토론회
전문가들 의견 제각각 "지금이 적기" vs "뜬금없다는 의견"
"국민적 합의 선행…10년 이상 '장기 프로젝트'로 진행"
【서울=뉴시스】조현아 정희철 기자 = 정치권이 '리디노미네이션'(redenomination: 화폐액면단위 변경) 논의에 본격적으로 불을 지피고 나섰다. 13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이원욱·박명재·최운열·심기준·김종석 의원이 국회입법조사처와 공동으로 '리디노미네이션을 논하다'라는 주제의 정책 토론회를 열고 전문가들의 의견 수렴에 들어간 것이다.
여야 의원들은 이미 시장에서 1000원을 1원으로 낮춰 쓰는 등 '셀프 리디노미네이션'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원화의 대외적 위상 제고, 지하경제 양성화 등을 위해 지금부터 리디노미네이션에 대한 공론화 작업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놨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각기 달랐다. 물가 상승률이 낮은 지금이 적기로 시행이 빠를 수록 좋다는 의견이 제시된 반면 '현금없는 사회'로 전환되고 있는 상황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견해도 나왔다. 부작용이 상당하기 때문에 충분한 논의를 거쳐 장기적 과제로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잇따랐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우리나라의 낮은 물가상승률은 리디노미네이션에 따른 인플레이션 우려를 낮추는 요인"이라며 "과거에 비해 물가 상승에 대한 부담이 낮아진 점에서 리디노미네이션을 추진하기에 적절한 기회라고 본다"고 말했다.
조 위원은 다만 "경제 주체의 혼란과 불편함, 화폐와 금융시스템 안정성에 대한 대외적 불안감 등을 고려할 때 급격하게 시행하기 보다는 면밀하게 준비한 후에 시행해야 충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정우 한국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도 "현재 디플레이션 우려도 있는 만큼 인플레이션을 우려하지 않아도 되는 경제적 조건은 무르익었다고 볼 수 있다"며 "단지 정치적 파장을 감당하기 어려워 실시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시간이 갈수록 필요성이 더 커질 수 있는 측면에서 지금부터라도 공론화하고 로드맵을 공유하는게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발제에 나선 임동춘 국회 입법조사처 금융공정거래팀장은 충분한 사전 논의와 국민적 합의를 강조하면서 '장기 프로젝트'로 진행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임 팀장은 "리디노미네이션은 장점도 있지만 부작용 또한 상당하기 때문에 충분한 사전 논의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공론화와 준비기간에 4~5년, 법률공포 후 완료까지 약 10년이 걸리는 장기 프로젝트로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대 논리도 나왔다. 최양오 현대경제연구원 고문은 "빅데이터 분석을 해보니 (리디노미네이션 관련) '뜬금없다'는 내용이 가장 많았다"며 "지하경제에서 화폐 규모는 6% 밖에 안 되고 나머지는 자산으로 돼있기 때문에 지하경제 양성화에도 별 도움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서는 임 팀장도 "리디노미네이션의 지하경제 양성화 효과는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같은 입장을 내놨다.
최 고문은 '현금 없는 사회'로 전환되고 있어 리디노미네이션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견해도 제시했다. "지금 화폐가 필요하냐"고 반문하면서 "(화폐 액면단위를) 변경해서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기후가 변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것을 대비한 개혁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홍춘옥 키움증권 이코노미스트도 "한 나라 경제가 안정적이고 잘 돌아가는 경우에 화폐개혁이든, 단위변경이든 한 적이 있느냐, 화폐개혁에서 성공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며 "글로벌 시장 참가자들의 눈에는 우리나라가 화폐단위 변경을 논의하는 것 자체를 이상하게 볼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인호 서울대 교수는 "반대를 위한 반대라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리디노미네이션은 돈만 찍어낸다고 되는게 아니라 계약서도 다 바꿔야 하기 때문에 사회적 비용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럼에도 화폐에 '0'이 많은게 창피해 (리디노미네이션을) 진행하려고 한다면 시간을 갖고 천천히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등 당국 관계자들은 이날 토론회에 전면적으로 참여하진 않았다. 정부와 한은은 리디노미네이션 추진 계획이 없다는 입장이다. 좌장을 맡은 조하현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 주제에 대해 한은과 기재부가 발제하고 전문가들이 찬반토론을 하는게 적절한데 그렇지 못해 서운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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