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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섬, 제주]④민간정원 산책(上)

등록 2025.05.25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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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정원…분재 100여종 전시

베케, 자연과 호흡하는 생태정원

원생정원, 호텔업계 최초 민간정원 등록

빌레못정원…평범한 이웃의 '행복정원’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20일 오후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 '생각하는 정원'. 50여년 동안 돌을 옮기고, 나무를 심으며 황무지를 개척한 분재 예술인의 일생이 녹아든 정원이다. 2025.05.20. ijy788@newsis.com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20일 오후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 '생각하는 정원'. 50여년 동안 돌을 옮기고, 나무를 심으며 황무지를 개척한 분재 예술인의 일생이 녹아든 정원이다. 2025.05.20. [email protected]


정원은 누군가의 손길로 다듬어진 공간이자, 자연과 함께 빚어낸 경관이다. 치유와 휴식을 제공하면서 생태계를 품는 그릇, 그리고 이웃과 소통하는 마당이 된다. 제주는 정원을 꾸미기에 이상적인 땅이다. 따뜻한 해양성 기후, 화산섬 특유의 토양, 사계절 변화에 따라 피고 지는 수많은 식물들. 그리고 돌과 바람, 물이 빚어낸 독특한 풍경까지 정원을 이루는 요소가 자연스럽게 스며있다. 섬 곳곳에 담긴 정원을 통해 '제주형 정원(J-가든)'을 모색하는 이야기를 시리즈로 게재한다.<편집자 주>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제주를 여행하거나 걷다 보면 길모퉁이, 숲 가장자리, 혹은 낮은 돌담 너머에서 예기치 않게 '정원'이라는 풍경을 만나게 된다.

자연경관이 압도하는 제주에서 '사람이 손을 더한 자연'인 정원은 소박하게 때로는 치밀하게 만들어진 또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제주의 민간정원은 단순히 아름다운 식물을 심어놓은 공간이 아니다. 바람과 햇살, 비와 안개를 받아들이는 제주의 날씨 속에서 식물과 사람이 공존하는 장소이며 정원을 가꾼 이의 정성과 철학, 취향이 담겼다.

최근 다양한 유형의 정원이 속속 생겨나는 가운데 '수목원·정원의 조성 및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녹지면적 40% 이상 ▲주차장·화장실 편의시설 등 일정 기준을 갖추면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민간정원'으로 등록이 가능하다.

정원주가 원한다면 입장료를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진다. 외부 비공개도 가능하지만, 가급적 공개가 권장된다.

개인을 비롯해 법인, 단체도 민간정원 등록이 가능하다. 4월말 현재 전국에 177개소가 있고, 이 가운데 제주는 10개소이다.

생각하는 정원, 분재예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제주 1호 민간정원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생각하는 정원에는 분재 100여종, 1000여점이 있다. 20일 오후 외국인 관광객들이 오랜 기간 공들인 분재를 둘러보고 있다. 2025.05.20. ijy788@newsis.com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생각하는 정원에는 분재 100여종, 1000여점이 있다. 20일 오후 외국인 관광객들이 오랜 기간 공들인 분재를 둘러보고 있다. 2025.05.20. [email protected]


제주의 1호 민간정원은 2015년 9월 등록한 제주시 한경면 저지리 '생각하는 정원'이다.
성범영 원장이 1968년부터 50여년동안 돌을 옮기고 나무를 심으며 3만6000㎡에 8개의 소정원을 완성했다. 분재 100여종, 1000여점이 있다. 1992년 정식 개장한 이 정원은 분재, 괴석, 수석, 폭포, 연못 등이 유기적으로 배치되어 있다.

20일 오후 정원 관람로에 들어서는 순간, 하귤에서 뿜어져 나오는 꽃향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분재마다 기나긴 세월이 묻어났다. 여러 갈래로 뻗어서 지탱하는 줄기는 고색창연한 고목의 느낌, 그대로이다.

윤노리나무는 하얀 꽃을 피웠고, 수령 100년가량인 매화나무에 열매가 맺혔다. 높이는 20~30㎝에 불과하지만 옆으로 뻗은 줄기는 성인의 양 손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굵었다.

해송은 잎이 돋아나면서 새롭게 다가왔다. 자연상태에서는 위로 곧장 자라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정원에서는 육지의 소나무(육송)처럼 몸을 이리저리 비틀면서 오묘한 선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분재가 '순수한 나무를 비틀고, 구부리고 하는 잔혹한 일'이라는 시선에 대해 성 원장은 상당히 불편해 한다.
그는 "나무를 못살게 구는 것이라면 죽어야하는데, 그들은 결코 죽지 않고 유한한 생활공간에서 강력하게 살아가면서 우리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에 도달한다"며 "부모와 선생님이 열정을 갖고 교육을 시키는 것이 어린이에게는 고통이지만, 그 고통을 이겨내면서 성숙한 인간으로 탄생하듯이 분재도 아름다움을 창조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원의 나무가 주는 혜택은 사색과 깨달음이고, 정원이 주는 혜택은 평안과 치유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정원은 국내외에 창조와 예술, 철학이 융합된 정원으로 소개되고 있으며 국빈의 주요 방문지로도 알려졌다.

베케, 자연주의 정원의 '성지’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20일 오전 서귀포시 신효동 '베케' 정원. 돌무더기를 뜻하는 베케를 배경으로 이끼, 고사리 등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풍경에 녹아들었다. 2025.05.20. ijy788@newsis.com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20일 오전 서귀포시 신효동 '베케' 정원. 돌무더기를 뜻하는 베케를 배경으로 이끼, 고사리 등이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풍경에 녹아들었다. 2025.05.20. [email protected]


2022년 9월에 민간정원으로 등록한 서귀포시 신효동 '베케' 정원은 사람의 간섭을 최소로 한 생태정원을 표방하고 있으며, 국내 '자연주의 정원의 성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20일 오전 베케는 휴무였다. 정원을 설립한 김봉찬 더가든 대표의 안내를 받았다. 1만㎡ 규모에 500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화산섬인 제주에서는 땅을 일굴 때마다 나오는 돌과 씨름해야한다. 마땅히 처리할 데가 없어서 밭 언저리에 쌓아둔다. 이 돌무더기를 제주방언으로 '베케'라 부른다.

베케는 곤충과 식물의 은신처이자 서식처가 된다. 어린이에게는 놀이터이고, 어른들에게는 노동 중에 땀을 식히는 장소다. 베케는 사람과 자연이 서로를 품어주면 하나가 되는 공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베케를 그대로 활용한 공간을 이끼정원, 빗물정원으로 꾸몄다. 난초과의 자란(紫蘭)이 보랏빛 꽃을 활짝 피웠다. 이끼는 햇빛이 드는 순간이 불편하면서도 푸름을 뽐냈다.

여러 종류의 고사리도 하늘을 향해 앞 다퉈 팔을 벌렸고, 산수국도 꽃망울을 터트렸다. 이 공간을 지나는 산책로는 어둠 속에 있도록 설계했다. 빛과 대비되면서 '깊고 은밀하다'는 느낌을 준다.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창고를 부수고 남은 콘크리트 잔해에 만든 베케의 폐허정원에는 암대극, 사초 등이 아우성치듯 우후죽순으로 자라고 있는 가운데 20일 오전 따가운 햇빛을 달래려고 물을 주고 있다. 2025.05.20. ijy788@newsis.com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창고를 부수고 남은 콘크리트 잔해에 만든 베케의 폐허정원에는 암대극, 사초 등이 아우성치듯 우후죽순으로 자라고 있는 가운데 20일 오전 따가운 햇빛을 달래려고 물을 주고 있다. 2025.05.20. [email protected]


이끼정원을 벗어나서 마주한 '폐허정원'은 암대극, 겹말발도리, 사초 등이 각자 아우성치듯 우후죽순이다. 창고를 부수고 남은 콘크리트 잔해 등도 훌륭한 정원의 구성물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제주의 풍경을 4계절로 설명하기 어려워 정원을 '초봄, 봄, 초여름, 여름, 가을, 늦가을, 겨울' 등 일곱 계절로 구분해서 조성했다.

이 시기마다 시시각각 변하는 빛과 어둠, 바람과 물이 식물의 점·선·면과 어우러지면서 경이로운 경관이 펼쳐진다.

김 대표는 "과거 정원이 자연을 소비하거나 '치장'을 과시하는 인간중심적인 정원이었다면, 자연주의 정원은 비료와 농약사용을 최소화한 생태공간을 지향하고 있다"며 "정원은 또한 도시에서 사라진 생물 다양성과 생태적 균형을 회복하고, 생명이 넘치는 공간 창출을 목표로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원생정원, 용암숲인 곶자왈을 모티브로 조성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제주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에 위치한 롯데호텔 제주의 야외 '원생정원'은 국내 호텔업계 최초의 민간정원으로 등재됐다. 2025.05.20. ijy788@newsis.com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제주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에 위치한 롯데호텔 제주의 야외 '원생정원'은 국내 호텔업계 최초의 민간정원으로 등재됐다. 2025.05.20. [email protected]


제주 서귀포시 중문관광단지에 위치한 롯데호텔 제주의 야외 정원인 '원생정원'은 지난해 5월 국내 호텔업계의 최초 민간정원 등재로 주목을 받았다.

1층 야외 수영장옆 3300㎡ 규모로 조성한 정원은 용암암괴에 형성된 독특한 숲인 제주의 '곶자왈'을 모티브로 했다. 정원을 방문한 20일 오후, 하늘높이 솟은 때죽나무에는 하얀 꽃이 달렸고, 바닥에는 고사리종류인 관중이 자리 잡았다.

그루터기에서 여러 맹아가 자라서 줄기를 이룬 나무, 뿌리로 돌덩이를 움켜쥔 나무 등 곶자왈에 있을법한 키 큰 나무가 위치했다.

제주 자연을 구현하는데 초점을 두고 팽나무, 멀구슬나무, 비목나무 등의 13종의 수종을 야생에서 옮겨왔다. 관목 38종, 초본 49종을 식재해 바닥에서 하늘까지 식물이 이어지도록 설계했다.

과거 '용가리쑈'로 불리워지던 드래곤 조형물, 화산분수쇼의 노후화된 인공암 시설 등을 허물고 재구성했다. 이 드래곤 조형물의 머리부분을 오름(작은 화산체)을 형상화한 언덕에 묻었다. 제주를 잘 지켜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한다.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롯데호텔 제주의 원생정원은 용암암괴에 형성된 제주의 독특한 숲인 '곶자왈'을 모티브로 했으며, 연못으로 정원에 하늘을 담는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2025.05.20. ijy788@newsis.com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롯데호텔 제주의 원생정원은 용암암괴에 형성된 제주의 독특한 숲인 '곶자왈'을 모티브로 했으며, 연못으로 정원에 하늘을 담는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2025.05.20. [email protected]

정원 남쪽을 연못으로 꾸몄다. 하늘을 담으려는 의도다. 정원 곳곳에는 방문객이 각자의 시선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 쉼터를 배치했다.

2021년부터 1년 동안 정원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레미콘파업, 태풍 등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무엇보다 키 큰 나무인 교목을 안착시키는데 상당한 공을 들였다.

정원조성을 맡았던 롯데호텔 관계자는 "직원들이 직접 정원해설과 각종 이벤트를 운영하며 정원을 가꾸고 있다"며 "단순한 조경 공간을 넘어 자연과 예술, 그리고 인간의 감성이 어우러진 힐링 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빌레못정원, 꽃을 사랑하는 평범한 이웃의 개인정원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제주시 애월읍 곽지리 '빌레못정원'은 전문적인 지식이나 상당한 자본투입 없이 지역주민이 독학으로 만든 개인정원이다. 2025.05.20. ijy788@newsis.com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제주시 애월읍 곽지리 '빌레못정원'은 전문적인 지식이나 상당한 자본투입 없이 지역주민이 독학으로 만든 개인정원이다. 2025.05.20. [email protected]


지난해 8월 민간정원으로 등록한 제주시 애월읍 곽지리 '빌레못정원'은 전문적인 지식이나 상당한 자본의 투입 등이 없이 단순히 꽃을 좋아하는 '동네 주민'이 만든 개인정원이다.

빌레못은 평평하게 퍼진 암반지형을 뜻하는 제주방언인 '빌레'와 연못이 합쳐진 용어다. 빌레못에 정원을 조성했다기보다는 인근에 빌레못이 여럿이어서 명칭을 이렇게 붙였다.

그래도 빌레못정원도 땅 아래는 빌레 형태다. 빗물이 쏟아지면 물이 고이지만 다행스럽게도 인근의 '숨골'로 불리는 암반 틈새를 통해 순식간에 빠져나간다.
1500㎡ 규모의 정원 가운데는 잔디로 깔았다. 어린이나 반려동물 등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했다.

잔디 주변으로 주요 정원식물 가운데 하나인 체리세이지가 화사하게 꽃을 피웠고, 잡초가 자랄만한 곳에는 원평소국을 심었다. 버들마편초도 보랏빛 꽃이 층층이 달렸다.

규모는 작아도 수국길, 명상길, 삼색버드나무길, 육묘장 등 아기자기한 공간을 만들었다. 교목 30여종, 초본 40여종 등 1300여그루를 보유하고 있다. 정원 옆에서 카페가 운영중이다.

올해 6월말 공직생활을  마무리하는 정원주 김형도씨는 3년전부터 감귤나무를 베어내고 정원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국립수목원에서 정원교육을 받고, 자료를 독학하며 꽃을 심었다.

김씨는 "주말에 정원을 꾸미는데 시간과 체력을 쏟아부었다. 평소에 좋아하는 꽃과 나무를 심는 일이기에 힘들지만 포기할만한 고통은 아니었다"며 조성 과정을 설명했다.

잔디를 깎고, 잡초를 뽑느라 정원에 매여있지만 아침마다 아내인 이성이씨와 차를 마시면서 정원에 핀 꽃을 볼 때는 욕심과 근심이 사라진다고 했다.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빌레못정원을 조성하고 있는 김형도·이성이씨 부부는 매일 아침 정원에 앉아 차를 마시며 안식과 평온함을 얻고 있다. 2025.05.20. ijy788@newsis.com

[제주=뉴시스] 임재영 기자 = 빌레못정원을 조성하고 있는 김형도·이성이씨 부부는 매일 아침 정원에 앉아 차를 마시며 안식과 평온함을 얻고 있다. 2025.05.20. [email protected]


그는 "전문지식이 없어서 정원이 약간 번잡스럽다는 느낌도 있지만 배우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계속 나아가고 있다"며 "안식과 평온함이 가득한 정원가꾸기로 제 2인생을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제주도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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