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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섹스·인종차별·욕설…그럼에도 힐링, 뮤지컬 '애비뉴Q'

등록 2013.08.25 06:41:00수정 2016.12.28 07:5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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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무대 위에서 격렬한 베드신이 벌어진다. 체위는 다양하고, 남녀가 주고받는 말도 노골적이다. 한국의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로서는 매우 이례적이다.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무대 위에서 격렬한 베드신이 벌어진다. 체위는 다양하고, 남녀가 주고받는 말도 노골적이다. 한국의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로서는 매우 이례적이다.

 그런데, 선정적이기는커녕 유쾌하다. 객석의 남녀노소는 깔깔거린다. 정사장면의 주인공은 배우들이 손을 사용해 움직이는 인형 '퍼핏'이다. 1969년 방송을 시작한 이래 40년 넘게 인기를 끌고 있는 미국 PBS TV 유아프로그램으로 미국의 '뽀로로'격인 '세서미 스트리트'의 인형인 퍼핏들이 성장했다.  

 브로드웨이 히트 뮤지컬 '애비뉴 Q' 첫 내한공연은 이 퍼핏들의 입과 행동을 통해 누구나 품고 있지만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은밀한 고민과 본성을 수면 위로 끌어낸 것이다. 청년실업과 직장생활 문제, 섹스와 사랑에 관한 보편적인 문제부터 동성애, 포르노 중독 등 입에 담기 불편한 사회문제까지 그대로 들춰낸 풍자와 해학이 돋보인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남북을 가로지르는 길 '애비뉴'에서 유래한 '애비뉴Q'는 맨해튼 중심가를 A로 정했을 때 Q정도로 거리가 아주 멀리 떨어진 가상의 공간으로 땅값이 싼 지역이다.

 대학교를 갓 졸업한 '프린스턴'이 이곳으로 이사온 뒤 귀여운 유치원 보조교사 '케이트 몬스터', 글래머 클럽 가수 '루시', 공화당 당원이자 월스트리트 투자전문가 '로드'와 그의 룸메이트인 빈대 '니키', 인터넷 포르노에 중독된 '트레키 몬스터', 코미디언 지망생 '브라이언'과 약혼녀 '크리스마스 이브', 왕년의 아역스타인 건물관리자 '게리 콜맨' 등 활기차고 별난 이웃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일상을 전한다.

 이 뮤지컬을 관람하기 전, 크게 두 가지를 우려했다. 퍼핏을 이용한 성인용 뮤지컬이 우리나라에서 가능할 것인가, 미국의 정서가 과연 한국인들에게도 통할 것인가. 

 우선, 퍼핏을 이용함에도 제대로 된 성인뮤지컬을 보여준다. 공연기획사 설앤컴퍼니(대표 설도윤)는 이 작품을 만 15세 이상 관람 가로 명기하고 있다. 퍼핏이 나온다고 아이와 함께 온 부모가 뒤늦게 환불해달라는 해프닝이 빚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나아가 "섹스, 동성애, 포르노 등의 문제들을 당황스러울만큼 뻔뻔하게 다루고 있어 만 18세 이상 관람"을 권장한다.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무대 위에서 격렬한 베드신이 벌어진다. 체위는 다양하고, 남녀가 주고받는 말도 노골적이다. 한국의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로서는 매우 이례적이다.  realpaper7@newsis.com

 '애비뉴Q'의 퍼핏들은 "여친을 임신시키고 싶을 때 역시 중국산 콘돔"이라고 말하며, 남의 고통을 기뻐한다는 뜻의 독일어 '샤덴프로이데'를 아무렇지도 않게 들먹이는 등 섹스와 성적인 농담, 인종·동성애자 비하, 욕설 등을 수시로 내뱉는다. 그럼에도 불쾌하거나 위화감이 들지 않는다. 사람이 아닌 퍼핏이 인간의 감정을 대신 까발려주기 때문이다. 캐릭터에 직접적으로 투영되기보다는 약간의 거리감을 두며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배우 7명이 조종하는 총 9개의 인형은 몸값만 해도 2억원이 넘는다. 뮤지컬 스타들처럼 스타일리스트가 따라붙는 등 최상의 컨디션 유지를 위해 관리를 받는다. 세세한 감정 표현이 퍼핏의 얼굴에 드러나지는 않으나 각 캐릭터의 성향은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프린스턴과 로드, 트레키, 니키 등 4가지 퍼핏 캐릭터를 소화하는 영국의 뮤지컬배우 니콜러스 던컨(24), 솔메이트를 찾는 순진한 유치원 교사 케이트와 남자와 섹스에만 관심 있는 음탕한 클럽가수 루시를 동시에 맡은 영국의 뮤지컬배우 칼리 앤더슨(24) 등 배우들의 기량도 출중하다. 특히, 퍼핏을 세밀하게 조종하면서도 캐릭터와 혼연일체되는 표정과 동작이 인상적이다.

 현대인의 보편적인 문제를 다룬만큼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도 큰 무리가 없다. 뮤지컬 '올슉업' 등의 연출부를 거쳐 뮤지컬 '스팸어랏' 등의 번역으로 주목 받은 김수빈의 번역 자막은 일품이다. 무대 양쪽 크고 작은 총 4개의 스크린에 "열라 구리다" "나 기분 급 좋아짐" "우훗뚜왕" 등 영어의 속어를 우리말의 속어로 적절하게 옮긴 자막이 웃음보를 터뜨린다. 일본계 미국인인 크리스마스 이브가 쓰는 영어를 옮길 때는 문장 말미에 "데스" "스므니까"를 붙이는 센스도 발휘한다.

 한국 관객과 소통하려는 고민의 흔적도 엿보인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29만원'을 비롯해 북의 김정은, MBC TV '나 혼자 산다'의 노홍철, '애비뉴Q'가 공연 중인 샤롯데시어터 인근 롯데월드, 곧 개막하는 뮤지컬 '위키드' 한국어 버전 조기예매권 등에 대한 언급이 소소한 즐거움을 안긴다. '위키드'에 이어 뮤지컬평론가인 원종원 교수(44·순천향대 신문방송학)가 감수와 고문을 맡아 신뢰감을 더했다.  

 뮤지컬의 마지막, 프린스턴이 케이트 몬스터를 위해 몬테소리를 패러디한 몬스테소리학교를 세우면서 극중 갈등들이 마무리된다. 이 과정에서 서로에게 베풀라며 타협과 양보를 내세우기도 하지만, 몇 센트를 기부해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된다는 황당한 설정이 오히려 캐릭터들의 쾌활함을 돋보이게 한다.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무대 위에서 격렬한 베드신이 벌어진다. 체위는 다양하고, 남녀가 주고받는 말도 노골적이다. 한국의 무대에 오르는 뮤지컬로서는 매우 이례적이다.  realpaper7@newsis.com

 억눌렸던 감정과 욕망이 분출하는 쾌감 속에 110분 동안 즐거워하다보면, 힐링마저 될 정도다. 한번쯤 모든 것에 솔직해짐으로써 숨 한 번 쉬고, 주변을 돌아보고픈 때가 있다. '애비뉴Q'는 그렇게 섹시하고 통렬하면서도 지적인 기발함으로 ‘본의 아니게’ 치유뮤지컬로 승화하는 묘수를 번뜩인다.

 뮤지컬을 여는 '엿 같은 내 인생'을 비롯해 '인터넷은 야동용', '스페셜' '집 밖에 진짜 인생이 있다' 등 즐거우면서도 감미로운 뮤지컬 넘버도 특기해야 한다. 2004년 토니상에서 '위키드'을 누르고 최고작품상, 극본상, 음악상을 수상하며 그랜드슬램을 이룬 것을 납득할 수 있다.

 '북 오브 모르몬'으로 2011년 토니상과 브로드웨이를 휩쓴 '브로드웨이의 악동콤비' 로버트 로페스와 제프 막스의 작품이다. 2003년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뒤 72회 만에 브로드웨이에 입성했다.

 10월6일까지 서울 잠실 샤롯데시어터에서 볼 수 있다. 설앤컴퍼니와 롯데엔터테인먼트, CJ E&M, GWB엔터테인먼트가 뭉쳤다. 5만~13만원. 1577-3363

 섹스·인종비하·욕설난무…그럼에도 힐링 뮤지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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