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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생각]지방분권, 왜? 어떻게?

등록 2019.07.26 14: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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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이선화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뉴시스】이선화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뉴시스】 내가 사는 지역의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 의원을 직접 선출하는 민선 지방정부 시대가 시작된지 거의 4반세기가 흘렀다.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투표율이 68.4%에 달했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출범 초기 국민들이 지방자치시대에 거는 기대가 컸음을 알 수 있다.

아쉽게도 그 이후 투표율은 대부분 50%대에 그쳤으며 초대 투표율은 역대 최고치로 남아 있다. 지방자치의 제도와 조직이 어느 정도 성숙단계에 도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지방분권의 가치는 일반 대중에게는 그리 환대를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구성원의 일탈 행위가 국민들의 지방정부 신뢰를 낮추는 1차적 원인이 되었음은 분명하다. 이와 더불어 지방분권이 되면 무엇이 좋아지는지가 직관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 국민들의 수용성과 지지를 충분히 얻지 못하는 보다 근본적 장벽을 제공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민주주의가, 근대 서구사회가 쟁취한 자연권 개념과 더불어 발전하면서 국가의 통치원리로서 당위적 가치로 받아들여지는 것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민주주의 원리와 달리 지방분권은 그 자체로 반박 불가능한 가치로 당연시하기보다는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국민들을 설득해야 할 기능적 개념으로 보인다.

비록 폐기되기는 했으나 문재인 정부는 지난해 "대한민국은 지방분권국가를 지향한다"(정부개헌안 제1조 3항)라고 선언한 지방분권형 개헌안을 제출한 바 있다. 그러나 지방분권형 개헌에 대해 아래로부터의 요구와 호응이 충분하였는지, 분권형 개헌의 가치에 대해 국민들을 충분히 설득하였는지는 미지수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지방분권을 지향해야 하는가? 한 가지 중요한 답변은 정부부문 효율화에 대한 요구에서 발견된다.

한국은 1960년대 이후 생산요소를 수도권으로 집중시키고 자원배분 권한을 중앙관료집단에 일원화하는 집권적 모형으로 경제를 성장시켜 왔다. 그러나 한국경제가 추격형에서 선도형으로 전환되고 삶의 질 향상에 대한 정책수요가 커짐에 따라 개발주의 시대에 만들어진 정부 형태로 국민들의 다양한 정책 수요에 대응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이 다양한 수준의 정부들이 지역 실정에 맞는 정책을 생산하고 지방정부 간에 또는 중앙과 지방정부 간에 자유로운 정책 경쟁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시장경쟁의 원리는 정부가 제공하는 정책 시장에도 마찬가지로 작동한다. 수요가 다양한 시장에서 비대한 중앙정부가 정책생산을 독점하게 되면 정부 실패의 위험은 커지게 되며 정부 혁신 또한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작은 단위의 지방정부가 새로운 정책과 '작은 혁신'을 실험하고 시장에서 살아남은 정책과 혁신이 다른 지역이나 중앙정부로 확산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방정부의 경우 새로운 실험을 도입하는 데 따른 사회적 합의 비용이나, 실험의 실패에 따른 비용이 중앙정부에 비해 훨씬 적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지방자치 25년의 현실은 위의 설명과는 다르게 전개되었다. 직선제를 통한 정치적 지방자치에도 불구하고 정책에 대한 권한이나 독립성, 자율성의 측면에서 실질적 지방분권의 길은 요원해 보인다.

그 원인으로는 무엇보다도 지방정부가 중앙정부로부터 재정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탓이 주효하다. 중앙정부의 재정적 도움 없이 지역의 살림살이를 감당할 수 있는 보통교부세 불교부단체의 수는 참여정부 시기에 12개였으나 2009년 7개로 오히려 감소하였다. 2018년 역시 불교부단체의 수는 7개에 불과한데 이마저도 모두 수도권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보조금 사업의 증가 역시 독립적 지방재정을 제약한다. 지방정부 재정사용액에서 국고보조사업 지방비부담액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3년 22.4%에서 참여정부와 MB정부를 거치면서 크게 상승하여 2012년에는 36.5%에 달하게 되었다.

재정분권의 명분으로 국세 일부의 지방세 이양이 이루어지고 이에 따라 지방세 비중과 규모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과는 다분히 역설적인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지방정부의 이전재원 의존도 심화는 지방정부의 재정책임성 약화를 가져오며 이는 다시 독립적 정책실험이나 혁신 의지를 약화시키는 원인을 제공한다.

'골고루'를 지향하는 균형발전에 대한 기계적 수용 또한 실질적 지방분권을 어렵게 한다.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은 한국의 지역발전정책이 추구하는 양대 가치이지만 그 이념적 바탕은 결을 달리 한다. 전자가 자치단체의 권한과 책무성, 경쟁을 강조하는 수평지향적 개념인 반면, 후자는 국가적 최소수준, 형평성 추구, 중앙정부 주도형 국가재원 배분에 기초한 개념이다.

우리나라에서 지방분권을 위한 자체세입 확충은 균형발전 개념과 어정쩡하게 결합된 형태로 제도화되어 왔다. 새로운 세목 도입이나 세율 인상을 통한 지방세 총액 확충시에는 언제나 재정격차 완화라는 다른 기능이 부가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어정쩡한 결합이 지방분권에도, 균형발전에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한된 자원을 지방으로 이전하면서 광역과 기초를 포함한 234개 자치단체가 '골고루', '분권 지향적으로' 나누어 먹는 오병이어의 기적은 불가능한 미션이다.

분권을 지향하면서도 균형의 가치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있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정부는 재정자립 지표의 전국 평균치 개선보다는 경제권역별 선두그룹 형성을 지역발전정책의 우선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광역과 기초를 포함한 모든 자치단체에 대해 중앙정부가 이전재원 규모를 결정하고 배분하는 방식의 한계는 이미 목도한 바와 같다. 권역별로 선도하는 자치단체가 지역 거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이 거점지역이 인근 지역을 경제적으로나 재정적으로 먹여 살리는 구심점의 역할을 하는 동학적 과정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러한 선순환 구조야말로 분권을 통한 정부부문 혁신, 분권을 통한 지역발전, 분권을 통한 균형발전을 달성할 수 있는 어렵지만 유일한 해법이 아닐까 한다.

이선화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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