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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수 선수를~'…장난·혐오글 난무하는 청원 게시판

등록 2018.06.24 14: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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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기능 크지만 허무맹랑·혐오 표현들까지 방치

"청원을 웃음거리로 소비, 긍정 효과마저 훼손"

"온라인에 이미 놀이터 많은데 靑 게시판까지"

"본래 목적 어긋나지 않게 관리기준 점검 필요"

【서울=뉴시스】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장현수 관련 청원들. 2018.06.24. (사진= 국민청원 게시판 갈무리)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장현수 관련 청원들. 2018.06.24. (사진= 국민청원 게시판 갈무리)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남빛나라 기자 박민기 수습기자 = '장현수 군면제 취소 손흥민 군 면제', '장현수 승부 조작 조사해주세요', '장현수 슬라이딩만 해서 한국까지 오게 해주세요', '장현수 선수를 배구선수로 바꿔주세요'.

 2018 러시아 월드컵 한국 대표팀과 멕시코의 조별리그 2차전이 치러진 24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이다. 축구 국가대표팀을 향한 성토는 물론이고 페널티킥 판정에 빌미를 준 중앙수비수 장현수(FC도쿄)를 비난하는 글만 수백 건에 달한다.

 한국 대표팀의 첫 경기 당일엔 "스웨덴전 재경기를 청원합니다. 이따 올라올 거 같아서 미리 합니다"란 청원이 올라왔다. 이 글은 한국과 스웨덴의 경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게시됐다. 이 청원엔 "급식충(학생을 비하하는 말) 놀이터로 전락한 청원 게시판 폐쇄하고 문재인 하야를 촉구한다"는 댓글이 달렸다.

 해당 글은 국가 대항전이 끝난 뒤 오심이나 선수의 태도 등을 둘러싸고 으레 연출되는 과열된 분위기를 비꼰 글로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됐다. 일각에선 터무니없는 내용으로 정부와의 소통 창구인 국민청원 게시판 자체를 비하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장난스러운 글은 적지 않게 눈에 띈다. 앞서 게시판엔 '살 것 메모'란 제목으로 생필품의 목록을 적은 청원이 게시된 바 있다. '매주 수요일 휴무하고 싶습니다', '월드컵 해설 중계진 교체해달라', '손흥민 군대 가면 안된다' 등의 청원도 올라왔다.

 더 큰 문제는 사회 약자를 향한 혐오글이다. 일례로 '노키즈존(아이 출입 금지)을 모든 가게로 확대할 것을 청원한다'는 제목의 글이 22일 올라왔다.

 게시자는 "아이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않는 일명 '맘충'들 때문에 전국 각지에서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며 "대한민국 엄마들 대다수의 인성이 썩을 대로 썩었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맘충'은 아이 엄마를 벌레에 비유한 표현이다.
'장현수 선수를~'…장난·혐오글 난무하는 청원 게시판

문화평론가인 이택광 경희대학교 교수는 "청와대가 국민청원 게시판을 만들어놨으면 취지에 부합하도록 관리해야 하는데, 혐오 표현을 방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청와대는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내용 ▲욕설 및 비속어 사용 ▲중복 게시 등을 글 삭제 기준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장난 글이나 혐오 표현이 담긴 글을 하나하나 찾아내 지우긴 어려운 상황이다.

 청와대는 청원 게시판을 시민들이 최대한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공간으로 운영하겠다는 입장이다. 정혜승 청와대 뉴미디어 비서관은 국민청원 게시판이 '놀이터'처럼 기능하고 있다는 우려과 관련해 "놀이터가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답변한 바 있다.

 청원 게시판의 순기능이 큰 것은 사실이다. 30일 간 20만 명 이상의 국민이 추천한 청원에는 정부와 청와대 관계자가 답변한다.

 24일 기준 ▲낙태죄 폐지 ▲주취감형 폐지 ▲조두순 출소 반대 ▲미성년자 성폭행 형량 높이기 ▲유기견 보호소 폐지 반대 ▲불법촬영 처벌 강화 등 36건의 청원에 대해 정부가 유의미한 대답을 내놨다.

 고강섭 한국청년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대중이 정치권에 말할 수 있는 놀이터가 생겼단 점은 긍정적인 부분"이라며 "특히 온라인 플랫폼에 익숙한 20~40대들이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건 정치의 엄숙함이 사라지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민청원이 가진 순기능을 보호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실명제와 민원 신청료 등 최소한의 거름망을 도입하자는 요구도 제기된다. 허무맹랑한 청원에 적절한 조치를 해달라는 청원도 이어지고 있다.

 한 게시자는 청원 글을 통해 "장난처럼 국민청원을 올리고 그것을 퍼 나르면서 웃음거리로 소비하는 현 상황은 국민청원의 긍정적인 효과마저 망가트리고 있다"고 짚었다.

 신광영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온라인상에 이미 놀이터가 많은데 굳이 청와대 게시판이 장난처럼 운영되면 본래 목적과 완전히 어긋난다"며 "관리 기준을 구체적으로 세워서 운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는 일단 소통의 순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익명성 등 청원자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입장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게시판 운영 기준을 변경할 게획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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