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조합들 '설계 선확정' 확산…공사비 증액 차단 나선다
등록 2026.09.25 07:00:00수정 2026.09.25 07:24:23
시공사 대안설계로 공사비 상승 우려…재건축 설계 경쟁 격화
압구정 이어 목동·분당까지 확산…논현·월계도 설계 경쟁 가열
초기 설계비 부담에도 설계변경 최소…공사비 상승 사전 차단
![[서울=뉴시스] 김금보 기자 = 24일 서울 시내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 타워크레인이 설치돼있다. 2024.06.24. kgb@newsis.com](https://img1.newsis.com/2024/06/24/NISI20240624_0020390483_web.jpg?rnd=20240624150239)
[서울=뉴시스] 김금보 기자 = 24일 서울 시내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 타워크레인이 설치돼있다. 2024.06.24.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성환 기자 = 재개발·재건축 조합들이 설계에 지갑을 열고 있다.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건설사들이 제시하는 대안설계에 기대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시공사를 뽑기 전에 조합이 원하는 상품 수준을 설계 단계에서 확정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초기 설계비는 늘더라도 설계를 미리 구체화해 이후 공사비 증액 요인을 줄이겠다는 판단이다.
그간 정비사업의 고급화 경쟁은 시공사 선정 때 본격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조합이 기본설계를 마련하면 건설사들이 수주 경쟁 과정에서 특화 외관과 평면, 조경, 커뮤니티 등을 담은 대안설계를 내놓는 방식이다.
건설사 입장에서는 수주 경쟁력을 높일 수 있지만, 시공사 선정 이후 대안설계를 실제 사업에 반영하는 과정에서 공사 범위가 바뀌고 공사비가 증가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시공사 선정 전에 설계부터 고급화하는 사업장이 늘고 있다. 단순 인허가 도면을 넘어 단지 배치와 평면, 외관, 조경, 커뮤니티까지 설계 단계에서 구체화하는 방식이다. 시공사들은 확정된 설계를 기준으로 공사비와 시공 조건을 제시한다.
이런 흐름이 두드러지는 대표적인 곳이 압구정이다. 압구정2구역 설계 공모에는 디에이건축,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ANU 등 대형 설계사들이 참여했다. 해외 설계사와 손잡고 경쟁에 나선 곳도 있다. 예상 설계금액만 약 144억원에 달한다.
압구정3구역에서는 약 300억원 규모의 설계권을 놓고 희림·나우동인 컨소시엄과 해안건축이 경쟁했다. 설계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서울시가 개입하는 상황까지 빚어졌다.
목동에서도 설계사들의 경쟁이 이어졌다. 컨소시엄 참여를 포함해 ANU가 3·5·8·11·13단지 등 5곳의 설계를 맡아 가장 많은 실적을 확보했다. 희림과 나우동인은 각각 3개 단지를 수주했고 건원은 2개 단지를 확보했다. 디에이, 삼하, 삼우, 해안, 가람 등도 컨소시엄 또는 단독으로 설계권을 따냈다.
조합들은 설계 단계에서부터 시공사의 대안설계 범위를 제한하는 장치도 마련하고 있다. 압구정2구역은 주동 배치와 스카이라인 등 주요 설계 요소를 조합이 확정해 시공사가 임의로 변경하기 어렵도록 입찰 조건에 반영했다. 목동 사업장들도 배치와 조망, 평면, 입체데크, 중앙광장, 상업시설 연계 등을 설계 과정에서 구체화하고 있다.
서울 내 다른 재건축 사업장에서도 설계 경쟁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강남구 논현동 동현아파트는 설계자 선정을 위한 합동 홍보설명회를 열고 업체별 제안을 비교하고 있다. 강북권 대규모 재건축 사업장인 월계시영아파트, 이른바 '미미삼' 설계자 입찰에는 ANU와 나우동인, 무영, 하우드 등 8개 업체가 참여했다.
설계 경쟁은 서울을 넘어 1기 신도시로도 번지고 있다. 분당 선도지구인 샛별마을 통합재건축은 지난 19일 토지등소유자 전체회의를 열고 나우동인을 설계자로 선정했다. 기존 5개 단지를 통합해 약 5050가구 규모로 재건축하는 사업인 만큼 단지별 이해관계와 평형 구성, 조망·일조 등을 설계 단계에서 조율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조합들이 수십억원에서 100억원대에 이르는 설계비를 감수하는 데는 공사비 관리 목적도 있다. 원안 설계가 단순할수록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대안설계의 범위가 커지고, 시공사 선정 이후 실제 시공을 위한 설계변경도 늘어날 수 있다. 마감재와 구조, 커뮤니티, 조경 등의 범위가 달라지면 추가 공사비를 둘러싼 갈등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반대로 시공사 선정 전 설계 완성도를 높이면 건설사 간 공사비와 시공 조건을 비교하기가 수월해진다. 조합이 원하는 상품 수준과 물량을 먼저 확정한 뒤 동일한 기준으로 입찰을 진행할 수 있어서다. 시공사 선정 이후 특화를 명목으로 설계가 계속 바뀌는 것도 줄일 수 있다.
결국 설계비 자체를 아끼기보다 전체 사업비를 통제하는 쪽으로 조합들의 셈법이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다. 공사비가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에 이르는 대형 정비사업에서는 설계비 수십억원보다 설계변경에 따른 공사비 증액 규모가 훨씬 클 수 있기 때문이다. 설계자 선정이 단순한 인허가 용역을 넘어 향후 시공사 선정과 공사비 협상을 위한 사전 작업으로 성격이 바뀌고 있는 셈이다.
정비업계에서는 앞으로 설계사의 경쟁력도 단순한 디자인 역량만으로 평가하기 어려워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분양가 상한제나 기부채납 등 각종 제약 속에서 고급화와 비용 절감을 동시에 달성하는 것이 조합의 주요 과제가 되고 있다"며 "특히 시공사 선정 이후 설계변경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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