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에서 이방인으로…다시 쓴 '오이디푸스'[객석에서]
등록 2026.10.04 09:00:00수정 2026.10.04 09:18:24
국립극단 '안트로폴리스' 5부작 중 세번째
장애인이자 이방인인 오이디푸스 그려내
![[서울=뉴시스] 국립극단 연극 '오이디푸스' 공연 장면. (사진 = 국립극단 제공) 2026.10.02.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10/02/NISI20261002_0002254889_web.jpg?rnd=20261002190735)
[서울=뉴시스] 국립극단 연극 '오이디푸스' 공연 장면. (사진 = 국립극단 제공) 2026.10.02.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뉴시스]김주희 기자 = "이 부은 발로 부모의 품을 떠나 이렇게 먼 곳까지 오게 된 이유를 알고 싶었어."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 테베를 구한 오이디푸스. 그러나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는 알지 못했던 그가 도시를 덮친 재앙의 원인을 좇다 마침내 자기 자신과 마주한다.
국립극단 명동예술극장에서 관객을 만나고 있는 연극 '안트로폴리스Ⅲ-오이디푸스'가 익숙한 오이디푸스 신화를 새로운 시선으로 풀어냈다.
독일 극작가 롤란트 쉼멜페니히가 집필한 '안트로폴리스'는 고대 그리스 신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5부작이다. 국립극단은 지난해부터 이 시리즈를 차례로 선보이고 있다. '오이디푸스'는 '프롤로그/디오니소스', '라이오스'에 이은 세 번째 작품이다.
오이디푸스 이야기는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비극적 운명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작품도 원작의 큰 줄기를 따라간다.
테베에 역병이 퍼지자 왕 오이디푸스는 재앙의 원인을 찾아 나선다. 선왕 라이오스를 죽인 범인을 찾아야 한다는 신탁을 따라 진실을 추적하지만, 하나씩 드러나는 사실은 결국 자신을 향한다.
끝내 자신이 아버지 라이오스를 죽이고 어머니 이오카스테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두 눈을 찌른다.
이번 무대에 등장하는 오이디푸스는 우리가 익히 알던 영웅의 모습이 아니다.
첫 등장부터 남루한 차림으로 다리를 절룩거리는 그는 장애인이자 이주민으로 살아오며 편견과 차별을 겪은 인물이다.
크레온이 그를 향해 내뱉는 "너는 온전한 자가 아냐, 너는 고귀한 자도 아니고, 이 나라 사람은 더더욱 아냐"라는 말은 오이디푸스가 왕이 된 뒤에도 여전히 테베의 이방인임을 드러낸다.
![[서울=뉴시스] 국립극단 연극 '오이디푸스' 공연 장면. (사진 = 국립극단 제공) 2026.10.02.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10/02/NISI20261002_0002254891_web.jpg?rnd=20261002190841)
[서울=뉴시스] 국립극단 연극 '오이디푸스' 공연 장면. (사진 = 국립극단 제공) 2026.10.02.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자연스레 비극을 보는 시선도 달라진다.
오이디푸스는 오만으로 추락하는 영웅이 아닌, 자신의 결핍과 취약성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품는 존재로 그려진다. 그를 향해 반복되는 "당신은 죽이는 사람이 아니라 살리는 사람이에요"라는 대사는 이번 작품이 바라보는 오이디푸스를 보여준다.
말, 개, 염소, 독수리, 금강석도 목소리를 갖는다. 이들 '비인간'은 목격자로서 인간의 행동을 바라보고 기억한다.
"유리한 기억은 남기고, 불리한 기억은 지우는 것이 사람"이라는 인간의 속성과 달리 비인간들은 인간이 지우고 외면한 것까지 기록하고 증언한다. 인간만이 모든 것을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다는 인간중심주의도 흔들린다.
강량원 연출 특유의 신체 움직임과 대사의 리듬도 두드러진다. 배우들은 과장된 몸짓과 리듬을 타는 듯한 대사로 익숙한 신화에 이질적인 감각을 더한다. 다소 생경하게 다가오기도 하지만 작품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서울=뉴시스] 국립극단 연극 '오이디푸스' 공연 장면. (사진 = 국립극단 제공) 2026.10.02. photo@newsis.com *재판매 및 DB 금지](https://img1.newsis.com/2026/10/02/NISI20261002_0002254890_web.jpg?rnd=20261002190810)
[서울=뉴시스] 국립극단 연극 '오이디푸스' 공연 장면. (사진 = 국립극단 제공) 2026.10.02. [email protected] *재판매 및 DB 금지
모든 진실이 밝혀진 뒤 이오카스테가 스스로 목을 매달고, 오이디푸스가 어머니이자 아내인 이오카스테의 옷에서 빼낸 핀으로 자신의 눈을 찌르는 장면은 강한 인상을 남긴다.
이후 공연 내내 테베와 바깥을 가로막던 무대 위 거대한 장벽도 열린다. 좁은 공간 뒤로 드러난 광활한 광야를 향해 오이디푸스는 딸 안티고네의 부축을 받으며 천천히 걸어 나간다.
가혹한 운명은 피하지 못했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는 오이디푸스의 뒷모습은 비극 이후에도 계속될 삶을 떠올리게 한다.
공연은 오는 1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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