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이유있는 불안의 정신병원행, 영화 ‘테이크 쉘터’

어느날 평범한 한 젊은 가장에게 생생한 악몽과 함께 찾아온 공포와 불안감. 기르던 검둥개에게 팔을 물리고, 낯선 사람의 공격을 받고, 그 낯선 이는 집안으로까지 침범하려 들고, 집안의 가구들이 무중력 상태처럼 떠오르더니 안온한 집안을 뒤흔들어 놓는다. 하늘에서는 검은 새떼의 불길한 비행과 더불어 먹구름 폭풍이 찾아오고, 엔진오일처럼 누런 기름비가 내린다.
건축기술자인 커티스(마이클 섀넌)의 일상은 여느 중산층 미국인과 다를 바 없다. 알뜰한 아내 사만다(제시카 채스테인)가 바느질 솜씨를 발휘해 올린 부수입으로 휴가비를 마련해야할 정도로 매우 풍족하진 않지만, 한적한 동네에 너른 뜰이 딸린 아늑한 집을 소유하고 하루하루 열심히 일을 하며 소중한 가정을 꾸려나간다. 시름이 있다면 중도 청각장애를 안게 된 어린 딸 뿐. 그러나 이 역시 직장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아 수술하면 다시 회복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가운데 커티스가 겪는 공포와 불안은 ‘공황장애’다. 요즘 연예인들도 많이 앓는다고 해서 널리 알려진 이 정신질환은 ‘특별한 이유 없이 예상치 못하게 나타나는 극단적인 불안 증상’을 말한다. 커티스가 꾸는 이런 불길한 꿈들은 별다른 이유가 없어보이지만, 그는 뭐에라도 홀린 듯 무리를 해서 돈을 구해 땅을 파 방공호를 만들고 저장음식과 방독면까지 사들이는 이상행동을 보인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그의 생활은 사실 안정적인 것이 아니었다. 집과 차 두 대 모두 대출로 장만한 것들이라 더 이상의 대출은 집을 담보로해야만 가능한 위험한 것이었고, 사장은 계속 공사기일을 맞춰야한다고 강요하는데, 부실공사가 야기되지 않을까 위태롭다. 이 와중에서커티스는 방공호에 집착하다가 결국 2주분의 봉급만 더 받고 해고되면서 딸의 수술에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할지도 모르는 위기에 처한다. 커티스는 이 불안 증세를 없애기 위해 진정제를 처방받아 먹게 되는데 의료보험의 적용을 받고도 약값은 터무니없이 비싸다. 정신과전문의를 찾아가기에는 경제적 사정이 여의치 않아 무료 상담소를 찾던 그는 결국 아내와 함께 도시의 의사를 찾고, 의사는 장기간의 입원치료를 권한다.

이러한 상황은 표면적으로는 미국발 금융위기의 원인이 됐던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론 사태와 이어진 대규모 실직사태를 연상시킨다. 2007년 발표됐던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식코’에서 보여진 열악한 미국 의료보험 제도도 은근히 투영하고 있다. 자본주의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무얼까, 천재지변보다 더 무서운 것은 경제적 파산 아닐까. 커티스, 그리고 우리를 조금씩 죄어오는 이 불안감의 실체는 신자유주의 경쟁에서 밀려난 중산층의 몰락일지도 모른다.
좀 더 파고들어가보면 기독교적 선지자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자연재해에 대한 위협을 느끼고 방공호를 준비하는 커티스의 행동은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의 변주다. 사실 교회모임 같은 동네사람들의 식사모임에서 커티스의 친구이자 동료인 듀워트(쉬어 위검)가 커티스를 폭행하려 달려드는 것은 꿈의 첫 번째 실현이다. 슬슬 커티스의 망상들이 예지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이때 커티스는 예언자같은 외침을 보여준다. “폭풍우가 몰아치면, 너희는 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다가올 재앙을 홀로만 느낄 수밖에 없는 선각자의 처절한 고독이 묻어나는 몸부림이다. 사실 듀워트는 극 초반 평온한 생활이 지겨워졌는지 별 죄책감없이 스리섬을 시도하려는 등 결국 퇴폐로 멸망한 소돔과 고모라같은 성적 타락을 보여준 인물이다.
불안과 공포감정은 위험상황에 대비해 생존하려는 인간의 선천적 대처능력이기도 하다. 예부터 인간은 좀 더 예민한 감각을 가진 이, 더 나아가 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여겨지는 샤먼의 예지력에 기대왔다. 이성의 시대를 맞아 이들의 역할은 사라졌지만 소수의 이들이 가진 육감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면. 사실 휴거를 주장하는 미친 종교인이나 광신도가 적지 않게 등장해 사회문제화 되기도 하는 현실에서 뜬금없이 세상의 멸망을 외치는 이들이 가야할 곳은 정신병원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신예 감독 제프 니콜스는 두 번째 장편 ‘테이크 쉘터’로 제64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비평가주간대상, 국제비평가협회상, 극작가협회상 등을 받아 3관왕이 됐고 그 외 다수 영화제에서 수상하며 미국의 차세대 거장 자리를 예약했다. 그는 “‘테이크 쉘터’를 쓰는 동안 내게는 확신이 있었다. 그것은 내가 느끼는 삶의 불안감이 전 세계 사람들을 비롯해 많은 미국인들이 처해있는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는 믿음이었다. ‘테이크 쉘터’를 통해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그 공포와 불안에 관해 말하고 싶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관객들 또한 이러한 감정들에 대해 답을 내릴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미국비평가협회상 등 다수의 비평가협회로부터 여우조연상을 받은 제시카 채스테인과 역시 다수의 비평가협회로부터 남우주연상을 받은 마이클 섀넌의 섬세한 감정연기도 언급하지 않고 지나기 어렵다. 시종일관 그들이 처한 상황에서 관객들을 벗어날 수 없도록 만든다. 18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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