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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우주 개척은 '폭발 기록'의 역사…이노스페이스 발사 실패?

등록 2025.12.24 06:30:00수정 2025.12.24 07: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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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우주 개척은 '폭발 기록'의 역사…이노스페이스 발사 실패?

[서울=뉴시스]윤현성 기자 = 민간우주기업 이노스페이스의 발사체 '한빛-나노(HANBIT-Nano)'의 첫 도전이 '아쉬운 실패로 끝났다. 발사 직후 이상이 감지되며 지상 낙하로 임무가 종료됐다. 한국의 첫 민간 상업 발사라는 도전은 다음을 기약하게 됐다.

과학기술 분야를 대하는 여론이 한층 성숙해진 점은 고무적이다. '다음에 다시 잘하면 된다'는 격려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한빛-나노의 실패에 대한 조롱과 비판도 적지 않았다. 특히 이노스페이스가 유튜브를 통해 발사 과정을 생중계했던 만큼 발사 화면 옆 채팅창에는 '돈 아깝게 뭐하는 거냐'는 등 원색적인 비난부터 '기술도 딸리면서 뭐 하러 하냐'는 등의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상장기업인 이노스페이스의 특성상 주가 하락과 관련한 조롱도 있었다. 이 날 발사 실패 직후 이노스페이스 주가는 하한가를 면하지 못했다.

하지만 '승패는 병가지상사'라는 말은 우주개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모든 절차와 과정이 완벽하게 계획대로 이뤄져야 하는 만큼 언제든 실패할 수 있는 것이 로켓 발사다. 우주를 향한 도전에서 실패는 '사건'이 아니라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일 뿐이다. 이번 실패를 두고 나오는 조롱과 비판은 우주 산업의 특수성을 간과한 결과다.

세계 최고의 우주 기업으로 꼽히는 스페이스X의 사례를 보자. 일론 머스크는 거대 로켓 '스타십'이 공중에서 폭발할 때마다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그들에게 실패는 '데이터를 얻기 위한 가장 비싼 수업'이었기 때문이다. 스타십 뿐만이 아니다. 현재 상용화된 '팰컨9'에 앞서 스페이스X는 첫 발사체인 '팰컨1' 발사에서 세 차례나 연속 실패하며 파산 위기까지 몰렸던 과거가 있다. 현재 독보적인 기술력을 자랑하는 그들조차 발사 성공률이 100%가 아니며,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가 '누리호'라는 강렬한 성공의 기억을 갖고 있다 보니 이노스페이스를 비롯해 뉴스페이스 시대를 이끌 민간 우주 기업에게 너무 높은 잣대를 들이밀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누리호는 1차 발사 실패 이후 2~4차 연속으로 성공했다. 누리호 발사에서 연이어 성공을 거둔 누리호의 쾌거는 분명 국가적 자부심을 가질 만한 일이다. 하지만 발사체 개발 초기 단계에서 이처럼 높은 성공률을 기록한 것은 세계 우주 개발사를 통틀어도 매우 이례적인 '특수 사례'에 가깝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려가 나온다. 누리호의 이례적 연속 성공이 국민들의 눈높이를 지나치게 높여 놓았을 수 있어서다. 국가가 주도한 거대 프로젝트의 성공 잣대를 이제 막 우주를 향한 첫걸음을 뗀 민간 스타트업에 그대로 들이대는 것은 가혹하다 못해 비합리적이다. 민간 기업은 국가 기관보다 훨씬 열악한 자본과 인력 구조 속에서 '저비용·고효율'이라는 시장의 논리와도 싸워야 한다.

우주 산업은 실패가 예정된 비즈니스다. 수십만개의 부품 중 단 하나만 오작동해도 수천억원의 자산이 한순간에 화염으로 변한다. 그렇기에 우주 선진국들은 실패 그 자체보다 '실패 이후의 대응'에 더 주목한다. 왜 실패했는지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음 설계에 반영하는 회복 탄력성이야말로 우주 강국으로 가는 핵심 동력이기 때문이다.

이노스페이스의 이번 '스페이스워드' 임무는 비록 궤도 진입에는 실패했을지언정 실제 상업 위성을 싣고 발사대에 섰다는 것, 발사대를 떠나 음속을 돌파했다는 것 만으로도 국내 민간 우주 생태계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이들이 이번에 얻은 1분 남짓의 비행 데이터는 그 어떤 시뮬레이션으로도 얻을 수 없는 값진 자산이다.

첫 도전이 아쉬운 실패를 거두긴 했으나 당장 필요한 건 차가운 비판이 아닌 따뜻한 응원이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제2의 스페이스X도, 한국형 스타쉽도 나올 수 없다. 이노스페이스가 이번 실패를 딛고 다시 발사대에 설 수 있도록 인내하며 기다려주는 '성숙한 지지'가 필요하다.

오늘 브라질 하늘에 흩뿌려진 기체의 파편들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다. 언젠가 한국의 민간 위성이 우주 궤도에 안착하는 날, 그 밑거름이 될 가장 귀중한 도전의 기록으로 기억될 것이다. 이노스페이스의 다음 도전을 기대하며, 그들이 더 절치부심하여 완벽한 성공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이같은 실패와 재도전이 '당연한' 일이 돼야만 우리나라에서도 또다른 우주기업들이 우후죽순 솟아날 수 있을 것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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