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현정 학예연구사 "이건희 컬렉션 이중섭, 이 작품은 꼭 보세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서 특별전 2탄...90점 전시
담당 학예사가 꼽은 TOP 7...세 사람~정릉풍경까지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이 개막한 12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을 찾은 관람객들이 이중섭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전시는 12일부터 2023년 4월 23일까지. 2022.08.12.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2탄, '이중섭 전시'가 또 화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12일 개막한 전시는 벌써부터 관람객이 몰려들고 있다.
고(故) 이건희 회장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한 1488점 중 이중섭 작품만을 모은 전시다. 이회장이 소장했던 80점과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중 10점을 뽑아 총 90점을 선보였다.
손바닥만 한 그림들이 가득찬 전시장은 화가 이중섭(1916~1956)의 생전 풀지 못한 그리움이 뭉쳐있다. 화사한 색감의 그림부터 이중섭을 대표하는 은지화, 가족에 편지 그림을 쓴 엽서화 등에 그의 가족이 이어져 있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오로지 소장품으로만 한국 미술사의 주요 작가를 조명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전 국립현대미술관엔 이중섭 작품이 11점밖에 없었지만 이건희컬렉션 기증으로 115점으로 늘었다. 이건희 컬렉션에서도 이중섭 작품은 국내외 작가를 통틀어 유영국, 피카소에 이어 가장 많다. 그래서 '이건희가 사랑한 이중섭'으로 불리는 전시이기도 하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국립현대미술관 우현정 학예연구사가 서울 종로구 서울관에서 열린 'MMCA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 언론 공개행사에 참석하여 이중섭 작가의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2.08.10. [email protected]
"그간 ‘이중섭’ 하면 ‘황소’만 아셨다면 이번 전시에서는 특히 ‘가족’을 그린 인간 이중섭의 또 다른 면모를 만나볼 수 있다. 엽서화 위에 작게 쓰여진 “내, 태현군” 이란 글귀에서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꾹꾹 눌러 담았을 이중섭의 마음이 전해지는 듯하다. 손바닥만한 엽서와 은지화에 담긴 이중섭의 가족에 대한 각별한 애정은 코로나19와 폭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 적지 않은 감동을 준다. 전시는 내년 4월 23일까지 개최되니 천천히 오셔서 감상하시면 좋겠다."
작은 그림들이 많아 자세히 봐야 하는 전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우현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가 '이중섭의 이 작품은 꼭 봐야 하는 작품 7점'을 꼽았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서울=뉴시스]〈세 사람〉, 1942-1945, 종이에 연필, 18.3×27.7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1. '세 사람':'해방기념미술전람회'에 출품하려고 했는데...
제작 시기는 1942년에서 1945년 사이로 추정하며, 일제 강점 말기의 암울한 현실을 반영한 듯 두꺼운 종이에 무수히 겹쳐 그린 연필 자국이 삶의 피로, 무력감, 허무함을 드러내는 듯하다. 청년들은 꿈을 잃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처지를 묘사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화면의 앞으로 가로 누운 소년의 왼손과 오른 발이 짙은 선으로 강조되어 있는데, 현실에 맞서는 강한 의지로 해석할 수 있겠다. 이 작품의 소장가였던 정기용 선생의 증언에 따르면 본래 이번 전시에서 함께 출품된 '소년'과 한 작품이었던 것을 분리 표구하며 현재의 모습으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서울=뉴시스]〈상상의 동물과 사람들〉, 1940, 종이에 먹지그림, 채색, 9×14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2.상상의 동물과 사람들: 엽서화 중 가장 빠른 1940년대 그림
*엽서화는 이중섭이 훗날 아내가 되는 야마모토 마사코에게 보낸 무언의 연애편지다. 이중섭은 1940년부터 1943년까지 연인이었던 마사코에서 9x14cm의 관제엽서 한 면에 그림으로 가득 채운 엽서를 보냈다. 이중섭의 조카 이영진의 증언에 의하면 이중섭은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면서 마음에 드는 것이 나올 때까지 엽서에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현재 남겨진 엽서화는 총 88점이며, 이를 연도별로 구분하면, 1940년에 1점, 1941년에 75점, 1942년 9점, 1943년에 보낸 것이 3점이다. 이 그림들은 1979년 4월 이중섭의 미공개 작품 2백여 점으로 꾸몄던 미도파백화점 화랑에서의 전시에서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되는데, 이중 이건희컬렉션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하게 된 엽서화는 40건(41점)점에 이른다.
[서울=뉴시스]〈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 1950년대 전반, 종이에 펜, 유채, 32.8×20.3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3. 두 아이와 물고기와 게:서귀포 시절 회상...큰 아들 태현에 보낸 편지에 동봉
이 작품은 이중섭이 서귀포 시절을 회상하며 그린 것이다. 그림 속 아이들은 긴 줄로 연결되어 있고 줄의 양 끝에 물고기가 매달려 있으며 화면 가운데에는 커다란 꽃게가 앞발로 줄을 당기고 있다. 1954년 일본에 있던 큰아들 태현에게 보낸 편지에 동봉되었기에 자세히 보면 종이의 접힌 흔적이 남아있다. 이와 유사한 작품이 3점 더 현존하며 그 중 하나는 둘째 아들 태성에게 보낸 것인데, 이중섭은 두 아들이 싸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같은 그림을 두 번 그려 보냈다.
[서울=뉴시스]〈가족을 그리는 화가〉, 1950년대 전반, 은지에 새김, 유채, 15.2×8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4. 가족을 그리는 화가:은지화...절대로 남에게 보여주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은지화는 광택 있는 알루미늄 속지에 철필 또는 못을 사용해 윤곽선을 눌러 그리고 그 위에 물감, 먹물 등을 문질러 완성한 작품들을 일컫는다. 이중섭은 담배갑 속 은박지를 다방이나 술집 심지어는 길바닥과 쓰레기통에서 주워 사용했다고 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은지화들은 처음부터 접히고, 꾸겨지고 찢어진 상태를 그대로 두고 그림으로써 화면의 우연성이 강하게 드러난다.
이중섭이 1952년 6월 가족을 일본으로 떠나보낸 후 그리기 시작한 수많은 은지화에는 주로 가족과 아이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는데 이중섭은 그 가운데 70여 점을 1953년 일본에 있는 아내에게 건네주며 나중에 형편이 좋아지면 대작으로 완성하려고 그려본 스케치이니, 절대로 남에게 보여주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이중섭만의 독특한 재료와 기법으로 인해 그의 작품은 1956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소장되기도 했다. 〈가족을 그리는 화가〉는 가족이 모두 함께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작가 자신이 그려져 있다. 화면 주변부로 물고기와 게가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1952년 가족들과 헤어진 이후 서귀포 시절을 추억하며 그린 은지화 중 하나로 여겨진다.
[서울=뉴시스]현해탄〉, 1950년대 전반, 종이에 펜, 유채, 크레용, 13.7×21.5cm.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컬렉션.
5. 현해탄: 그리움...화면 우측 하단 작은배에 올라탄 이중섭
[서울=뉴시스]〈부인에게 보낸 편지〉, 1954, 종이에 잉크, 색연필, 26.5×21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6. 부인에게 보낸 편지:1952년 가족과 생이별...'아고리'는 이중섭 별명
당신이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 이 아고리는 머리가 점점 더 맑아지고 눈은 더욱더 밝아져서, 너무도 자신감이 넘치고 또 흘러 넘쳐 번득이는 머리와 반짝이는 눈빛으로 그리고 또 그리고 표현하고 또 표현하고 있어요.
끝없이 훌륭하고......
끝없이 다정하고......
나만의 아름답고 상냥한 천사여......더욱더 힘을 내서 더욱더 건강하게 지내줘요.
화공 이중섭은 반드시 가장 사랑하는 현처 남덕씨를 행복한 천사로 하여 드높고 아름답고 끝없이 넓게 이 세상에 돋을 새김해 보이겠어요.
자신만만 자신만만
나는 우리 가족과 선량한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진실로
새로운 표현을, 위대한 표현을 계속할 것이라오.
내 사랑하는 아내 남덕 천사 만세 만세.
편지 가장자리에 그려진 아내와 아이들을 그리는 이중섭의 모습, 네 가족이 얼굴을 맞대고 부둥켜안고 있는 모습에서 가족을 그리고 재회를 희망하는 작가의 간절함과 기대감을 확인할 수 있다. 편지는 부인에게 보내는 사적인 메시지였던 만큼 아고리, 천사, 발가락 등 애정 어린 말들이 종종 등장한다. 아고리는 이중섭의 별명으로 문화학원 재학 당시 이시이 하쿠데이 교수가 그에게 붙여준 것이다. 문화학원에 이씨 성을 가진 유학생이 3명이라 이들을 구분하고자 했는데, 이중섭은 턱이 길다는 뜻의 아고리로 불렸다. 발가락은 야마모토 마사코를 지칭하는 말로 연애 시절 마사코가 발가락을 다쳤을 때 이중섭이 간호했던 때의 기억으로 부르는 말이다.
[서울=뉴시스]〈정릉 풍경〉, 1956, 종이에 연필, 유채, 크레용, 43.5×29.3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7. 정릉 풍경:거식증으로 여양실조 간염 앓아 쓸쓸한 풍경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