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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양요 문수산성전투 주역 괴산 한성근 조명]

등록 2015.08.26 11:23:30수정 2016.12.28 15:3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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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뉴시스】강신욱 기자 = 충북 괴산군 칠성면 외쌍곡 야산에는 병인양요 문수산성전투의 주역인 한성근의 묘비가 있다. 2015.08.26. (사진=괴산향토사연구회 제공)  photo@newsis.com

【괴산=뉴시스】강신욱 기자 = 충북 괴산군 칠성면 외쌍곡 야산에는 병인양요 문수산성전투의 주역인 한성근의 묘비가 있다. 2015.08.26. (사진=괴산향토사연구회 제공)  [email protected]

김근수 괴산향토사연구회장, '괴향문화' 23집 수록

【괴산=뉴시스】강신욱 기자 = 프랑스 함대가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사건을 빌미로 1866년(고종 3년) 조선 강화도를 점령·약탈한 병인양요(丙寅洋擾) 때 문수산성 전투에서 적을 물리친 한성근(韓聖根·1833~1905)의 자세한 생애와 공적이 확인됐다.

 (사)괴산향토사연구회 김근수 회장은 27일 발표하는 '괴향문화' 23집에 '병인양요 문수산성전투 유공 한성근의 활약 고찰'이란 글에서 한성근의 공적을 소개했다.

 한성근에 대한 괴산지역 자료에는 그동안 '괴산군지'와 '연풍지'에 전설(대우가 맺어준 인연)로, '내 고장 전통 가꾸기'와 '괴산군 설화집'에 민담(시루봉에 묘 쓰고 벼슬한 한성근)으로 전했을 뿐 생몰연대 등 생애와 공적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자료가 없었다.

 김 회장은 1928년 1월 송헌석이 펴낸 '병인양요-일명 한장군전'이란 제목의 한글 소책자와 2003년 10월 서울대 한국문화연구소 조재곤 선임연구원이 논문 '병인양요와 한성근'을 발표한 것을 보완·인용하고 '승정원일기' 등의 공식 기록을 발굴해 이번에 발표한다.

 한성근은 1866년 병인양요 때 순무영(巡撫營)의 초관(哨官)으로서 집사(執事) 지홍관(池弘寬)과 함께 문수산성을 지키다가 프랑스 함대를 격파했으나 병력 부족으로 패했다.

 그 뒤 같은 해 봉상시 봉사, 병조좌랑을 거쳐 1867년(고종 4) 5월 은산현감에 제수됐으나 8월 평안감사 박규수의 장계에 탐관오리로 거명돼 의금부에서 곤장 30대를 친 다음 평안도 위원군(渭原郡)에 유배됐다.

 한성근은 1893년 2월 한성부 판윤에 임명됐지만 신병으로 하루 동안 판윤을 하고 가족을 데리고 지금의 경기도 부천시인 전반면(田畔面) 검월리(儉於里)로 옮겼다.

【괴산=뉴시스】강신욱 기자 = 충북 괴산군 칠성면 외쌍곡 야산에는 병인양요 문수산성전투의 주역인 한성근의 묘소가 있다. 2015.08.26. (사진=괴산향토사연구회 제공)  photo@newsis.com

【괴산=뉴시스】강신욱 기자 = 충북 괴산군 칠성면 외쌍곡 야산에는 병인양요 문수산성전투의 주역인 한성근의 묘소가 있다. 2015.08.26. (사진=괴산향토사연구회 제공)  [email protected]

 1896년에는 중추원 의관(中樞院 議官), 1899년에는 궁내부 특진관(宮內府 特進官)을 지냈다.

 한성근은 1833년 8월 괴산군 칠성면 쌍곡리에서 태어나 1905년 12월 노환으로 생을 마감했다.

 한성근은 괴산지역 자료에 전설과 민담 속 인물로만 알려졌는데, 승정원에서 왕명 출납과 행정사무, 의례적 사항 등을 기록한 '승정원일기'에 144건이 언급된 실제 인물로 확인됐다.

 그의 묘소는 칠성면 외쌍곡 야산에 '正憲大夫 正二品 兵曹判書 耆老所堂上 淸州韓公 聖根之墓(정헌대부 정이품 병조판서 기로소당상 청주한공 성근지묘)'란 묘비와 함께 있다.

 김 회장은 "이번 '괴향문화' 발간 책자를 통해 지역에서 전설과 민담으로만 전해진 한성근이 앞으론 '괴산 출신 한성근'으로 기록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며 "그의 활약상을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해 '충절의 고장 괴산'을 더욱 빛냈으면 한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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