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레이 아미, 12년 만의 금의환향…'케데헌' 신드롬 지나 가장 한국적인 나로

등록 2026.10.22 01:00:00

솔로 신곡 '투 라우드'로 연 새 챕터…'칼' 내려놓고 '글록 든 키티'로 진화

반지하서 자란 이민자 소녀의 검열…'세일러문' 적청(赤靑)과 태극의 이중성

김밥의 설움 딛고 메이시스 떼창까지…"난 뼛속까지 한국인 '이사라 예은'"

음악으로 빚어낸 가족의 화해…"결핍의 잿더미 딛고 일어선 불사조의 여정"

[서울=뉴시스] 레이 아미. (사진 = 유니버설뮤직 코리아 제공) 2026.10.22.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레이 아미. (사진 = 유니버설뮤직 코리아 제공) 2026.10.22.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상처는 종종 소리의 형태를 바꾼다. 어떤 이는 고통 앞에서 목소리를 지워버리며 침묵 속으로 침잠하지만, 어떤 이는 세상이 정해놓은 볼륨의 한계를 부수며 더 거칠게 비명을 지른다. 고통이 남긴 폐허 위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유일한 방식이 바로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계 미국 싱어송라이터 레이 아미(31·REI AMI·사라 예은 리(Sarah Yeeun Lee))의 음악은 언제나 그 아슬아슬한 임계점 위에 서 있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K-팝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속 가상 걸그룹 '헌트릭스(HUNTR/X)'의 막내 래퍼 조이 역으로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 1위('골든')에 오르고, 그래미와 오스카 무대를 종횡무진 누빈 그가 최근 발표한 솔로 신곡의 제목이 '투 라우드(2LOUD·너무 시끄러운)'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너무 과하다(too much)", "목소리를 낮추라"며 자신을 틀 안에 가두려 했던 세상의 모든 시선을 향해, 그는 자신이 지닌 본연의 소음과 활기를 가장 눈부신 댄스 플로어의 찬가로 되돌려줬다.

신곡 발표 후 12년 만에 고국 땅을 밟은 레이 아미를 최근 서울 강남구 유니버설뮤직 코리아에서 만났다. 서울 태생인 그에게 이번 방문은 단순한 프로모션 투어를 넘어, 흩어져 있던 자신의 기원과 유산을 마주하는 '영적이고도 운명적인 귀환'이었다. 5피트 2인치(약 157㎝)의 자그마한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거침없는 활력, 선원처럼 거친 비속어를 거침없이 뱉어내다가도 부모의 희생과 한국적 가치를 이야기할 때면 눈시울을 붉히는 그의 얼굴에는, 그가 오랜 세월 통과해 온 결핍과 투쟁, 그리고 치유의 궤적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반지하의 기억과 남산의 바람… 12년 만에 마주한 기원

레이 아미가 한국을 찾은 것은 2014년 이후 처음이다.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부모를 제외한 친척 대부분이 서울, 부산, 대구, 목포 등지에 터를 잡고 살고 있다. 유년 시절 부모는 딸이 모국어를 잊지 않고 한국인의 뿌리를 간직하길 바라는 마음에 매년 여름방학마다 한국으로 보냈다.

"대학에 진학한 이후로는 한국에 오려고 할 때마다 태풍이 오거나 팬데믹이 터졌어요. 커리어를 위해 LA로 이주한 뒤로는 앞만 보고 달리느라 올 엄두를 내지 못했죠. 그렇게 12년이 흘렀어요.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내내 펑펑 울었고, 공항에 착륙했을 때도, 서울에 도착한 첫날도 하루 종일 울기만 했어요. 이곳에 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 감사해서요. 제 방식대로 성공해 돌아온 것도 영광이지만, 거의 이 나라의 트로피이자 자랑스러운 상징처럼 환영받으며 돌아올 수 있어 형언할 수 없는 영광을 느낍니다."
[서울=뉴시스] 레이 아미. (사진 = 유니버설뮤직 코리아 제공) 2026.10.22.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레이 아미. (사진 = 유니버설뮤직 코리아 제공) 2026.10.22.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지난 17일 서울에서 치러진 헌트릭스 동료 이재(EJAE)와 프로듀서 샘킴 결혼식에도 하객으로 참석한 이번 여정에서 그는 남산타워와 함께 자신이 유년 시절을 보냈던 옛 동네를 찾았다. 부모가 결혼해 언니를 낳고, 그가 태어나 몇 년간 머물렀던 집은 영화 '기생충'을 연상케 하는 서울 구의동 반지하 집이었다. 아버지는 한국전력(한전)에서 근무했고, 가족은 미국으로 이주하기 직전 몇 년간 남양주 덕소에서 살았다.

"그 어려운 시절의 배경이 있든 없든, 제가 뼛속까지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제가 하는 모든 행위는 결국 한국적인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죠. 이전의 제 솔로 작업들이 서구적이라 느껴졌을지라도, 전 늘 가사에 한국어를 슬그머니 넣거나 한국인다운 제 정체성을 드러내려 애써왔어요. 그러다 '케데헌'을 만나 K-팝이라는 거대한 세계로 온전히 뛰어들게 된 거예요. 전 교포(Korean-American)라 아이돌 시스템 속에서 트레이닝을 거치지 않았기에 저 자신을 아이돌이라 부를 수는 없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K-팝의 거대한 문화적 현상 안에서 저를 온전히 받아들여 주셨는데 불평할 게 뭐가 있겠어요? 음악을 넘어 음식, 가족, 역사, 전통문화까지 한국의 모든 것을 세계에 알릴 수 있었으니 그저 축복 위에 축복이 쌓인 셈이죠."

역사와 전통에 대한 그의 애착은 남다르다. 최근 경복궁을 방문했을 때도 매니저와 프로듀서에게 한복을 입히고 고궁의 정취에 흠뻑 젖었다. '케데헌' 속편에 대한 질문에 "넷플릭스와 매기 강 감독에게 혼날까 봐 아무것도 말할 수 없다"고 유쾌하게 너스레를 떨면서도, 그는 "서로 다른 결핍을 지닌 세 소녀(조이, 루미, 미라)가 어떻게 만나 하나가 됐는지 다루는 오리진 스토리나, 아예 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데몬 헌터스의 시원을 다루는 역사극이 펼쳐진다면 정말 멋질 것 같다"며 눈을 반짝였다.

'세일러문'의 적청(赤靑)과 태극, 그리고 '글록을 든 키티'

2019년 도발적인 '스노 콘(snow cone)'으로 데뷔한 그의 예명 '레이 아미(REI AMI)'는 애니메이션 '세일러문'의 두 인물, 불을 다루는 저돌적이고 다혈질적인 세일러 마스(히노 레이)와 물을 다루며 차분하고 사려 깊은 세일러 머큐리(미즈노 아미)의 이름을 결합한 것이다. 그에게 이 예명은 모순적인 두 자아를 봉합하지 않고 공존시키겠다는 미학적 결단이었다.
[서울=뉴시스] 레이 아미. (사진 = 유니버설뮤직 코리아 제공) 2026.10.22.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레이 아미. (사진 = 유니버설뮤직 코리아 제공) 2026.10.22.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어릴 적 종교적인 가정환경 탓에 자기표현이 심하게 억압당했던 제게 애니메이션은 규칙 없는 세계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숨구멍이었어요. '세일러문'은 제 무드보드에 늘 자리했던 원천이었죠. 불완전하고 엉망진창인 소녀들이 연대해 끝내 임무를 완수하는 여성 서사가 좋았어요. 불같고 붉은색을 상징하는 레이, 그리고 푸른색의 아미. 한국의 태극기를 봐도 빨간색과 파란색이 공존하잖아요. 고난과 한(恨)의 정서 속에서도 뜨거움과 차가움이 교차하는 그 양면성이야말로 한국 문화의 본질이자 제 내면의 모습이었어요. '이 모든 게 딱 들어맞는데, 왜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하지?' 싶었죠."

팬덤 '레이비즈'는 오랫동안 그를 '칼을 든 헬로키티'라고 불러왔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외피 속에 숨겨둔 날카로운 칼날. 하지만 서른한 살을 맞이한 지금, 그는 그 캐릭터마저 한 단계 더 진화했다고 선언한다.

"이제는 칼 따위로 장난치지 않아요. 글록(Glock) 19 권총을 든 헬로키티로 업그레이드했죠. 과거에는 제 커리어나 음악을 두고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간섭하려 드는 이들이 많았고, 기회를 잃을까 두려워 결핍 속에서 결정을 내리곤 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을 바탕으로 선택해요. 아닌 것은 아니라고 단호하게 거절('No')할 수 있는 힘이 생겼죠. 제가 밝고 유쾌하다고 해서 순진하고 만만한 사람으로 오해하는 시선도 있지만, 그 밝음이야말로 저를 지탱하는 슈퍼파워예요. 전 제 자신과 제 사람들을 온전히 믿는, 훨씬 더 단단한 버전의 인간이 됐습니다."

억압의 성소(聖所)와 반항의 세속… 힐송과 브리트니 사이에서

지금의 단단한 자아는 유년 시절의 가혹한 억압과 분열을 통과하며 벼려진 것이다. 엄격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그는 집 안과 밖에서 철저히 분열된 삶을 살아야 했다.
[LA=AP/뉴시스] 레이 아미(Rei Ami)

[LA=AP/뉴시스] 레이 아미(Rei Ami)

"초등학교 시절 미국 생활에 적응하면서 늘 이중생활을 겪었어요. 집에서는 한국어로 성경을 읽고 필사하게 하셨는데, 학교에 가면 맥앤치즈와 피자를 먹으며 친구들과 자유롭게 뛰놀고 싶었죠. 그러다 한 번은 집에서 너무 신이 나 방방 뛰며 기뻐하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그만해라, 너무 과하다'라며 제 흥을 꺾어버리셨어요. 어린 마음에 큰 충격을 받았죠. 난 그저 진심으로 행복했을 뿐인데 내 기쁨을 표현하는 게 왜 잘못된 일이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어요. 그때 '내 감정을 너무 드러내선 안 되는구나, 늘 감정을 숨기고 중립을 지켜야 하는구나' 깨달았죠."

가정의 규율은 음악을 듣는 것도 엄격했다. 부모는 오직 CCM(기독교 현대음악)만을 허락했다. 그러나 억압은 순응이 아닌 맹렬한 반항을 낳았다.

"저는 무언가를 강요받으면 상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일부러 반대로 행동해야 직성이 풀리는 기질을 타고났어요. 기독교 음악만 들으라고 하셨을 때, 부모님이 외출하시자마자 컴퓨터를 켜고 머라이어 캐리의 '셰이크 잇 오프(Shake It Off)'를 틀고,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더티(Dirrty)'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톡식(Toxic)' 뮤직비디오를 보며 팝스타를 꿈꿨죠. 라임와이어 같은 불법 다운로드 프로그램으로 제레마이의 '버스데이 섹스(Birthday Sex)'를 내려받아 아이팟에 숨겨두곤 했어요. 그때 제 아이팟을 부모님이 보셨다면 기절하셨을 거예요. 유일한 탈출구는 한국 가요였어요. 부모님은 한국인의 정체성과 언어를 유지하길 바라셨기 때문에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원더걸스, 브라운아이드걸스 같은 한국 음악이나 한국 드라마는 집에서 틀어놓아도 크게 혼내지 않으셨거든요. 그 덕에 살아남을 수 있었죠."

대학 졸업 후 그는 낮에는 화장품 브랜드 세포라(Sephora)를 최대 고객사로 둔 맞춤형 패키징 회사에서 마케팅·브랜드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밤에는 스튜디오를 오가는 '아시아계 한나 몬타나'의 삶을 살았다. 회사 사람들은 그가 음악을 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으나, 텍사스 포트워스 출장길에서 한 팬이 대표에게 "레이 아미가 여기 있다"고 그의 사진을 들이밀며 정체가 탄로 났다. 그렇게 1년 남짓 이어진 낮과 밤의 분열은 그가 정식 레이블 계약을 맺고 회사를 그만두면서 비로소 마침표를 찍었다.

가족을 구원한 음악…피어난 치유

[LA=AP/뉴시스] 레이 아미(Rei Ami)

[LA=AP/뉴시스] 레이 아미(Rei Ami)

데뷔 초, 부모와의 갈등이 점차 커졌다. 딸이 대학 교육을 받고 번듯한 직장까지 다니는 상태에서 음악이라는 불확실한 길로 뛰어드는 것을 부모는 용납하지 못했다. 첫 싱글과 뮤직비디오를 낼 당시, 레이 아미는 소셜 미디어와 포털 사이트에서 부모의 계정을 모조리 차단했다.

"발표 당일 퇴근해 집에 돌아왔더니 어머니가 제 뮤직비디오를 틀어놓고 '이게 뭐니?'라고 물으시더군요. 저는 '엄마 딸이지. 이걸 못 알아보면 내 엄마가 아니야'라고 맞받아쳤어요. 그때 마침 한국에서 고모가 와 계셨어요. 저희 고모는 불같고 솔직하며 음악적 재능이 넘쳐 어릴 적부터 저와 닮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분이에요. 둘 다 체구는 작지만 목소리는 크고 말도 안 되는 소리는 절대 못 참는 성격이죠. 고모가 부모님의 극심한 반대와 제가 음반사 미팅을 다니는 과정을 옆에서 다 지켜보시더니 부모님께 한마디 던지셨어요. '애가 대학도 멀쩡히 나왔고 직장도 잘 다니고 있잖니. 게다가 번듯한 레이블들과 합법적으로 일하고 있는데, 얘가 무언가 잘하고 있는 거다. 남한테 피해 주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걸 해내고 있으니 내버려 두고 응원해 줘라.' 고모의 그 단호한 지지 덕분에 부모님도 결국 마음을 여셨죠."

음악은 레이 아미의 첫사랑이자 그가 온전히 충성을 바치는 대상이었다. "절 사랑한다면 제게 치료제이자 약이나 다름없는 음악을 가로막아선 안 된다고 생각했죠. 그만큼 제겐 물러설 수 없는 전부였으니까요. 하지만 부모님은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셨어요.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기꺼이 대화를 나누고 갈등을 함께 풀어나가기 위해 자신을 변화시킨다는 '사랑의 새로운 기준'을 세워주신 거죠. 그 태도는 이후 제 모든 인간관계와 비즈니스의 기준이 됐습니다."

'케데헌'의 글로벌 성공 이후 그는 열여섯 살 때 자신과 했던 약속, 즉 부모의 주택담보대출(모기지)을 갚아주겠다는 다짐을 마침내 지켜냈다.

"부모님 집 대출금을 다 갚아드렸으니 이젠 절 응원하지 않으실 수가 없죠(웃음). 지금은 제가 옷을 파격적으로 입든 미국 방송에서 거칠게 욕을 하든, 어머니는 늘 '밥은 잘 챙겨 먹었니, 잠은 편히 자니'라며 따뜻한 안부를 물어보세요. 가족을 파탄 낼 줄 알았던 음악이라는 커리어가 역설적으로 우리 가족의 결핍을 치유하고 하나로 묶어준 매개가 된 거예요. 살면서 지금처럼 가족과 깊은 유대감을 느껴본 적이 없어요. 완벽하게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로 찾아온 아름다운 순간이죠."
[LA=AP/뉴시스] 헌트릭스

[LA=AP/뉴시스] 헌트릭스

잿더미의 불사조, '쉬.(shhh.)'의 분노에서 '투 라우드'의 햇살로

예술가의 작품은 필연적으로 그가 지나온 생의 좌표를 투영한다. 2023년 발표했던 솔로 EP '쉬.(shhh.)'가 세상과 업계를 향한 서슬 퍼런 분노로 들끓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신예 아티스트로서 겪어야 했던 배신과 좌절, 다음 달 청구서를 걱정해야 했던 생활고가 그를 암흑 속으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분노라는 건 사실 해결되지 않은 고통과 슬픔의 부산물일 뿐이에요. '케데헌'에 합류해 훌륭한 스튜디오에서 일등석을 타고 날아가 녹음하고, 제 노력이 마침내 온당하게 인정받는 과정을 겪으며 지난 시절의 상처가 씻은 듯 치유됐어요. 무엇보다 이재, 오드리 누나라는 동료들과 함께 혼돈 속에서 깊은 자매애를 나누며 태어나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수준의 기쁨과 감사를 배웠죠. 사실 제 본질은 무섭고 화난 사람이 아니에요. 제 내면 깊은 곳에는 햇살처럼 다채롭고 밝고 다정한 아이가 살고 있거든요. 팬들도 저를 '햇살'이라 불러주시고요. 이제 그 본모습을 세상에 보여줄 때가 됐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터져 나온 곡이 '투 라우드'예요."

'투 라우드'는 경쾌한 펑크 팝 사운드 위에 자신의 존재를 투명하게 긍정하는 찬가다.

"제 앨범은 잿더미에서 되살아난 불사조의 여정이에요. 사람들은 보통 화려하게 반짝이는 최종적인 성공의 결과물만 보고 싶어 하잖아요. 그 뒤에 흘린 피와 땀, 눈물, 거친 고통은 들여다보려 하지 않죠. 하지만 제 음악은 지금의 빛남으로 저를 이끌어준 그 추하고, 지저분하고, 고통스러웠던 여정에 관한 이야기예요. 지금은 빛나고 있지만, 처음부터 빛났던 건 아니니까요."
[서울=뉴시스] 레이 아미. (사진 = 유니버설뮤직 코리아 제공) 2026.10.22.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레이 아미. (사진 = 유니버설뮤직 코리아 제공) 2026.10.22.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김밥의 설움에서 메이시스의 떼창으로…'이사라 예은'의 긍지

수많은 트로피와 시상식 무대 중 그에게 가장 깊은 울림을 준 순간은 오스카나 그래미가 아닌, '메이시스 추수감사절 퍼레이드(Macy's Thanksgiving Day Parade)'였다.

"이민자 가정에게 추수감사절 퍼레이드는 문화적으로 아주 각별해요. 매년 식탁 위에 구운 칠면조와 함께 김치, 김치찌개, 스터핑을 한데 올려두고 온 가족이 챙겨보던 방송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무대에 서서 노래를 부르는데, 인이어 너머로 비한국인 아이들이 한국어 가사를 또렷하게 떼창하는 소리가 엄청난 음량으로 들려왔어요. 어릴 적 학교에 김밥을 싸갔다가 친구들에게 놀림당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이제는 미국 아이들이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하고 김밥을 찾아 먹는 시대가 된 거잖아요. '이건 단순한 영화가 아니라 세계적인 문화 현상이구나' 실감하며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그는 이번 싱글 크레디트에 자신의 한국 본명인 '이사라 예은(Sarah Yeeun Lee)'을 새겨 넣었다. 유년 시절 어머니에게 혼날 때나 불리던 이름 '예은'은 이제 그가 가장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예술적 낙관(落款)이 됐다.

"그 이름에는 제 모든 역사와 뿌리가 담겨 있어요. 제 가장 훌륭한 면모들은 제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 믿고, 이 나라와 부모님의 헌신에 영원히 빚을 지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희생이 없었다면 저는 이 자리에 설 수도, '케데헌' 오디션을 볼 배짱조차 부리지 못했을 거예요. 그렇기에 한국적인 유산과 가치를 음악과 삶의 중심에 두는 것은 제게 선택이 아닌 사명입니다."
[서울=뉴시스] 레이 아미. (사진 = 유니버설뮤직 코리아 제공) 2026.10.22.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레이 아미. (사진 = 유니버설뮤직 코리아 제공) 2026.10.22.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헌트릭스라는 든든한 울타리를 벗어나 다시 홀로 마이크를 쥐었을 때, 그는 미국 NBC '아메리카 갓 탤런트'와 WNBA 하프타임 쇼 무대 뒤편에서 극심한 공포를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스튜디오에서 다시 거침없이 소리를 지르고 위스키 한잔을 털어 넣으며 그는 본연의 야성을 되찾았다.

이제 그의 시선은 손에 잡히는 트로피 너머를 향하고 있다. 바베이도스 출신 팝스타 리애나처럼 패션과 사업, 음악을 아우르는 아이콘을 꿈꾸면서도, 그는 "상이나 기록은 돈으로 살 수도 있는 물질적인 성과일 뿐"이라며 "진짜 중요한 것은 멘털을 지키고, 현재에 머물며, 꾸준히 감사를 표현하는 일"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내면의 중심이 바로 서야만 가장 온전하고 질 높은 음악이 흘러나올 수 있다는 깨달음이다.

키는 크지 않지만 그의 존재감은 결코 작지 않다. 방 안에 들어서는 순간 공간 전체를 환하게 밝히는 그 눈부신 소음(Loudness)은, 억압과 결핍을 통과해 마침내 자기 자신과 온전히 화해한 자만이 터뜨릴 수 있는 해방의 다른 이름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