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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우의 작가만세]김혜진 "리얼리즘 소설도 요즘처럼 '거리두기' 중요해요"

등록 2022.11.19 07: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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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등단 이후 7편 소설 펴내...'딸에 대하여'는 영화로 제작

신동렵문학상~젊은작가상 수상...문단·대중에 인정

현장 취재 '노동 소설'로도 불려...최근 장편소설 '경청' 출간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장편소설 '경청' 작가 김혜진이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11.19.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장편소설 '경청' 작가 김혜진이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11.1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신재우 기자 = "저는 핵심보다 주변부를 살펴요."

소설가 김혜진(39)은 '리얼리즘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어있다. 장르소설과 웹소설의 열풍 속에서 그는 '노동 소설 작가', '리얼리즘 작가'로 불리며 일상적이고 사실적인 장편을 줏대 있게 펴냈다. 2012년 등단 이후 2013년 첫 장편소설 '중앙역'을 펴낸 작가는 이후 '딸에 대하여'를 비롯해 '9번의 일' '불과 나의 자서전' 등 모두 7편의 소설책을 출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좀 진부한 듯한 리얼리즘 소설은 의외로 통했다. 장편 '딸에 대하여'(2017)는 지난 2018년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하고 영화화도 진행 중이다. 이후 대산문학상(2020), 젊은작가상(2021)까지 잇따라 석권하며 작가는 대중과 문단의 인정을 받았다.

최근 3년 만에 낸 장편소설 '경청'도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고양이를 구조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인간 사이 관계를 살피는 또 한 편의 리얼리즘이다. 그간 김혜진 소설이 천착해 왔던 주제, 타인을 향한 이해의 가능성에 대한 문제 의식과 맥을 같이 하지만 기존의 작품들과 전혀 다른 시선을 제공하며 세상과의 소통을 시도한다.
 
변화무쌍한 이 시대에 리얼리즘 소설을 쓰고 있는 김혜진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장편소설 '경청' 작가 김혜진이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11.19.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장편소설 '경청' 작가 김혜진이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11.19. [email protected]


"소설은 질문 던지기"…일상에서 포착한 질문들

"사실 저는 예전 작가들이 쓰던 리얼리즘 문학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물론 '김혜진식 리얼리즘'은 이전까지의 리얼리즘 문학과는 궤를 달리한다. 단순히 사회를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가 생각하는 소설의 역할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소설이 묻게 되면 이후 답하는 것은 독자의 몫으로 이어지는 식이다.

"이런 대화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그녀가 한동안 경험하지 못했고 다시는 경험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장벽 없는 소통. 두 사람의 대화에는 장애물이 없다. 대화는 앞으로 나아가고 부드럽게 방향을 틀고 서로의 마음속을 자유롭게 활보한다."(본문 181쪽 중)

이번 소설 '경청'도 질문한다. "우리 사이 진짜 관계는 무엇인가?"라고. 상담 전문가 임혜수를 중심으로 우리가 말과 글을 통해 타인과 맺는 관계에 대해 독자들에게 묻고 있다.

주인공 임혜수의 속성도 질문에 가깝다. 방송에서 본인이 한 말실수로 일상이 망가진 다면적인 인물을 통해 독자들이 생각할 여지를 남겨뒀다. "우리 사회에서 오롯이 패를 받은 사람 혹은 오롯이 잘못한 사람만 있을 수 있을까? 생각이 들어 이런 인물을 구상했다."

리얼리즘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거리두기"

"소설과 작가 사이의 거리감에 신경 쓴다."

비현실적인 사건이나 허구적인 인물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작가의 일상이 곧 소설이 되는 것은 아니다.

김혜진은 "내가 겪은 일을 있는 그대로 소설에 담는 것을 경계하고 최대한 다양하고 열린 시선에서 작품을 구상한다"면서 "거리 조절에 실패한 작품도 있다. 어떤 이야기였는지는 비밀"이라고 입을 다물었다.

소설과의 거리두기는 그의 소설 속 주인공의 직업에서도 알 수 있다. 상담사부터 요양보호사까지 "직업이 곧 인물을 나타내는 중요한 속성"이라고 생각해 자신이 경험해보지 못한 직업을 가진 인물들이 소설에서는 다채롭게 등장한다.

여러 직업에 대한 이야기는 부지런한 취재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딸에 대하여'를 쓰기 위해 병원을 방문해 살펴보고 장편 '9번의 일'을 위해 KT노조 취재를 감행했다. 이번 작품에서는 학생인 '세이'가 나오는 운동회 장면을 위해 학교를 다녀왔다.

김혜진의 소설이 '리얼리즘 소설'이자 '노동 소설'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의 주인공들이 끊임없이 일을 하기 때문이다.

소설 속 주인공처럼 김혜진은 전업 작가가 되기 이전까지 끊임없이 노동했다. 등단 이전에는 온갖 아르바이트를 했고 등단 이후에도 글쓰기를 동반한 아르바이트는 이어갔다. '딸에 대하여'가 큰 성공을 거두며 그도 그제서야 전업 작가가 됐다. '딸에 대하여'는 현재까지 전 세계 16개국 언어로 번역됐다.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장편소설 '경청' 작가 김혜진이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11.19. pak7130@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진희 기자 = 장편소설 '경청' 작가 김혜진이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2.11.19. [email protected]



박경리 '토지'부터 시작된 순문학 사랑…'김혜진식 소설'로

"제 학창 시절에 웹소설이 있었다면 달라졌을까요?"

김혜진은 웹소설과 거리가 먼 자신의 책을 짚으며 말했다. 장르문학과 웹소설이 흥하는 시대에 그는 자신이 "이런 책을 쓸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순문학의 오랜 팬이었다. 고등학교 때 박경리의 '토지'와 영미문학 고전을 읽었고 대학교를 국문학과로 갔지만 소설을 배우지 않자 예대 문예창작과에 진학했다. 대학원도 문예창작과로 진학할 만큼 소설에 진심이다. 그가 그렇게 되고 싶던 소설가로 등단한 것은 대학원 입학 직전이다. 그래서 앞으로 소설가가 주인공인 '소설가 소설'도 쓰고 싶은 바람도 있다.
 
김혜진은 말은 무척 아꼈다. 마치 소설 '경청'처럼 관찰자의 시선을 고집스러울 정도로 완고하게 유지했다. 차기작으로 구상하고 있는 것은 비밀이라고 했다. 카페의 건너 테이블로 시선을 돌리며 침묵의 순간을 쌓고 있던 그는 "아직 관찰이 끝나지 않았다"고 했다. 아직 김혜진에게는 '경청의 시간'으로 보인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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