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산업의 교차점이 된 75년 '석탄공사' 사장 열전
역대 사장-대통령 직무대행부터 장군, 장관, 국회의원, 군수출신까지

원주 혁신도시에 자리하고 있는 대한석탄공사 본사 전경.(사진=대한석탄공사 노조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원주·태백]홍춘봉 기자 = 대한민국 제1호 공기업인 대한석탄공사가 이달 30일 75년의 시대를 뒤로 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하지만 역대 사장들의 발자취는 화려하다.
에너지 빈곤과 산업화를 뚫고 달려온 이 공기업의 발자취만큼이나 공사를 이끌었던 역대 사장들의 면면은 한 편의 권력사요 산업사의 집대성이라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다.
공사의 시작은 강력했다. 초대 사장은 허정. 내각책임제 시기 국무총리를 지낸 그는 4·19혁명 직후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수행한 정치 원로다. 교통부 장관과 사회부 장관 등을 역임한 그는 혼란한 시기 국가 재건의 상징으로 석탄공사의 초석을 다졌다.
이후 공사는 한동안 장관, 차관, 지사, 군 장성 등 국가 권력의 교차점에 서 있던 인물들이 줄줄이 수장으로 취임하며 ‘국가에너지 정책’의 최전선에 있었다.
석탄공사 사장 중 가장 빛나는 이름으로 꼽히는 이는 6대 정인욱 사장이다. 일본 와세다대학에서 채광야금공학을 전공한 그는 해방 직후 상공부 석탄과장을 맡아 대한민국 석탄산업의 밑그림을 그리고 산림녹화 및 석탄공사 설립을 이승만 대통령에게 제안한 인물이다.
1950년 5월 석탄공사 기술이사로 석탄공사 창립을 주도한 정 사장은 1952년 민간 강원탄광을 성공시킨 뒤 정부의 거듭된 요청을 사양하다가, 이승만 대통령이 직접 임명장을 내밀어 결국 사장으로 복귀했다.
그는 ▲정치권 청탁 시 사표 ▲경영 간섭 시 사표 ▲인사 전권 없으면 사표 등 소신 조건을 내세우며 조직 쇄신을 단행했다. 체불임금 해소, 부패 척결, 고속굴진 도입 등 개혁을 단기간에 실현해 ‘공기업 개혁의 전범’으로 꼽힌다.
3대 김훈 사장은 상공부 장관, 4대 구용서 사장은 한국은행 총재, 7대 김의창 사장은 체신부 차관, 10대 유흥수 사장은 2군 사령관, 국토건설본부장을 지낸 인물이다. 이후 14대 태완선 사장은 상공부 장관, 15대 김효영 사장은 충북·경남지사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1970~1990년대는 군 장성 출신이 사장을 독식한 시기였다. 2021대 이훈섭, 22~23대 고광도, 24대 정원민, 25대 안필준, 26대 김종호, 27대 서생현 등 대부분이 육·해군 장성 출신이었다. 유신과 5공 시대, 석탄공사는 사실상 군 통치 구조의 일부였다.
노조위원장에서 13·14대 재선 국회의원을 거쳐 사장에 취임한 류승규(30대), 정선군수를 지낸 김원창(33대), 강원도 정무부지사 출신의 조관일(34대) 등은 이후 시대의 다양성을 상징하는 인물들이다.
조관일 사장은 “막장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말로 대중 강연과 집필 활동을 이어가며 석탄공사의 인문적 서사를 더했다.
2013년 37대 권혁수 사장은 석탄공사 사상 첫 내부 공채 출신 사장으로 임명되었다. 사무직으로 시작해 부사장까지 오른 그는 “산림녹화의 일등공신이자 국민연료의 중추였던 석탄산업의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뒤를 이은 백창현 사장 역시 공채 출신으로 기획본부장을 거쳐 사장에 올라 ‘수직 성장’의 롤모델이 되었다. 이후 원경환(40대, 서울청장 출신), 김규환(41대, 현직 마지막 사장)이 바통을 이어받으며 2024년 11월, 유종의 미를 준비하는 마지막 사장으로 기록됐다.
대한석탄협회 관계자는 “석탄공사는 에너지 안보와 산업화에 핵심 역할을 해온 기관이지만, 삭탄산업 사양화 이후 전문성 없는 외부 인사들이 잇따라 사장을 맡으며 위기가 가속화됐다”고 지적했다.

2013년 37대 권혁수 사장이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에 입갱해 소장으로부터 현장상황을 보고 받고 있다.(사진=권혁수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권혁수 전 사장은 “일본은 지금도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국영 탄광을 운영한다. 우리는 그마저도 못 지켜 아쉽다”며 “공채 출신으로 공사 사장을 맡은 것은 개인적으로 가장 큰 영광이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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