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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채권 랩·신탁, 증권사들 손해배상 나선다

등록 2024.02.21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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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 고유자산으로 고객 계좌 떠안고 나머지 손해배상

각사 최소 수백억 단위 예상

'불법' 채권 랩·신탁, 증권사들 손해배상 나선다


[서울=뉴시스]우연수 기자 = 증권사들이 지난해 말 불건전 '돌려막기' 운용이 적발된 채권형 랩·신탁 고객들에 대해 환매 및 손해배상 범위를 조율 중이다. 규모는 각사별로 최소 수백억원 단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당국이 증권사 고유자산을 통한 고객 신탁 자산 편입을 예외적으로 허용해주면서 고객들에게 환매해줄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여전히 선제적인 손해배상 움직임에는 소극적인 분위기가 감지된다. 장기 기업어음(CP) 등 비우량 자산을 증권사 몫으로 대거 떠안아야 하는데다 원금에 준하는 수준까지 추가적인 배상도 필요해 증권사들은 검사 결과가 확정날 때까지 지켜볼 공산이 크다.

21일 금융투자업계와 금융당국에 따르면 증권사들은 지난해 말 불건전 운용이 적발된 채권형 랩·신탁에 대해 고객 환매 및 손해배상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금감원은 특정 고객의 랩·신탁 계좌로 CP 등을 고가 매수해주는 방식으로 일부 증권사들이 제3자에게 손실을 전가했다고 판단, 검사 후 제재 절차를 진행 중이다.

고객에게 환매 해주려면 계좌 내 채권을 팔아야 하는데, 그간 증권사들은 레고랜드 사태 이후 경색된 시장 상황에 채권에 대한 시장 수요가 없어 환매에 난항을 겪었다. 그러다 최근 금감원에서 객관적인 공정가액을 산정해 거래하는 경우 증권사 고유자산을 통해 고객 계좌에 담긴 채권 자산을 편입해도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전달하면서 환매해줄 길이 생긴 것이다.

원칙적으로 증권사가 신탁재산을 고유재산으로 취득하는 건 불법이다. 다만 자본시장법 제104조에 따라 '수익자 보호를 위해 불가피한 경우' 예외가 인정된다.

금감원은 증권사의 위법적인 운용으로 손실을 입은 고객들에게 환매해주기 위해서라면 이 예외에 해당한다고 봤다. 또 이전에 고유 계정, 또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펀드로 신탁 재산을 '고가' 매수해 수익률을 보전했던 것이 문제가 됐던 것과 달리 객관적인 공정가액으로 거래하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봤다.

이 같은 금융당국 판단에 고객에게 환매해줄 수 있는 길은 뚫렸지만 선제적인 환매·손해배상에는 아직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각 증권사가 떠안을 규모가 최소 수백억원은 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위법 규모가 크지 않아 선제적인 손해배상에 나섰던 NH투자증권의 경우에도 손해배상액이 약 17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금액이 큰 증권사들은 어디까지가 위법 운용인지를 두고 금감원 검사국과 치열한 공방 중에 있다. 금감원의 검사 중간결과 발표에 따르면 채권 돌려막기에 따른 고객 손실이 최대 5000억원에 달하는 증권사도 있다.

혐의가 확정되면 증권사들은 우선 공정가액으로 환매를 진행한 뒤 추가로 손해배상을 진행하게 된다. 금감원은 고유자산 편입시 공정가액으로 거래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는데, 이에 따라 100원에 사들인 채권이라도 현재 가치가 50원으로 떨어졌으면 50원으로 사줘야 한다. 환매 후에도 투자자 손실이 불가피한 만큼, 각사가 상품별 약정 등에 따라 100%(원금) 범위 내에서 추가로 손실을 배상해주라는 것이 금융당국의 방침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비우량 채권을 대거 떠안는 점, 추가 손해배상 등 부담이 있지만, 고유자산에 편입된 채권을 만기까지 가져가면 약정 수익률을 돌려받을 수 있어 큰 문제는 아니"라고 전했다.

한편 랩·신탁 불건전 운용을 정조준한 금감원은 위법 증권사들을 엄단한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복현 원장은 지난달 연간 업무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채권 돌려막기에 대해) 증권사 책임을 묻는 게 당연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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