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아이돌 콘서트만큼 힙하네…두 젊은 소리꾼 '절창'
[서울=뉴시스] 국립창극단 '절창'. 2021.04.20. (사진 = 국립극장 제공) [email protected]
국립창극단의 간판 젊은 소리꾼 김준수(30)·유태평양(29)은 판소리가 그 자체로 힙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좌석 거리두기가 적용된 객석에선 큰 환호를 쏟아낼 수 없었음에도, 호응의 열기는 대중음악 공연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두 소리꾼은 판소리 다섯 바탕 중 하나인 '수궁가'를 100여분으로 압축해서 선보였다. 만담과 너스레가 포함돼 있었지만, 소리의 본질은 그대로였다.
하이라이트 중 하나는 범이 내려오는 장면이었다. 별주부가 육지로 올라와 토끼를 발견하고 반가움에 토끼를 "토생원~"하고 부른다는 게 그만 턱에 힘이 빠져 "호생원~"이라고 호랑이를 불러버려 난데없이 호랑이가 내려오는 대목이다.
원래 수궁가에서 눈대목(판소리 중 중요한 대목)에 해당하지 않은 장면이었지만, 최근 밴드 '이날치'가 같은 장면을 노래한 '범 내려온다'로 유명 대목이 됐다.
[서울=뉴시스] 국립창극단 '절창'. 2021.04.20. (사진 = 국립극장 제공) [email protected]
특히 김준수는 해당 장면을 끝낸 뒤, 숨을 거칠게 쉬는 K팝 아이돌의 '엔딩 요정'(음악방송에서 아이돌 무대가 끝난 뒤 멤버 얼굴을 클로즈업해 무대를 마무리하는데, 눈길을 사로잡는 포즈를 취할 때 쓰는 말)을 재현하기도 했다.
유태평양은 '범피중류'에서 목소리로 풍경을 그린다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줬다. 별주부가 토끼를 등에 업고 용궁으로 들어가는 장면이다.
판소리에 잘 쓰이지 않는 생황의 신비로운 음색을 탄 유태평양의 독창은, 관객에게 바닷속을 마치 훤히 들여다보는 듯한 상상력을 선사했다. 바다를 뒤집을 수 있는 대단한 에너지였다. 판소리란 무릇 이런 것이다. 여러 번에 걸쳐 다양한 풍경에 풍덩 빠지는 일이다.
수궁가에서 토끼의 생은 정말 새옹지마다. 자신의 간을 빼앗으려던 용왕,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호랑이·독수리를 모두 따돌린다. 토끼 굴에 무사히 안착한 뒤 '자가격리'를 한다며 코로나19 시대에 맞는 풍자도 한다. 또 타의로 여러 상황에 휘둘리는 별주부와 토끼의 모습은 우리네 '을'의 삶도 자연스레 반영한다.
[서울=뉴시스] 국립창극단 '절창'. 2021.04.20. (사진 = 국립극장 제공) [email protected]
소리꾼 이자람의 '사천가', '억척가' 등 전통연희와 현대 연극을 접목하는 작업으로 이름을 날린 남인우의 담백한 연출, 그리고 도형으로 말끔하게꾸며진 무대는 세련됨을 더했다. 고수 조용수의 익살, 거문고·양금 최영훈, 타악 전계열, 피리·생황 박계전의 연주도 흥을 돋웠다.
주로 판소리는 중장년층이 보는 무대로 통하는데 이번 '절창'은 남녀노소 골고루 지켜봤다. 국립극장 예매자 기준에 따르면, 40대가 약 30%로 가장 비율이 높았고 30대 24%, 50대 22%, 20대 14%를 차지했다.
'절창'은 국립창극단이 젊은 소리꾼의 진면목을 보여주기 위해 이번에 시작하는 시리즈다. 국립극장 완창판소리와 함께 장수할 조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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