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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기사격 목격 '고 조비오 신부'는…평생 이웃 위한 삶

등록 2019.03.11 08:5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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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 당시 통장 잔고 '0원'…장기·책까지 기증

"5·18 때 시민수습위원 활동…헬기 사격 증언"

【광주=뉴시스】류형근 기자 = 11일 오후 광주지법에서 고(故) 조비오 신부(사진 왼쪽) 사자명예훼손 혐의를 받고 있는 전두환씨의 재판이 열린다. 2019.03.11. (사진=뉴시스 DB) photo@newsis.com

【광주=뉴시스】류형근 기자 = 11일 오후 광주지법에서 고(故) 조비오 신부(사진 왼쪽) 사자명예훼손 혐의를 받고 있는 전두환씨의 재판이 열린다. 2019.03.11. (사진=뉴시스 DB) [email protected]

【광주=뉴시스】류형근 기자 = 전두환(88) 전 대통령의 역사적 재판이 11일 오후 광주지법에서 열릴 예정된 가운데 전 씨가 회고록을 통해 거짓말쟁이라고 기술한 고(故) 조비오 신부의 삶이 재조명되고 있다.

평생을 민주화와 통일, 어려운 이웃을 위해 헌신했던 조 신부는 지난 2016년 9월21일 향년 78세의 일기로 선종했다. 마지막 가는 길마저도 그는 조화 대신 쌀을 받아 이웃에 전달하는 사랑을 실천했다.

또 통장 잔고는 '0원'이었으며 마지막 남은 자신의 몸과 책까지 기증했다.
 
조 신부는 1938년 4월1일 광산구 본량면에서 태어나 1962년 가톨릭대학 1기생으로 입학해 1969년 12월16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사제의 길을 걷게된 그는 1976년 계림동 본당 신부로 부임하면서 소화자매원과 인연을 맺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데 평생을 바쳤다.

거리를 헤매고 있는 노숙자와 폐결핵 환자를 돌보기 위한 복지시설과 지적 장애인 생활시설인 소화 천사의 집을 열기도 했다. 

그는 또 사회 현실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군부 독재시절 시국미사를 집전하면서 신군부에 정면으로 맞서기도 했다.

1980년 5·18을 겪으면서 민주화와 통일 운동에 뛰어든 조 신부는 시민수습위원으로 활동했다는 이유로 신군부에 의해 체포돼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옥고를 치렀다.

이후 내란음모 핵심 동조자로 찍혀 신군부로부터 미행을 당하기까지 했다.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조차 제약을 받을 정도의 구속된 삶이었지만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놓지 않았다.

조 신부는 2009년 8월18일 김 전 대통령 서거 당일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5·18 이후 미행과 상경 제지, 밤샘 조사로 '불면 고문'에 시달려야만 했다"고 회고했다.

조 신부는 5·18기념재단 초대 이사장, 조선대 학교법인 이사장 등을 역임했으며 소화자매원 이사장과 광주·전남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 아리랑 국제평화재단 이사장 등을 지냈다.

2008년 1월16일 국내 28번째로 고위 성직자 품위인 교황의 명예사제 '몬시뇰'에 임명됐다.

이후 조 신부는 갑자기 쓰러진 뒤 암세포가 온몸에 퍼졌다는 진단을 받고 투병생활을 이어가던 중 선종했다.

한편 이날 오후 2시30분 광주지법 법정동 201호 대법정에서 형사8단독 장동혁 부장판사 심리아래 전 씨 재판이 열린다.

전 씨는 2017년 4월에 발간한 회고록을 통해 '5·18 당시 헬기 기총소사는 없었던 만큼 조비오 신부가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는 것은 왜곡된 악의적 주장이다. 조 신부는 성직자라는 말이 무색한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다'라고 주장, 고 조 신부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사자명예훼손)로 지난해 재판에 넘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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