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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의 비밀' 드라마의 진실, 돈·권력 신분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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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1-04-17 12:22:46  |  수정 2016-12-27 22: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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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문원의 문화비평

 이른바 ‘막장드라마’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출생의 비밀’ 코드가 브라운관을 가득 메웠다.

 자기 부모 똑바로 알고 있는 등장인물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막장드라마 열풍이 사회문제화 되던 2008~2009년 당시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당연히 각종 미디어는 이 같은 현상을 비판하고 나섰다.  

 머니투데이 4월1일자 기사 ‘드라마 속 스타일?…출생의 비밀이 필요해’는 근래 쏟아져 나온 출생의 비밀 드라마들을 가장 자세히 분석했다. 기사가 언급한 드라마는 얼마 전 종영한 MBC 주말드라마 ‘욕망의 불꽃’ 외 방송사별로 KBS1 일일드라마 ‘웃어라 동해야’, KBS2 수목드라마 ‘가시나무 새’, MBC 월화드라마 ‘짝패’, 수목드라마 ‘로열 패밀리’, 주말드라마 ‘반짝반짝 빛나는’, 일일시트콤 ‘몽땅 내사랑’, SBS 일일드라마 ‘호박꽃 순정’, 수목드라마 ‘49일’, 주말드라마 ‘신기생뎐’ 등 무려 10편이다. 이밖에 기사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KBS2 월화드라마 ‘강력반’에도 출생의 비밀 코드는 등장한다.  

 한 마디로 현 시점 드라마 속 출생의 비밀은 방송3사, KBS의 경우 1채널과 2채널을 모두 섭렵하고, 일일, 월화, 수목, 주말 등 드라마 방영 모든 요일을 휩쓸었으며, 정극 드라마는 물론 시트콤 장르에까지 뻗어있다는 얘기다. 이쯤 되면 열풍이 아니라 광풍에 가깝다.  

 어쩌다 이런 현상이 일어난 걸까. 그 원인을 가장 설득력 있게 풀어낸 것은 헤럴드경제 4월5일자 기사 ‘드라마속 출생 비밀은 필요악?’이다. 기사는 “요즘 드라마를 보면 가족찾기가 한창이다. 뒤바뀐 형제와 부모를 찾는 줄거리가 단골손님이며 이것으로 갈등 포인트를 만들어낸다. 원래 출생의 비밀은 재벌가와 함께 한국 드라마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2대 구성요소였다”면서도 “하지만 요즘 핏줄 캐기는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출생의 비밀 코드가 ‘왜 지금’ 난립하고 있는지 원인을 제시한다.  

 기사는 “운명이 엇갈리는 출생의 비밀은 드라마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는 큰 무기다. 막판 반전용으로도 그만”이라면서도 “출생의 비밀은 인생 역전을 강조하는 기제로도 쓰이고 있다. 한순간에 극과 극의 인생으로 변하는 ‘로또 인생’을 그린다는 말이다. 조그만 빵집에서 일하는 종업원이 알고 보니 재벌집 아들이라는 사실은 ‘운명론’과 ‘결과주의’를 반영한다. 현실이 힘들수록 사람들은 이런 운명론적 판타지에 기대게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 마디로, 지금의 한국사회 그 자체가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장기화 된 경제 불황으로 희망적 비전을 찾기 힘들고 계층 간 이동에도 동맥경화 현상이 일어나면서, 출생의 비밀이라는 운명적 기회 외에는 현실을 탈출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퍼져나가고 있다는 것. 실제로 대다수 출생의 비밀 드라마들은 비밀이 밝혀지며 경제계급이 뒤바뀐다는 설정을 차용하고 있어 이 같은 분석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서민층끼리 서로 아이가 뒤바뀌었다거나,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청년의 친부 역시 같은 중산계급이라는 설정은 보기 드물다는 얘기다.  

 여기서부턴 좀 더 상황을 심화해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일단 해외사례들을 생각해보자. 일본도 사실상 경제 상황은 한국과 매한가지다. 오히려 경제 불황의 뿌리가 깊다. 1990년 버블 붕괴로 시작됐던 경제 불황은 곧 ‘잃어버린 10년’으로 이어졌다. 이후로도 딱히 회생 기미가 보이지 않고 ‘고용 없는 성장’ 구도가 탄생하자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언급도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 ‘잃어버린 20년’ 동안 나온 TV드라마들은 한국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일단 출생의 비밀 코드를 찾아보기 힘들다. 대략 이 시기 출생의 비밀 코드 대표작들만 꼽아보자면 ‘하늘에서 내리는 1억개의 별’ ‘장미 없는 꽃집’ ‘모래 그릇’ ‘인간의 증명’ ‘화려한 일족’ 정도다. 그런데 이들조차도 한국드라마와는 차이가 있다. 출생의 비밀이 등장하긴 해도 그를 통해 경제계급이 뒤바뀐다는 설정은 거의 없다. 사랑하는 남녀가 사실은 친인척이라거나, 아버지인 줄 알았던 사람이 사실은 아버지의 친구라거나 하는 식이다. 그야말로 ‘출생의 비밀’일 뿐이다. 계급적 요소가 없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1980년대 ‘가이딩 라이트’ ‘제네럴 호스피털’ 등의 히트로 자리를 잡은 낮 시간대 소프오페라는, 한국으로 치면 막장드라마다. 한국 막장드라마에 등장하는 대부분 코드들이 여기서도 등장한다. 출생의 비밀 코드도 만만찮게 차용된다. 그런데 경제 호황기건 2008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불거진 경제 불황 상황이건 바뀌지 않는 부분이 있다. 미국서도 출생의 비밀은 출생의 비밀일 뿐이라는 것이다. 딱히 계급 이동의 ‘로또’처럼 등장하질 않는다. 애초 주인공들 자체가 전문직 중심 부유층이 대부분이어서 계급 이동이라는 개념 자체가 잘 적용되질 않는다.  

 한 마디로 아무리 함께 경제 불황을 겪고 있더라도, 그리고 경제 불황과 출생의 비밀 코드가 궁합이 잘 맞는다 하더라도, 해외에선 대부분 위 헤럴드경제 기사가 지적했듯 “막판 반전용으로도 그만”이라는 정도로만 출생의 비밀 코드를 차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는 곧 계급갈등 상황을 꾸며주기 위한 장치로서만 출생의 비밀 코드를 차용하고 있는 곳은 한국뿐이라는 얘기도 된다.  

 이쯤부턴 단순히 출생의 비밀 코드 만연만을 비판할 게 아니다. 현 시점 한국드라마 전체의 흐름이 문제다. 먼저 2008년 이후 꾸준히 사회문제로 오르내리는 막장드라마부터 재점검해보자.  

 흔히 막장드라마를 구성한다는 각종 코드들, 불륜, 고부갈등, 기업범죄 등도 모두 출생의 비밀처럼 그 자체로 기능하는 코드들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모두 계급갈등 상황을 꾸며주기 위한 장치들에 불과하다. 고부갈등은 기본적으로 서민층 며느리와 부유층 시어머니 사이에서 일어나고, 기업범죄 역시 서민층 직원이 부유층 오너집안의 자산을 빼돌리려 하는 음모일 뿐이다. 불륜에도 계급의 문제가 발동하기 일쑤다. 결국 막장드라마는 사실상 ‘계급갈등 드라마’였다는 것이다. 사적인, 그리고 공적인 모든 부분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들을 모조리 계급적 차원으로 집약시켜 놓은 형태다.  

 한 마디로, 몇몇 코드 남용이나 자극적 설정 등이 현 시점 한국드라마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드라마 전체가 계급갈등 설정에 종속돼가는 현실이 문제라는 것이다.  

 물론 한국드라마의 계급갈등 점철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한국은 본래 계급갈등의 뿌리가 깊은 문화권이다. ‘격차’에 민감히 반응하는 체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 호황기건 불황기건 언제나 갈등은 존재했고, 대중정서 흐름을 가장 잘 반영한다는 TV드라마 장르에서도 이 같은 점은 충분히 방증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과하다. 대중의 관심을 반영해주는 역할 정도에서 그치질 않는다. 오히려 대중을 계속해서 계급갈등의 수렁으로 몰아넣고 있는 형국이다. 언급했듯 출생의 비밀 코드만 해도 방송3사, 4채널에 걸쳐 일일, 월화, 수목, 주말까지 모두 점령한 상태다. 전체 계급 갈등 코드로 넓혀보면 아침, 저녁 할 것 없이 풀타임으로 진행된다. 그러다보니 계급 갈등 설정은 이제 ‘당연한 것’이 됐고, 그 안에서 ‘수위’에 따라 어떤 드라마는 ‘착한 드라마’라고까지 명명되는 실정이다. SBS ‘찬란한 유산’ 등이 예다.

 물론 그렇다고 여기에 물리적인 제재를 가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표현의 자유란 으레 그런 것이다. 심지어 ‘업계의 자정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상투적 주문도 사실상 무의미하다. 대중문화상품은 ‘팔리면 되는 것’이다. 잘 팔리는 호떡집에 ‘자정노력’ 운운해봤자 먹히지도 않는다.  

 다만 ‘그것 외에도 팔리는 길이 있다’는 점만은 모두 통감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계급갈등 묘사라는 ‘왕도(王道)’에서 벗어나는 게 더 잘 팔 수 있는 비결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지금 당장 만연해있는 출생의 비밀 코드 계급갈등 드라마들의 성적표를 되돌아보자. ‘욕망의 불꽃’이 종영된 뒤로는 일일드라마 ‘웃어라 동해야’ 정도 외 대부분 낙제점에 가깝다. 시청률 20%를 넘기는 드라마는 단 한 편도 없고, 15%대를 넘기는 드라마도 찾아보기 힘들다. 한 자릿수 시청률이 오히려 많다.  

 아무리 한국대중이 계급갈등에 심취해있다 해도, 역시 과하면 안 하니만 못하다는 것이다. 그 치열했던 1980년대 계급갈등의 현장에서도 여전히 ‘보통사람들’ ‘한지붕 세가족’ 같은 계급갈등 프리 드라마들도 성공을 거뒀다. 1990년대 들어와서도 ‘짝’ ‘남자셋 여자셋’ 등이 대성공했다. 결국은 ‘균형’이라는 얘기다. 아무리 잘 되는 ‘왕도(王道)’라도 한계가 있다. 한국 대중은 그저 다른 문화권에 비해 ‘좀 더’ 계급갈등 상황에 민감한 것뿐이다. 평생 그것만 생각하며 사는 건 아니다. 대중정서를 반영한다는 건 ‘균형’을 잡아줘야 한다는 의미다.  

 어찌됐건 업계를 움직이는 건 역시 결과다. 이번 2011년 1분기에 한 번 된통 당했으니, 앞으로 지금처럼 출생의 비밀, 계급갈등 코드에만 집착할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정도는 더 언급할 필요가 있다.  

 해외에서도 출생의 비밀 코드를 계급이동 상황과 정확히 맞물려 묘사하는 대중문화 콘텐츠들이 존재하긴 한다. 그리고 꽤 히트도 한다. 특히 할리우드에서 이런 영화들을 종종 내놓는데, 2001년작 ‘프린세스 다이어리’와 2004년의 그 속편, 그리고 2003년작 ‘왓 어 걸 원츠’ 등이 대표적이다. 알지 못했던 친부가 거부이자 유명 인사였다든가, 심지어 한 나라의 ‘황태자’였다는 내용들이다.  

 쉽게 알 수 있듯, 위 영화들은 10대 소녀들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아 흥행에 성공했다. 10대 소녀들이야말로 이 같은 출생의 비밀 코드, 계급 이동 코드를 즐긴다. 생각해보면 굳이 출생의 비밀을 동원하진 않았어도 계급 갈등과 그를 통한 계급 이동 상황을 묘사했던 일본드라마 ‘꽃보다 남자’도 10대 시청층을 바탕으로 대히트, 한국과 대만에서도 각각 리메이크돼 연속 성공을 거둔 바 있다.  

 향후의 계급갈등 드라마들은 바로 이 계층을 타깃으로 변신을 해볼 필요가 있다. 훨씬 산뜻하게, 그리고 훨씬 감상적으로 접근해 막장드라마의 우중충하고 퇴폐적인 이미지를 벗어낼 필요도 있다. 같은 계급갈등을 다루더라도, 이를 가장 열성적으로 소비하는 중장년 여성층만 계속 쥐어짤 생각 말고 새로운 소비계층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발상전환이야말로 모든 대중문화산업 흐름에서 진정한 ‘왕도(王道)’다.

 대중문화평론가 fletch@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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