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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몬스터 '디저브'와 YG의 뚝심…챌린지 범람 속 택한 팝 발라드 정공법

등록 2026.10.24 10:26:49

파리타의 맑은 공허부터 아현의 폭발적 고음까지

멤버별 개성의 유기적 결속

음의 높낮이 아닌 감정선 따라 직조한 화음

3분10초 꽉 채운 정직한 가창력

[서울=뉴시스] 베이비몬스터. (사진 = YG엔터테인먼트·멜론 매거진 제공) 2026.10.2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베이비몬스터. (사진 = YG엔터테인먼트·멜론 매거진 제공) 2026.10.2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음악이 찰나의 시각적 자극과 도파민으로 소비되는 시대, 역설적으로 시간을 멈춰 세우는 것은 고전적인 감정의 부피다.

그룹 '베이비몬스터'(BABYMONSTER·베몬)가 지난 23일 발표한 새 디지털 싱글 '디저브(DESERVE)'는 유행이라는 거센 관성에 편승하지 않겠다는 결기 어린 선언처럼 다가온다. 숏폼 플랫폼을 겨냥한 2분 안팎의 양산형 챌린지 음악이 횡행하는 K-팝 신의 조류를 거스르고, 3분10초라는 온전한 러닝타임 속에서 기승전결의 드라마를 정직하게 복원해 냈다. 유행을 따르지 않고 조금 다른 문법을 고집한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의 뚝심이 빚어낸 결실이다.

속도를 늦추어 증폭된 진폭…YG 발라드 계보의 서정적 계승

'디저브'는 서정적인 신스 선율과 아련한 레트로 무드를 씨줄과 날줄 삼아 직조한 팝 발라드다. 베이비몬스터는 지난 여름 '슈가 허니 아이스 티(SUGAR HONEY ICE TEA)'를 통해 무대를 뒤흔들던 역동적 퍼포먼스를 잠시 내려놓고, 쌀쌀한 가을밤의 공기처럼 차분히 가라앉은 내면의 풍경을 응시한다.

느린 템포 속에서 도리어 가장 강렬한 에너지가 터져 나온다는 역설은 과거 YG의 찬란했던 유산들을 자연스럽게 소환한다. 투애니원(2NE1)의 '그리워해요'와 '론리(Lonely)', 빅뱅의 '블루(BLUE)'가 증명했던 특유의 애잔함과 서정적 낙차가 베이비몬스터의 호흡을 통해 올해 새로운 질감으로 다시 태어났다.

노랫말이 품은 태도 역시 깊은 울림을 준다. "겨울을 덮어준 너의 봄 / 여름 바람이 돼주던 너의 손"이라며 찬란했던 시절을 회상하면서도, 비 내리는 현실 속에서 홀로 우산 없이 서 있는 결핍을 온전히 받아들인다. "사랑은 수수께끼가 아니어야 한다(love ain't supposed to be a riddle)"는 뼈아픈 자각, 그리고 상대가 더 나은 사랑을 받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유 디저브 베터(You deserve better)"라는 체념 어린 축복은 타인을 향한 가장 성숙한 윤리를 담고 있다. 누군가를 제대로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그의 온전한 행복을 위해 나의 자리를 비워내는 일임을, 노래는 담담하고도 아프게 고백한다.

목소리의 물성으로 증명한 보컬 스펙트럼…애틋한 감정선 품은 미장센

[서울=뉴시스] 베이비몬스터. (사진 = YG엔터테인먼트·멜론 매거진 제공) 2026.10.24.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 베이비몬스터. (사진 = YG엔터테인먼트·멜론 매거진 제공) 2026.10.24.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이 곡의 가장 결정적인 미덕은 멤버들의 다채로운 목소리가 지닌 고유한 물성(物性)이다. 화려한 비트의 장막을 걷어내자 육성이 가진 본연의 힘이 더 또렷이 드러난다. 도입부의 잔잔하고 절제된 호흡부터 후렴과 브리지로 치달으며 폭발하는 감정의 격랑까지, 멤버들은 음의 높낮이에 함몰되지 않고 감정의 굴곡을 섬세하게 어루만진다.

파리타의 맑고 몽환적인 음색은 이별의 공허를 쓸쓸하게 채우고, 아현의 단단하면서도 쨍하게 뻗어나가는 고음은 억눌렀던 슬픔의 응어리를 일순간에 해체한다. 여기에 로라와 치키타의 따스하고 짙은 중저음, 루카와 아사가 새겨 넣는 유려하고 감각적인 래핑과 보컬의 조화는 곡의 드라마틱한 서사에 입체적인 숨결을 불어넣는다. 멤버들의 화음과 번갈아 터지는 고음의 연쇄는 베이비몬스터가 퍼포먼스형 걸그룹에 머무르지 않고, 감정의 심연을 다룰 줄 아는 보컬리스트 집단임을 명징하게 웅변한다.

공개된 뮤직비디오 역시 이러한 곡의 정서를 탁월하게 시각화했다. 화려한 미장센 속에서도 과장된 서사로 감정을 전시하기보다, 인물들의 눈빛과 공간의 여백을 통해 애틋한 잔상을 극대화한다. 폭발하는 멜로디의 정점과 멤버들의 고조된 감정선이 감각적인 영상미와 맞물리며 시각과 청각의 완벽한 합일을 이뤄낸다.

음악은 때로 화려한 기교보다 정직한 태도로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 베이비몬스터는 '디저브'를 통해 외부의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들의 뿌리인 실력과 음악 그 자체로 돌아가는 첩경(捷徑)을 택했다.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계절의 문턱, 이들이 띄워 올린 소리의 파동은 외부의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제 호흡을 지켜낸 자들만이 건넬 수 있는 정경(情景)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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