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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걱정 마라"..괴산두레학교 할머니들 "시화 보러 와유"

등록 2024.02.28 17:56:26수정 2024.02.28 18: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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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걱정 마라, 내 인생 내가 산다' 책 출간

3월6일 인사동 아르떼 숲에서 시화전 개최

"얘들아 걱정 마라"..괴산두레학교 할머니들 "시화 보러 와유"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추영자 할머니는 괴산에 시집오던 날, “앞에도 산 뒤에도 산/ 산만 보여/ 도망도 못 가네”라고 한숨짓는다. 진달래반 정희 할머니는 “엄마 산소에 있는 열매를 먹으면/ 젖맛이 났다”고 회상한다.

한때 이팔청춘이었던 할머니들이 “내 인생 내가 산다”(윤명희)는 인생의 기쁨을 노래한다. 괴산두레학교에서 벗들과 함께 글을 배우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면서다.

글로 배운 적 없는 삶을 처음 쓰고 그린 괴산 할머니들이 '얘들아 걱정 마라, 내 인생 내가 산다'며 신바람이 났다.

뒤늦게 글을 배운 어르신들이 2014년부터 10년 동안 쓰고 그린 시화를 골라 책을 출간했다. 60대 후반에서 90세가 넘은 일흔아홉 분의 할머니들, 네 분의 할아버지들이 쓰고 그린 121편의 시화가 담겨 있다.

학교를 다니지 못한 것도 내 탓, 글 모르는 것도 내 탓이라 평생을 눈치 보고 기죽고 살아왔다는 분, 남부끄러우니 글 배우러 다니는 걸 말하지 말라던 분…. 할머니들에게는 글을 배우는 데도 큰 용기가 필요했다. 그리고 조금씩 글자를 익히고 글을 쓰게 되었다. 다음은 19세에 시집와서 평생 농사일을 해온 78세의 안대순 할머니가 쓴 글이다.

ㄱ ㄴ ㄷ
ㅏ ㅑ ㅓ ㅕ
처음 보는 글자
가 갸 거 겨
가지
고구마
글자 겨우 아니
하하 호호
로 료 브 비
글자가 비료지

이 책에는 ‘글로는 배운 적 없는 인생이 글로 표현되었을 때’의 가슴 뭉클함이 있다. 꾹꾹 눌러쓴 글자, 그림을 따라 그리듯 조심스럽게 쓴 글자, 비뚤비뚤 알아보기 어려운 글자 등 성격에 따라 서로 다른 글씨체들, 그리고 그 모퉁이에 무심한 듯 그려 넣은 그림 한 쪽마다에는 우리 인생의 희로애락이 있는 그대로 담겨 있다.

"올해 내 나이 팔십육/ 얼굴엔 주름이 가득/ 허나 몸과 마음은 아직도 청춘이다 … 난 아직도… 낫 들고 콩, 들깨, 참깨 등등/ 모조리 싹둑싹둑 베는 현역 농사꾼이다"(정을윤(86세), <나는 아직도 현역이다>)

"얘들아 걱정 마라/ 잔소리 하지 마라/ 내 걱정 하지 마라/ 엄마는 하고 싶다/ 이제는 하고 싶다/ 내 인생 내가 산다/ 사는 데까지 살다 갈란다"(윤명희(84세), <내 인생 내가 산다>)

할머니들의 꾸밈 없는 글과 그림에는 향기가 배어 있다. 살 냄새, 흙냄새, 땀 냄새, 풀 냄새, 바람 냄새 같은 향기다.

할머니들은 시가 무언지 몰라도 시인이 되었다. ‘글자’를 배우고 쓴 ‘글’들이 ‘시’가 되었기 때문이다. 작가 소개글에 함께 있는 인물화는 할머니들이 직접 그린 자화상이다.  오는 3월6일 서울 인사동 아르떼 숲에서 시화전을 연다. '얘들아 걱정 마라, 내 인생 내가 산다' 책에 실린 할머니들의 그림, 원화를 전시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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